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의 사람 ‘人’] "한국스포츠 외교 최고 인물은 정주영 전 현대그룹회장이다.....바흐 IOC 위원장은 나를 ''로키 윤'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스포츠 외교론' 책 낸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

김학수 기자| 승인 2020-10-21 13:41

“한국 스포츠외교의 최고 인물은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다. 1981년 바덴바덴 IOC총회에서 20세기 최고의 올림픽으로 평가받은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분이다. 일본 나고야와의 불리한 경쟁을 딛고 서울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은 불도저같은 정 회장의 추진력과 외교력 때문이었다.”

윤강로(64)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이 ‘스포츠 외교론’를 펴냈다. 책에는 수십년간 스포츠 외교 현장을 누비며 직접 경험하며 보고, 느낀 것을 두루 담았다. 책 이름 자체는 학술서 같지만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풀어낸 내용들이 많다. 삼수 끝에 유치에 성공한 2018 평창동계올림픽과 2002년 한일축구 월드컵 개최 뒷이야기도 있고, 체조 양태영이 판정 오심으로 아깝게 금메달을 놓친 사건 관련 비화도 있다.

인천 동산고 시절부터 영어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뛰어난 영어 실력을 발휘했던 그는 외대 영어과와 동시통역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지난 1982년 9월 대한체육회 국제국에 특채, 한국스포츠의 대표적인 국제통으로 활약했다. 영어 뿐 아니라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을 불편없이 구사하며 IOC와 각종 국제 경기단체에서 한국을 대표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한체육회 국제부장, 평창올림픽 국제 사무총장, IOC 평가위원 등을 역임했다.

수십년간 한국 스포츠 외교 현장을 지킨 윤강로 원장을 20일 만나 한국 스포츠외교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어 봤다.
40여년간의 국제스포츠 외교 경험을 토대로 '스포츠외교론' 책을 펴낸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원장. 개인적 친분이 두터운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이 특별 추천사를 보냈다. [정지원 기자]
40여년간의 국제스포츠 외교 경험을 토대로 '스포츠외교론' 책을 펴낸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원장. 개인적 친분이 두터운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이 특별 추천사를 보냈다. [정지원 기자]


현대가 키우고, 삼성이 수확한 한국스포츠외교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한국스포츠 외교의 최대 인물로 꼽았다.

“ 정주영 회장은 1981년 바덴바덴 IOC 총회에서 88서울올림픽 유치위원장 자격으로 올림픽을 유치시켜 대한민국 스포츠외교 제1호 대첩을 성사시킨 분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이 국제스포츠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할 수 있었다. 정 회장은 1984년 LA올림픽때까지 대한체육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KOC)으로 활동했다.”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스포츠 외교면에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96년 근대올림픽 100주년 기념대회인 애틀랜타 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IOC 총회에서 고 김운용 IOC 부위원장과 함께 개인자격으로 IOC 위원으로 당선됐다. 이건희 회장은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으로 1997년 미국의 모토롤라 대신 삼성전자를 IOC의 올림픽마케팅 파트너로 합류시켰다. 이후 삼성은 최첨단 기술력 개발에 힘입어 일본 소니 등 세계적인 전자통신회사등을 제치고 현재 미국의 애플과 나란히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대한민국 및 세계 최고기업의 일원이 됐다. 이건희 회장은 3차례 도전에 나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에서 IOC 위원으로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남아공 더반에서 끝내 유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건희 회장의 역할이 컸다. ”

-역대 한국 대통령들은 스포츠 외교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노태우 대통령이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을 맡았던 초기에 영어· 프랑스어를 통역하면서 가까이서 보좌한 경험이 있다. 노태우 대통령은 탁월한 식견과 올림픽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모든 일에 처리했다. 올림픽을 위한, 올림픽에 의한, 올림픽을 통한 올림픽 대통령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도 스포츠 외교에 큰 관심을 가진 분이었다. 2003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청와대 격려 오찬에서 국제스포츠기구 본부의 한국 유치를 건의한 적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건의에 대해 ‘상당히 중요하고 주목할만한 사안’이라며 당시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과 함께 각종 법령을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2007년 과테말라 IOC총회를 앞두고선 관저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단을 초청, ”유치 실패하더라도 어짤 수 없제“라며 소탈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직 시절 행사에서 나를 보고 “영어 잘하는 윤 군 아닌가”하고 반가워하며 격려해주기도 했다.“

정주영 회장은 대한체육회장 때 그를 ‘윤 군’으로 불렀다. 왕 회장이 그를 윤 군이라고 부르자 대한수영연맹 회장을 맡았던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회장 등 현대그룹 내 고위 임원들은 모두 같은 닉네임을 따라 불렀다. 정주영 회장은 그를 아껴 대한체육회장을 물러나면서도 결혼하면 꼭 연락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김종하 전 대한체육회장이 결혼 주례를 맡았다는데.

“핸드볼 선수출신의 김종하 전 대한체육회장은 항상 따뜻하게 나를 맞아 주었다.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많은 국제 행사와 회의에서 김종하 회장의 통역을 맡았다. 김종하 회장은 내 결혼식 주례를 직접 맡아 주시는 등 평생 ‘어른’으로 모셔왔는데 몇 년전 세상을 떠나셔 아주 안타까웠다.”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겸 대한체육회장과의 인연도 많았는데.

“김운용 회장이 세계태권도연맹 총재를 맡던 1983년 처음 만났다. 김택수 IOC 위원과 함께 한 자리였는데 내가 IOC를 불어로 ‘세이오’라고 하는 것을 본 김운용 회장이 마음에 들어 하셨던 것 같았다. 그는 ”대한민국 체육계에서 IOC를 세이오라는 불어로 말하는 이는 아마도 윤군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헀다. 5개 국어에 능통한 김운용 회장의 과분한 칭찬이었다. 1985년 서울올림픽조직위 국제담당으로 파견나갔을 때, 조직위 부위원장을 맡았던 김운용 회장을 모시고 국제 관계일을 본격적으로 했다. 김운용 회장은 중요 국제 문서 작성을 나에게 많이 맡겼다. 박용성 국제유도연맹 회장 출마를 지원하는 국제 편지 등을 직접 작성했다. 김운용 회장은 중요 국제스포츠 인사의 생일까지 철저히 챙기며 관리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방한 때, 윤강로 원장의 안내를 받아 대한올림픽위원회 방명록에 서명하는 모습. [윤강로 원장 사진 제공]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방한 때, 윤강로 원장의 안내를 받아 대한올림픽위원회 방명록에 서명하는 모습. [윤강로 원장 사진 제공]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책 출간에 맞춰 추천사를 보냈다고 하는데.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자주 뵙게 돼 가까운 사이였다. 나를 부를 때 애칭인 ‘로키(Rocky) 윤강로’라 말하며 늘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내가 스포츠외교와 관련한 책을 출간한다고 하니까 직접 추천사를 보내왔다.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에서 목격하고 체득한 수많은 사례와 스포츠를 통해 이 세계가 더 나은 곳으로 승화되도록 하는 스포츠 역할론에 대해 지혜로운 통찰을 담아 책으로 공유할 수 있게 돼 기쁘다’는 내용이다.”

윤강로 원장은 올해 서울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오는 26일 방한할 때 이번에 출간한 책을 전달할 예정이다. 로키라는 애칭은 처음 영어 통역을 할 때인 1970년대 말 윤 원장이 외국 임원 들 앞에서 한 팔로 푸시업을 하는 것을 보고 마치 영화 ‘로키’의 주인공 같다면서 붙여주었다고 한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서 러시아 출신 유리 티포프 전 국제체조연맹회장과 포즈를 취했다. [윤강로 원장 사진 제공]
2004년 아테네올림픽서 러시아 출신 유리 티포프 전 국제체조연맹회장과 포즈를 취했다. [윤강로 원장 사진 제공]


개인적 사례로 본 한국 스포츠 외교 현장


-2004년 아테네 올림픽서 체조 양태영이 금메달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한 이유는.

당시 자크 로게 IOC 위원장 특별 게스트 자격으로 초청 받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현장에 있었다. 한국 선수단과는 무관한 신분이어서 직접 개입은 불가능했다. 마침 1988년 서울올림픽때부터 친분이 두터웠던 러시아 출신 유리 티포프 전 국제체조연맹 회장겸 전 IOC 위원이 나에게 ”국제연맹 규정에 심판 판정 결과 번복 불가라는 조항이 수년 전부터 삭제되어 있으니 얼마든지 번복이 가능하다“며 금메달리스트인 미국의 폴 햄 경기가 있을 때 관중석에 한국측 응원단이 ‘금메달을 돌려 달라’는 현수막을 들고 흔들어 보라는 제안을 해주었다. 나는 대한체육회 관계자에게 이 방법을 말해주었으나 별다른 후속조치가 없었다. 나중에 국내에서 네티즌을 중심으로 여론이 나빠지자 대한체육회는 뒤늦게 대책회의를 열고 값비싼 수임료를 들여 한국내 로펌을 경유해 스포츠 중재 재판소에 정식으로 제소했지만 결국 패소했다. 나는 당시 안타까운 나머지 ”이제부터라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를 해야 한다“고 지면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

- 올림픽 한류 1호로 김치가 선정된 것은.

“김치는 대한민국, 우리 한민족의 혼과 얼이 녹아든 우리만의 전통 웨빙 음식이다. 1984년 LA올림픽 선발대 임원으로 현지에 도착해 당시 선수촌으로 꾸며진 남가주대학(USC)에 사전 입촌해 선수촌 식당에 김치가 포함된 것을 보고 놀랐다. LA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추천으로 김치가 들어갔던 것이다. 서울올림픽에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김치가 올림픽 메뉴로 등장할 것인가 미지수였다. 1991년 한국선수단 사전 조사단장 자격으로 바르셀로나 현지에 도착해 조직위관계자들과 협의를 했다. 선수촌 급식 담당자가 추천할 음식이 있느냐며 자문을 구해와 당연히 김치를 추천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선 한국 선수들이 선수촌 김치 덕분인지 여자공기소총의 여갑순이 바르셀로나 1호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고, 마라톤 황영조가 마지막 금메달까지 따는 등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이후 IOC 집행위원회와 국가 NOC 연석 회의 등에서 김치가 올림픽 공식 메뉴에 들어가도록 하는 노력을 계속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2000 시드니 올림픽, 2004년 아테네 올림픽과 동계 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김치가 공식 메뉴로 채택될 수 있었다.‘

-카페인이 금지약물에서 빠지는데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1990년대 후반 IOC총회에서 카페인이 금지약물로 들어간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선수들이 즐겨 마시는 콜라와 커피 등에 카페인이 포함돼 있는데 이를 금지약물에 포함하면 큰 혼선을 빚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페인 세비야 IOC총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총회 공식 세션이 끝나고 추가 협의사항에서 ”카페인이 금지약물로 들어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제안을 했다. 당시 로게 의무분과위원장이 내 제안에 관심을 갖고 이후 카페인을 금지약물에서 뺐다.

스포츠 외교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스포츠 외교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스포츠외교는 거저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스포츠외교는 복잡한 국제스포츠계의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형성된다. 우정과 우의와 의리가 끈끈한 연결고리처럼 작용해 움직이는 유기체와 같다. 스포츠외교를 잘 하려면 우선 국제스포츠계의 동향과 흐름을 잘 이해하고 국제스포츠단체의 성격과 기능과 역할 등도 잘 숙지해야 한다.”

-스포츠외교는 왜 경쟁이 치열한가.

“ 스포츠 외교를 ‘총성없는 전쟁’이라고 말한다. 국가 공신력을 갖고 각종 국제스포츠무대에서 경쟁하기 때문이다. 스포츠외교는 잘만 하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체계적인 스포츠외교관을 육성해야 하는 이유이다. 스포츠를 잘 알고 2~3개 외국어를 불편없이 구사할 수 있어야 필요한 정보를 얻고 소통을 활발하게 할 수 있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스포츠 외교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실력있는 스포츠 외교관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 ”
윤강로 원장은 그동안 이번 신간을 비롯해 모두 7권의 책을 펴냈다. 2006년에 '총성없는 전쟁'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한국스포츠 외교는 어떻게 나가야 하나.

“지금 인류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깊은 고뇌에 빠져있다. 2020 도쿄올림픽이 내년으로 연기되며 스포츠 일정 등이 정상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건강에 대한 우려가 커진만큼 스포츠가 그 답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포츠가 백신이다’, ‘운동이 보약이다’라는 인식을 갖고 스포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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