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44. 19세 이에리사의 19전승과 사라예보의 기적

이신재 기자| 승인 2020-11-29 07:11
여자탁구의 스토리는 늘 예상 밖이었다. 사라예보로 향할 때만 해도 우승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19세의 신예 이에리사가 있다는 걸 누구도 깨닫지 못했다. 그는 막내였지만 막내가 아니었다. 이에리사의 단식 경기 전승, 그것이 기적을 낳았다.

[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44. 19세 이에리사의 19전승과 사라예보의 기적

1973년 4월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 제32회 세계탁구 선수권대회. 정현숙, 이에리사, 박미라를 내세운 대한민국 여자대표팀이 난공불락이라고 여겼던 일본과 중국을 연파하며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정부 수립 후 처음 거둔 세계 1등이었다.

▶기적을 일군 소녀 이에리사

강적은 중국과 일본. 중국은 세계챔피언이었고 일본은 2년전 나고야 제31회 선수권대회에서 패배의 아픔을 안긴 팀이었다. 그러나 그때와는 상황이 사뭇 달랐다. 우승을 자신할 순 없었지만 이에리사의 약진과 정현숙의 성장은 믿어볼 만했다.

경험을 많이 쌓았으나 이에리사는 여전히 19세 미완의 대기였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그는 더 이상 햇병아리가 아니었다. 전혀 주눅 들지 않는 힘찬 플레이, 주무기인 강력한 드라이브를 앞세워 난적들을 차례로 물리쳤다.
이에리사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었다. 단식 경기는 특히 무적이었다. 루마니아, 서독, 스웨덴, 프랑스, 유고 등과 치룬 단체전 5경기 단식 전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요한 승부처인 중국전 단식에서도 연승을 거두었다.

첫 단식주자로 나선 이에리사의 상대는 세계랭킹 2위 정희영. 전진속공형으로 우리가 이겨보지 못한 선수였다. 경험과 힘에서 앞서는 정희영이었으나 이에리사는 오히려 힘으로 그를 눌렀다. 세트스코어 2-1승 이었다.

승부의 큰 고빗 길인 네 번째 단식. 박미라-이에리사의 복식조가 져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상대는 호옥란. 패배를 모르는 강적이었다. 이에리사가 쉽게 이길 수 없는 적이었고 그에게 지면 승부도 끝이었다. 초긴장 상황, 하지만 이에리사는 호옥란을 2-0으로 완파하며 우승을 향한 징검다리를 놓았다.

결승리그 2연승 후에 만난 일본. 한 두 세트의 여유가 있었지만 완패할 경우 낭패를 볼 수도 있었다. 상황을 떠나 어쨌든 일본은 이겨야 했다.

이에리사는 이번에도 1단식에 나섰다. 일본은 랭킹 1위 요코다였다. 무서운 기세의 이에리사의 라켓 앞에 요코다는 2-0으로 나가 떨어졌다. 2단식에선 정현숙이 오제키에게 패했으나 다행히 박미라-이에리사의 복식조가 승리, 2승1패가 되었다.

앞서 나갔지만 4단식에서 반드시 끊어야 했다. 2년 전 진 것도 있고 앞서 정현숙이 패한 것도 부담이었다. 승부는 팽팽했다. 한세트씩 주고 받아 세트스코어 1-1에서 맞이한 결승세트. 이에리사가 빛을 발했다. 노련한 오제키보다 더 노련하게 경기를 끌고나갔다.

이에리사의 세트스코어 2-1 승, 그리고 일본전 3승1패.

여자탁구 최초의 세계 1위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세계대회 우승이었다.

단식 무패. 이에리사는 단체전 단식경기 19전승의 대 기록을 작성했다.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사라예보의 기적’은 그렇게 이에리사에 의해 일어났다.

이에리사는 일찍부터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1969년 5월에 열린 전국학생 종별 선수권대회 개인전 우승을 차지한 후 11월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진 제23회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당대 최고였던 김인옥(한일은행)을 세트스코어 2-1로 잡고 우승했다.

어마어마한 반란이었다. 열 다섯 살 중3생의 성인무대 평정은 일찍이 없던 일이었다. 그리곤 1975년까지 종합선수권 7연패를 달성했다. 그의 7연패는 아직도 깨어지지 않고 있다. 탁구신동을 뛰어넘은 거물의 등장이었다.

이에리사는 사라예보의 그 우승에 그치지 않고 계속 국내 최강자의 자리에 머물면서 1975년 캘커타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 준우승, 1976년 서독오픈 개인전 우승을 차지했다.

[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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