"내 걱정병 없앤 '염력'"…심은경을 위한 안내서

[노컷 인터뷰] "연기 강박 버리고, 단순하게 살기 위해 노력"

유원정 기자| 승인 2018-01-31 07:00
영화 '염력'에서 모든 것을 잃게 된 치킨집 청년사장 루미 역을 연기한 배우 심은경. (사진=매니지먼트 AND)
영화 '염력'에서 모든 것을 잃게 된 치킨집 청년사장 루미 역을 연기한 배우 심은경. (사진=매니지먼트 AND)
"아마 제가 표현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 다들 어디 아프다고 보는 거 같아요. 만화 캐릭터로 치면 약간 이상하고 무서운 애라고 오해를 사는 인물이랄까요. 저 밥도 많이 먹고 진짜 건강해요."(웃음)

이제 갓 25세가 된 배우의 얼굴에는 이상하게도 관록이 녹아 있다. 그는 굳이 활발하려고 애쓰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과 말을 침착하게 전한다. 배우 심은경의 이야기다.
아역 배우로 승승장구하며 여기까지 온 것 같지만 심은경의 삶 역시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아역에서 성인으로 발돋움하는 성장통이 있었고, 성인이 된 후에는 한 차례 스스로의 연기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순간이 오기도 했다.

숱한 위기를 이겨내고 담담한 표정으로 기자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제법 단단했다. '만족하는' 연기를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그의 삶은 이제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영화에 밀착해 살아 숨쉬는 '염력' 루미 캐릭터에는 그런 심은경의 의지가 담겨 있다.

쉴 때는 집 근처 카페가 좋은 심은경, 소외된 이들의 마음을 루미를 통해 이해하려 노력한 심은경, 스스로의 강박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심은경. 그 모든 심은경의 순간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다음은 심은경과의 일문일답.

영화 '염력' 스틸컷. (사진=NEW 제공)
영화 '염력' 스틸컷. (사진=NEW 제공)
▶ '염력'을 만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부터 연상호 감독이 루미에 본인을 그리면서 시나리오를 쓴 건가.
- '부산행' 촬영했을 때, 감독님에게 다음에 길게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고 했더니 감독님이 '심배우님이 주연작인 작품이 있다. 아빠와 딸 이야기인데 조만간 시나리오를 주겠다'고 그러셨었다. 그래서 오래 기다렸다. 일단 한국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초능력이라는 소재가 어떻게 구현될까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항상 걱정병이 있어서 초반에는 그런 것에 대한 상담도 했었다.

▶ '걱정병'이라면 루미 역할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지에 대한 걱정이었나.

-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었다. 감독님께서 그런데 '배우들이 꼭 뭔가 새로운 걸 많이 보여주려고 하는데 그게 배우의 필모그래피에 꼭 중요할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은경 배우만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뽑아서 만들어봤으면 좋겠다고 그러셨다. 그 말이 새롭게 다가왔고, 힘을 주더라. 그래서 감독님을 많이 믿고 작품에 참여했다. 정말 눈치보지 않고 신나고 편하게 연기했다.

▶ 차후에도 연상호 감독의 작품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궁금하다.

- 감독님 작품 준비하실 때 같이 하고 싶다고 이야기는 해놨다. 나도 끼워 달라고 손가락 걸고 약속까지 했다. 물론 내가 차기작에 나올 것 같지는 않은데 나중에라도 또 감독님과 하게 된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

영화 '염력'에서 모든 것을 잃게 된 치킨집 청년사장 루미 역을 연기한 배우 심은경. (사진=매니지먼트 AND)
영화 '염력'에서 모든 것을 잃게 된 치킨집 청년사장 루미 역을 연기한 배우 심은경. (사진=매니지먼트 AND)
▶ 그간 본인이 연기해 온 캐릭터들과 루미 역이 어떤 부분에서 다르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 일단 독특한 캐릭터성을 내밀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 진행과 함께 영화에 녹아들 수 있는 캐릭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전부터 캐릭터성만 밀고 나가는 역할보다 자연스럽게 영화 안에 스며드는 사실감 있는 역할을 맡아 연기하고 싶었다. 그런 캐릭터에 루미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보여주신 연기적 레퍼런스를 통해 캐릭터를 많이 구축해 나갔던 것 같다. 이번에는 내 연기를 가지고 한 번 더 비틀고 응용하는 게 재미있었고, 희열을 많이 느꼈다. 다른 영화에서 보지 못한 내 얼굴을 본 것도 있어서 뿌듯했다.

▶ 영화를 보면서 용산 참사가 떠오른다고 하는 의견도 있었다. 마침 언론배급시사회가 용산 참사 9주기에 열렸는데, 본인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에 대해 감독님이 저희에게 이야기한 것이 있었다. 그래서 의식을 전혀 하지 않고 촬영한 영화는 아니다. 지난해 8주기에 전체 배우들과 함께 '공동정범'이라는 영화를 관람했다. 그걸 정확히 다룬 영화는 '공동정범'일 것 같고, 우리 영화는 도시 개발에 대한 감독님의 시선이 담긴 영화 같다. 민감하게 받아 들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 평범한 사람이 초인적인 힘을 얻었을 때 이에 대한 카타르시스와 통쾌함을 많이 담고 있는 영화다.

▶ 용산 참사를 떠나서 그렇게 근대화 과정 속에서 소외된 거주민들에 대한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세대는 아니지 않나.

- 가슴 아픈 일이다. 나는 루미의 입장에서 많이 바라봤었다. 내가 어렵게 가꾼 삶의 터전을 한 순간에 다 잃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어이가 없고, 벙찌고 결국에는 화가 날 것 같다. 루미 성격상 주민들과 함께 앞장서서 그 터전을 잃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한다. 힘겨운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강인함이 좋았다. 웃으면서 밝은 모습은 많지 않지만 특유의 밝음이 느껴지는 캐릭터다.

영화 '염력'에서 모든 것을 잃게 된 치킨집 청년사장 루미 역을 연기한 배우 심은경. (사진=매니지먼트 AND)
영화 '염력'에서 모든 것을 잃게 된 치킨집 청년사장 루미 역을 연기한 배우 심은경. (사진=매니지먼트 AND)
▶ 배우 심은경이 아닌 평소 쉴 때는 어떤 모습인지 알려달라. 엄청나게 활동적이지는 않을 것 같은 생각도 드는데.

- 쉴 때는 동네 카페에 두 시간 정도 앉아 있는다. 거기에서 내 할 일을 하면서 가만히 있다가 오는 것 같다. 집에서 바람 쐬러 나오는 거다. 더 멀리 가기는 체력적으로 조금 힘든 것 같고…. 그냥 집이나 동네 근처를 배회한다. 친한 사람들이랑 같이 놀면 굉장히 활발해지는데 혼자 있을 때는 그리 활발하지 않은 것 같다. 영화는 팀 버튼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얼마 전에도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도 저렇게 기괴한 동화 같은 이야기의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 류승룡과는 '불신지옥' 이후 실사 작품에서는 처음 만나는 것일텐데 함께 부녀 관계로 호흡을 맞춰보니 어떤 느낌인가.

- 선배님이 이 영화를 한다고 할 때 정말 마음이 놓였었다. 우리 호흡이 잘 맞았기 때문에 굉장히 미묘한 부녀관계가 더 끈끈하게 잘 표현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선배님 덕분에 현장에서 정말 편하게 있었고, 많은 힘이 되어주셨다. 정말 따뜻한 분이라 나도 이렇게 배려심있고 따뜻하게 후배들을 많이 챙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선배님이 조언해 주신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은경이가 좋아하는 거 하면서 여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지금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셨었다.

▶ 중년 배우들 못지 않은 연기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있다. 지난날을 되돌아봤을 때, 지금 생각해보면 '이러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라고 생각한 부분이 있을까.

-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과거의 나를 돌아본다. 보면 열심히 안하면 안되는 사람처럼 되게 열심히 한 것 같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은데 좀 더 즐기면서 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했던 영화가 '걷기왕'이었다. 최고가 아니어도 괜찮고, 천천히 걸어가는 네가 자랑스럽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던 영화였으니까. 거기에 공감이 돼서 출연을 했었다. 인간적인 삶의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 많이 쌓아야 하고,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걸 조급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요즘에는 재미있게, 맛있는 거 먹고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아간다면 그것만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 못 본 사이에 상당히 많은 부분이 변한 것 같다. 최근에 그럼 연기적으로 가장 노력하고 있는 작업은 무엇일까.

- 내 재능을 한없이 의심하고 돌아봤는데 그냥 연기를 하는 게 신나면 그것만으로도 이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좋아서 하는 것만으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은 그렇게 생각한다. 연기에 대한 욕심을 많이 인내하고 부담감을 내려놓으려고 하고 있다. 오히려 단순하게 바라보니까 연기도 진정성 있게 나오는 것 같다. 여백의 미가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실제 삶에 있어서도 그런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일단 지금 상태는 그렇다. 단순하게 모든 걸 생각하고 바라보자는 마음이다.

▶ 기자와 1:1 채팅

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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