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손자병법] 49. 김응용의 전전반측(輾轉反側)⓶

이신재 기자| 승인 2020-12-01 01:46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 못 이룬다. 원래는 여인을 사모하여 잠 못이루는 경우에 쓰였으나 근심, 걱정 등 고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까지 폭 넓게 쓴다

십수년 정든 곳을 어찌 그리 쉽게 떠날 수 있겠는가. 해태의 붉은 유니폼을 벗고 삼성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을 그릴 수 없었다.
김응용 감독은 삼성에서 그를 영입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갈 생각도 없고 구단에서 가게 내버려두지도 않으리라고 내다봤다.

[프로야구 손자병법] 49. 김응용의 전전반측(輾轉反側)⓶


“가시겠습니까.”

“가긴 어딜 갑니까. 그냥 있어야지요.”
“그러시죠. 잘 모시겠습니다. 다만 한 1년 정도 재계약금 없이 해태를 돌봐 주십시오.”

안가겠다고 했지만 정기주 사장의 마지막 말을 듣는 순간 화가 버럭 났다. 저쪽에선 틀림없이 많이 줄텐데 계약금도 없이 그냥 있으라니. 정 사장은 그런 김 감독을 모른 체하며 한마디 더 했다.

“삼성 전수신 사장이 만나 봤으면 합디다. 부탁하길래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돈도 안준다면서 만나기까지 해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가고 싶으면 가라는 소리인가. 내가 부담스럽다는 뜻인가. 김 감독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렇다면 한 번 만나 보지.

전수신 사장을 만났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제시했다. 해태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계약기간은 3년. 계약금 최소 5억원에 연봉 3억원이었다. 3년에 14억원으로 역대 최고액이었다. 밀고 당기다보면 1~2억원은 더 붙을 것 같았다.

구미가 동한 김 감독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삼성은 감독으로서도 탐나는 팀이었다. 전력상 해태보다 한 수 위였다. 해태 선수들을 데리고 우승하려면 10이상의 힘이 들지만 삼성은 7~8으 힘만 쏟아도 가능했다.

돈도 많이 받는 데다 팀까지 좋으니 마다할 까닭이 없었다. 계약 조건을 모르는 주위 사람들도 “삼성이라면 당연히 좋은 대우를 해주지 않겠느냐”며 삼성행을 권했다. 그들은 김 감독이 떠나면 후배들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김 감독 때문에 평생 코치로 늙어야하는 후배들을 위해서도 가라고 했다.

딴은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신이 가고나면 누군가 감독이 될 것이고 해태의 사정상 외부 영입보다는 내부 발탁으로 갈 것이 확실했다. 김응용 감독의 머릿속은 그야말로 생각들로 가득 찼다. 만약 떠난다면....

3년 동안 버는 돈만으로도 노후는 전혀 걱정할 게 없다. 팀 전력이 수준급이니 3년안에 우승시키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면 역시 명장이라는 찬사를 들을 것이고 후배에게 길 까지 터 주는 것이니 이래저래 나쁠 게 없었다. 만약 남는다면....

10억원 이상을 앉은 자리에서 까먹는 셈이다. 의리를 지켰다는 말은 듣겠지만 분위기로 보면 간다고 해서 욕할 사람도 그다지 없을 듯 했다. 구단도 미적미적하고 있는 상황.

그는 떠나기로 작심했다. 오랜 친구 신용균이 밀사로 다녀가기도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마음을 굳혔다고 했고 삼성에게도 “걱정 말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밤샘 결론은 눈 뜨자마자 물거품이 되었다. 팀의 동의 없이 이적할 수 없는 제도적 문제도 있었지만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며 남아달라는 박건배 구단주의 청을 단칼에 자를 수 없었다.

무척 억울했지만 떠나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막상 결정하고 나니 속이 다 후련했다. 그래도 며칠 밤을 더 잠 못 이루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포기하기엔 조건이 너무 좋았다.

불발로 끝난 김응용 감독의 삼성 이동은 1년 후 성사되었다. 그만두면서도 삼성과 김 감독은 은 다음 기회엔 반드시 함께 일하자고 약속했다. 그 다음이라는 것은 사실 매우 불투명했다. 올 수도 있고 안 올수도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 다음’이 의외로 일찍 왔다. 2년 계약의 김용희 감독이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자 스스로 물러났다. 김응용 감독은 부탁한 해태 1년을 채웠다. 모양 좋게 김응용 감독을 맞이 할 수 있게 된 삼성은 더 크게 배팅했다.

계약기간 5년. 프로야구 사상 최장 기간이었다. 연봉은 1년 전과 같았지만 계야기간이 2년 더 늘었으니 그만큼 이익이었다.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전전반측했지만 결과적으로 김응용 감독은 기다림의 대가보다 훨씬 큰 득을 보게 되었다.

[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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