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스포츠 100년](48)마라톤이야기⑨한달에 풀코스 마라톤을 세번씩이나?

정태화 기자| 승인 2020-11-25 13:34
손기정은 일본에서 두 차례 풀코스 마라톤에 출전한 뒤 경성으로 돌아와 열린 조선육상경기협회 주최 제1회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2시간25분14초 의 경이적인 기록으로 우승했다. 무려 한달에 풀코스 마라톤을 3번이나 뛰었다.
손기정은 일본에서 두 차례 풀코스 마라톤에 출전한 뒤 경성으로 돌아와 열린 조선육상경기협회 주최 제1회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2시간25분14초 의 경이적인 기록으로 우승했다. 무려 한달에 풀코스 마라톤을 3번이나 뛰었다.
한 달에 풀코스 세 번 뛰는 강행군

일본육상경기연맹이 1935년 3월 21일 메이지신궁 순회 마라톤을 개최한 뒤 불과 12일 만에 올림픽후보 기록회라는 명목으로 풀코스 마라톤 경기를 또 열었다. 메이지신궁 순회 마라톤에서 경이적인 기록으로 우승한 손기정의 기세를 꺾어놓기 위해 급조한 경기였다. 손기정은 참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인들이 ‘달리기 귀신’이라고 부를 정도로 손기정의 초반 페이스는 좋았다. 또 다시 일을 낼 것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성큼성큼 내달렸다.

하지만 십 여일 만에 다시 뛰는 풀코스 마라톤은 무리였다. 중반부터 조금 페이스를 조절한다는 것이 화를 부르고 말았다. 반환점을 돈 뒤부터 피로가 엄습하면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일본 선수들에게 추월을 당하고 12일 전보다 무려 13분이나 늦은 2시간39분24로 등외로 밀리고 말았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올림픽 후보 최종전을 준비해야 하는 손기정으로서는 일본의 얄팍한 속셈을 느끼게 해 주어서 결코 손해는 아니었다. 미리 쓴 보약을 마신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조선육상경기협회 주최 제1회 마라톤대회에 입상한 선수들. 왼쪽부터 우승한 손기정과 2위 변천행, 3위 김성학
조선육상경기협회 주최 제1회 마라톤대회에 입상한 선수들. 왼쪽부터 우승한 손기정과 2위 변천행, 3위 김성학
경성에 돌아오니 또 다른 마라톤 대회가 준비되어 있었다.

조선육상경기협회가 주최하는 제1회 마라톤대회였다. 이 대회는 4월 27일 경성운동장 100m 스타트 라인에서 출발해 동소문~창경원~총독부~남대문~한강다리~영등포를 돌아오는 새롭게 인정한 규정코스였다.

코스 길이에 대한 말썽이 많았던 만큼 이번에는 42.195㎞ 보다 520m나 덧붙였다. 선수들에게는 부담이 되더라도 신기록에 대한 시비를 원천차단 하겠다는 뜻이 담겼다. 오락가락하는 빗줄기 속에 시작된 이날 레이스는 손기정이 독주를 하며 2시간25분14초 우승했다. 2위 변천행(체신국·2시간38분07초)과 3위 김성학(충주·2시간38분53초)에 무려 12분 이상 앞섰다. 거리를 더 늘인 것을 감안하면 경이적이라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세계를 통틀어 풀코스를 2시간25분대에 뛴 선수는 손기정이 유일했다. 더구나 한 달에 거의 세 번이나 뛰면서 두 번 이나 세계최고기록을 넘어섰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세계 최고였다.

선발전에서 또 다시 세계신기록 수립
손기정은 일본에서 두 차례, 그리고 경성에서 한 차례를 포함해 한 달여 동안 세 차례 풀코스 마라톤을 달리며 귀중한 경험을 얻었다. 바로 자신이 세운 기록과 페이스를 유지하는 노하우를 터득한 것이다. 즉 아무리 기록이 좋고 컨디션이 좋더라도 한순간의 자만심이 경기의 흐름을 잃고 심리적 안정감마저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훈련에 열중한 손기정은 1935년 11월 3일 베를린올림픽 후보 선수를 선발하는 메이지신궁대회 겸 전일본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 다시 일본 선수들과 경쟁을 해야 했다. 이 대회에는 일본에 유학중인 남승룡도 참가했다. 일본에서는 시오아쿠(鹽飽), 나카무라(中村)에다 이케나가(池中), 스즈키(鈴木)가 신예로 각광을 받았다.

낮 12시 55분 30명의 선수들 틈에 끼여 출발한 마라톤 행렬은 초반 손기정과 나카무라가 선도했으며 남승룡은 스즈키를 견제하며 약간 뒤로 쳐졌다. 반환점은 나카무라가 1시간13분30초, 그리고 1초 뒤져 손기정이 2위로 통과했다. 반환점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카무라가 무리했는지 뒤로 쳐졌고 이때부터 손기정의 독주가 시작됐다.

손기정은 트랙에 들어섰을 때 거의 100m를 달리는 기분으로 대시했다. 2시간26분42초. 또다시 경이적인 기록이 나왔다. 반환점까지 1시간13분31초, 그 뒤 1시간13분11초, 오히려 후반에 더 시간이 단축됐다. 2위 시오아쿠와 3위 나카무라는 손기정보다 5분여 뒤졌고 남승룡은 1시간36분52초로 4위에 입상했다.

1935년 11월 일본에서 열린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후보선수 선발전에서 세계기록으로 우승한 손기정을 보도한 기사(1935년 11월 5일 3면 동아일보)
1935년 11월 일본에서 열린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후보선수 선발전에서 세계기록으로 우승한 손기정을 보도한 기사(1935년 11월 5일 3면 동아일보)
손기정의 세계신기록 수립 소식은 일본 신문은 물론 국내 신문에서도 호외로 다루어질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고미문의 최고기록, 마라손 조선의 대기염’(동아일보), ‘반도 남아 의기 헌앙’(조선중앙일보), ‘사계에 대충동’(매일신보) 등 갖가지 제목으로 손기정의 세계신기록 수립 소식을 전하면서 사실상 독일행이 확정적이라는 보도를 곁들였다.

“오직 과거에 쓰린 경험을 이 코스에서 몇번 맛보았으므로 과거 경험을 거울삼아 이번에는 좀 더 자중해 내 가진 힘을 조절하는데 유의했습니다. 조선서 낸 좋은 기록과 또 금년 봄 순환코스에서 낸 기록들을 두고 거리가 뭐니 어쩌니 하기에 이 코스에서 기여코 기록을 내고 싶던 희망을 달성하고 보니 우리 고향 , 우리 모교 양정, 또 내 선배 김은배 등의 뒤를 이어 책임감이 더욱 크지만 그 한계단을 밟아내 디딘듯 해 시원합니다. 남은 길은 더 험하고 더욱 외로우니 오직 정진하고 자중할 뿐입니다."(손기정, 동아일보 1935년 11월 5일자 3면)

이때가 손기정이 양정고보 4학년 때였다.

[정태화 마니아리포트 기자/cth08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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