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손자병법]32-⓺ 3金의 전술전략-김성근의 장기판 용병술

이신재 기자| 승인 2020-07-05 07:31
[프로야구 손자병법]32-⓺ 3金의 전술전략-김성근의 장기판 용병술
김성근 감독의 용병술은 치밀함에 있다.

철저하게 계산하고 그 계산에 들어 온 선수로만 팀을 구성한다. 흔히 말하는 장기판이다.
장기판의 말들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 차(車)는 직진, 포(包)는 월경, 마(馬)는 짧고 상(象)은 조금 더 긴 옆걸음, 졸(卒)은 오직 앞과 옆으로 한걸음 등으로 나름의 능력이 있으나 오직 장기를 두는 사람만이 그 말들을 움직일 수 있다.

김성근 감독은 그 말들의 능력을 늘 꿰뚫고 있다가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출격 명령을 내린다. 차가 건너뛸 수 없듯이 감독의 지시 없이 함부러 뛰다간 가차 없다.

“야구는 단체 경기이다. 개인이 중요하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투수는 아무리 잘 던져도 이길 수 없다. 기껏 무승부일 뿐이다. 타자가 점수를 내줘야 승장이 된다. 기습 지시를 내리면 기습명령이 내려갈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 공격을 위해 매복중인데 혼자 판단해서 갑자기 튀어나가면 매복은 실패고 그 싸움은 끝이다. 번트를 지시했는데 공이 좋다고 치면 안된다. 운좋게 홈런을 쳤다해도 그 한번 이다. 길어지면 결국 다 망한다”

논리정연하다. 코치들이 그의 수족이 아니 될 수 없고 선수들은 싫든 좋든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간 바로 아웃이기 때문이다.
김현욱은 흔치않은 사이드 암이었지만 그리 대단한 투수는 아니었다. 93년 한양대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단했다. 컨트롤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타자를 윽박지를 확실한 주무기가 없었다. 공 스피드도 평범했다. 93년 6게임에 나섰지만 승리를 올리지 못했다. 수많은 평범한 선수중의 한 명이었던 그는 이후 2년간 2군에서 보냈고 신고 선수로 까지 전락했다.

가치가 크지 않다는 평가 속에 96년 5월 쫒겨 나듯 쌍방울로 자리를 옮겼다. 옮겼어도 그가 설 마운드는 없었다. 그만둬도 좋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으나 그 해 말 김성근 감독이 쌍방울을 맡으면서 그의 야구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김 감독은 절망 속에서도 열심히 훈련하는 김현욱을 눈 여겨 보았다. 성실은 김 감독이 최고 가치로 치는 덕목이다. 김 감독은 김현욱의 부드러운 허리와 어깨 등을 유심히 관찰했다. 가능성이 보였다. 김 감독은 성실하게 훈련하고 훈련이 거듭될수록 빠르게 향상하는 김현욱을 1997년 시즌 본격적으로 투입했다.

선봉장격인 차는 아니었다. 쓰임새는 마나 포 정도 였다. 김 감독이 본 대로 김현욱은 마치 고무팔 같았다. 좀처럼 피로를 몰랐다. 선발이 이상하면 바로 김현욱을 박았다. 선취득점으로 앞서고 있는 데 점수라도 내주면 또 김현욱을 넣었다.

1회도 좋고 3회도 좋고 5회도 좋았다. 동점일 때도 나가고 더러는 아슬아슬하게 지고 있는 경기도 나갔다. 불펜용 투수가 선발투수보다 더 많이 던졌다. 모두 혹사라고들 했다. 70경기에 나와 157과 3분의 2이닝을 던졌으나 당연히 혹사였다.

그러나 김성근은 선수의 능력을 최대한 감안한 고단계 용병술임을 강조했다. 김현욱은 시즌 20승을 올렸다. 그것도 모두 구원승으로만. 지금은 불가능한 구원 20승이나 내용이 좋아 뭐라 할 수 없었다. 20승 2패 6세이브, 방어율 1.88, 승률 9할(0.909)로 투수 3관왕이었다.

김현욱은 김성근식 관리야구의 백미였다. 비슷한 사례가 1992년 삼성에서도 있었다.

감독은 역시 김성근, 선수는 오봉옥이었다. 일반병으로 만기 제대한 오봉옥은 스물여섯의 늦은 나이에 프로 데뷔를 했다. 그는 첫 해 김 감독의 철저한 관리 하에 중간계투로 등판하여 13승 무패, 승률 100%로 승률 1위에 올랐다. 38경기에서 126과 3분의 2이닝을 던졌으니 선발이나 다름없었다.

오봉옥이 다시 잘 던진 때는 1996년. 135와 3분의 1이닝을 던지며 그의 프로생활 중 두 번째로 많은 9승(7패 4세이브)을 올렸다. 김성근 감독과 함께 한 쌍방울 시절이었다.

두 경우 모두 옛날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나 공교롭게도 감독이 모두 김성근이었고 그 한번이 둘의 최전성기였다는 점이 특이하다. 혹사의 후유증일 수 도 있는데 김성근 감독은 그런 경우가 꽤 있었다.

관리 야구는 스몰야구와 독단적인 성향을 띄게 된다. 그런 스몰야구와 독단적인 야구에선 고만고만한 선수는 많이 나오지만 괴물급의 화려한 스타는 나오지 않는다. 창의성이나 자유정신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인데 관리야구의 스타는 흔히 선수가 아니라 감독이 된다.

김성근의 경기는 항상 길다. 자신의 생각에 따라 선수 교체가 많기 때문이다. 데이터에 근거하여 수시로 선수들을 넣고 빼는 바람에 한 경기 평균 기용 선수가 가장 많다. 좌타자엔 좌투수, 우타자엔 우투수로 가다가 개인 대 개인의 성적에 따라 선수를 바꾸느라 최소 10명이면 되는 경기에 보통 20여명이 들어간다.

대단한 야구이고 명석한 용병술. 하지만 궁합이 맞아야 하는데 꼴찌 급의 태평양이나 쌍방울을 데리고 단숨에 포스트 시즌 경기에 나섰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은 감독 시작 23년만인 2007년 SK 와이번스가 처음이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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