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256] 전성기 시절을 뜻하는 ‘리즈 시절’이라는 말이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나온 이유

김학수 기자| 승인 2021-01-09 07:39
리즈 유나이티드는 지난 해 9월19일풀럼과 7골을 주고 받는 난타전 끝에 4-3으로 신승, 16년 5개월 만에 EPL 승리를 기록했다. 사진은 골을 넣으며 기뻐하는 리즈 선수들.
리즈 유나이티드는 지난 해 9월19일풀럼과 7골을 주고 받는 난타전 끝에 4-3으로 신승, 16년 5개월 만에 EPL 승리를 기록했다. 사진은 골을 넣으며 기뻐하는 리즈 선수들.
‘리즈 시절’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인터넷 시대 이후이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외모, 실력, 인기가 절정에 오른 시기를 뜻하는 말로 많이 쓰였다. 리즈시절은 영어 ‘Leeds’와 한국어 ‘시절(時節)’의 합성어이다. 인터넷을 접하지 않은 세대들에게 이 말은 아주 생소하다. 방송 등 언론에서 여성 연예인들의 젊을 적 예쁜 사진을 갖고 ‘리즈 시절’ 운운하는 것을 보고 1950-60년대 할리우드의 최고 여배우였던 엘리자베스 테일러(1932-2011)의 애칭인 ‘리즈(Liz) 테일러’를 연상하는 올드 세대들도 많다. 하지만 영어 발음만 같지 철자가 달라 헷갈리곤 한다.

리즈 시절은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축구선수 앨런 스미스가 리즈유나이티드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던 때를 이르던 말에서 비롯됐다고 인터넷 백과사전 등에서 설명한다. 1980년생의 스미스는 미드필더로 한때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멤버로 19경기에 출전했던 선수였다. 공격적인 플레이와 압박 축구 스타일로 유명했다. 그는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스트라이커이자 오른쪽 날개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후, 그는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다리가 부러지고 발목이 탈구돼 빛을 보지 못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그를 미드필더로 전향시켰다. 나름대로 역할을 했지만 리즈 시절의 위용만큼은 보여주지 못했다. ‘리즈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말이 생긴 이유였다.
2002한일월드컵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축구팬들은 세계최고의 인기리그인 영국 프리미어리그(EPL)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한국축구가 히딩크 감독의 지휘하에 역사적인 4강진출을 이룬 뒤 대들보 박지성이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을 거쳐 2005년 최고 명문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진출하면서 본격적인 흥미를 갖게됐다. 평소에 보지 못하던 EPL 경기가 생중계로 안방 극장으로 전해지면서 맨유 선수들은 물론 다른 팀들의 정보까지도 소상하게 접할 수 있었다.

당시 한국축구팬들 사이에서 박지성 팬덤 현상이 일어났다. 포털사이트, 축구 전문 블로그 등에 박지성의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박지성과 스미스는 맨유에서 미드필더를 놓고 포지션 경쟁을 벌였는데, 두 선수는 한국축구팬들 사이에 댓글 공방전을 낳게 했다. 좀 더 프리미어리그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오래된 마니아들은 박지성의 맨유 진출로 새롭게 관심을 쏟는 ‘박빠’로 불리던 신입 마니아들과 박지성을 놓고 과열 경쟁을 벌였다. 박지성과 스미스 뿐 아니라 당시 맨유 간판스타였던 호날두까지 서로 호불호로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뜨거웠던 것은 역시 박지성과 스미스의 자리다툼이었다. 오래된 마니아들은 새로운 ‘박빠’들과 스미스를 표적으로 논쟁을 벌였다. 이들은 박지성에 대한 과잉 충성을 보인 ‘박빠’를 상대로 “그는 리즈 유나이티드에 있었을 땐 정말 잘했는데 맨유에선 포텐이 터지지 않아 리즈 시절부터 좋아했던 팬으로 안타깝다”, “앨런 스미스 리즈시절 ㄷㄷㄷ’라는 표현을 댓글에 많이 올렸다.

사실 스미스는 리즈 시절에는 박지성보다 더 두각을 나타냈었다. 하지만 맨유로 옮기면서 박지성을 압도할만한 실력은 아니었다. 당시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서 박지성을 두고 충성 경쟁이 벌어진 것은 현재보다 프리미어리그 정보가 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앨런 스미스가 리즈에서 활동할 때를 제대로 본 마니아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미 NBA 마니아층은 마이클 조던의 영향으로 인해 마니아층이 두터웠던 반해 프리미어리그는 소수 인원이 즐기고 있었다.
리즈 시절이라는 말은 마니아층을 통해 급격히 퍼져 나갔다. 프리미어리그가 인기를 끌면서 이 말은 축구팬뿐 아니라 연예인 등은 물론 일반인들의 화려한 젊은 시절을 얘기하는 의미로 자리를 잡았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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