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의 사람 ‘人’] 배구인출신으로 첫 연임에 성공한 오한남 대한민국 배구협회장 " 새로운 도약의 4년, 한국배구의 중흥을 이끌겠다"

김학수 기자| 승인 2021-01-26 08:02
2017년 6월 정통 배구인출신으로 첫 배구협회장에 오른 오한남 회장(69)은 시작부터 큰 위기를 맞았다. 대의원총회에서 ‘탄핵’으로 물러난 서병문 전 회장과 꼬인 실타래를 푸는 일이 시급했다. 2016년 서 전 회장은 인적 쇄신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지만 전임 집행부 인사를 중용했다는 이유로 인해 협회 사상 처음으로 탄핵되는 상황을 맞았다. 수개월간 회장 공백 상태가 빚어지는 것을 우려한 배구 선후배들의 추천을 받아 회장에 당선된 오 회장은 법원에 불신임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낸 서 전회장을 직접 만나 설득해 명예롭게 물러나는 길을 찾도록 했다.

서 전회장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 더 큰 협회의 숙제가 기다렸다. ‘깡통 빌딩’이 된 협회 소유의 강남구 도곡동 배구회관을 매각하는 일이었다. 2009년 9월 당시 대한배구협회(회장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는 배구회관을 매입했다. 부대비용까지 180억 원을 들여 매입했지만, 그중에 은행 대출금이 113억이나 되는 무리한 투자였다. 이 과정에서 협회는 '하우스 푸어'로 전락했다. 배구회관 건물은 매각을 해도 은행 대출금을 갚고 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협회는 이 때문에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협회 직원들의 봉급이 2달 밀리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오 회장은 우리 은행과 외국계 HSBC 등의 부동산 투자 전문 관계자들을 만나 배구회관 매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빌딩 매각을 성사시켰다.
위기가 있으면 기회도 찾아오는게 운명이라고 하던가. 오 회장이 처음 협회장에 취임한 지 1달여뒤 조원태 한국배구연맹 총재가 취임했다. 조 총재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대한항공은 예전 배구선수로서 오 회장이 몸담았던 회사였다. 그는 배구 명문 대신고에서 공격수와 세터로 뛰면서 경이적인 공식경기 148연승을 이끌었고, 명지대-대한항공을 거치며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할아버지 조중훈 회장, 아버지 조양호 회장에 이어 3대째 대한항공을 이끌고 있는 조 총재는 대한항공 배구팀 구단주이기도 해 오 회장과 배구발전을 위한 공감대를 쉽게 형성했다. 프로로부터 매년 6억원을 국가대표팀 경기력 향상을 위해 지원받기로 합의하면서 남녀 국가대표팀 전임 지도자제를 출범시켰다. 중동에서 사업으로 큰 성공을 이룬 오 회장 본인도 2억원의 개인 돈을 협회 재정에 출연했다.

투자는 성적으로 이어졌다. 여자배구는 지난 해 1월 2020 도쿄올림픽 본선 티켓을 획득했다. 2012 런던올림픽, 2016 리우올림픽에 이어 3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비록 남자배구는 이란과 풀세트 접전까지 치른 끝에 아깝게 본선 진출이 좌절됐지만 나름대로 좋은 경기 내용을 보여주었다. 배구인 출신 회장으로 4년간 재임하면서 나름대로 가장 큰 보람으로 삼을만 했다.

지난 주 대한민국 배구협회장 선거에 재선에 성공한 뒤, 2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공원 인근의 대한민국 배구협회 사무실에서 오 회장을 만났다. 오 회장은 “다시 회장을 맡게 돼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스포츠 전체가 어려운 상황 속에 4년 임기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 지난 4년보다 더 막중한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한국 배구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통 배구인출신으로 첫 연임에 성공한 오한남 대한민국 배구협회장은 새로운 4년, 한국배구를 더욱 도약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지원 기자]
정통 배구인출신으로 첫 연임에 성공한 오한남 대한민국 배구협회장은 새로운 4년, 한국배구를 더욱 도약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지원 기자]

다시 시작하는 4년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중책을 다시 맡았는데.

“사실 협회장 연임을 생각하지 않았다. 선후배분들이 지난 3년 6개월 임기동안 이뤄낸 성과를 인정하고 협회를 이끌어 줄 것을 거듭 권유해 한국배구의 도약이라는 막중한 책임감을 지고 회장 선거에 출마하게 됐다.”

-앞으로 4년간 중점적으로 추진할 부분을 소개한다면.

“배구 저변확대와 국내 대회 활성화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진행할 생각이다. 국가대표팀 강화를 통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배구가 국민스포츠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특히 2020 도쿄올림픽과 2024 파리올림픽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더욱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2024 파리올림픽에선 여자 뿐 아니라 남자도 올림픽 출전권을 동반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올림픽 본선 티켓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대표팀이 세계 수준의 국제대회에 참가해 경기력을 꾸준히 향상시켜야 한다. 국가대표팀의 성과를 바탕으로 배구 저변 확대를 이루도록 하겠다. 전문체육과 함께 생활체육이 함께 융합해 한 자리에서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데 많은 지원을 아까지 않겠다.”

-지난 해 코로나19 위기 상황으로 인해 많은 대회가 연기, 취소됐다. 코로나19에 대한 대비책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2020년은 참으로 어려운 해였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도쿄올림픽 예선전을 제외한 모든 국제대회가 취소됐다. 국내 대회는 전국남녀종별대회와 협회장기 전국생활체육대회와 4인제대회 등 3개 대회만 개최했을 뿐 나머지 대회는 모두 취소됐다. 하지만 국가대표팀을 재정비했고, 포지션별 배구교육 영상물 제작과 재활 및 보강운동 동영상 제작 등 비대면 교육자료를 제작해 어떤 상황에서도 배구를 쉽게 접할 수 있는시스템 구축을 위해 노력했다. 올해도 코로나19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국제배구연맹 및 아시아배구연맹 등 국제 단체와 국제대회의 운영 형태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소통할 생각이다. 국내대회는 전국규모 연맹체와 시도종목단체와의 유기적인 정보교류와 적극적인 소통으로 지난 해보다 한층 강화된 방역지침과 무관중 경기를 원칙으로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

 오한남 회장은 지난 해 1월 도쿄올림픽 아시아예선전에서 본선 티켓을 확보한 여자대표팀과 함께 했다.[ 대한민국배구협회 제공]
오한남 회장은 지난 해 1월 도쿄올림픽 아시아예선전에서 본선 티켓을 확보한 여자대표팀과 함께 했다.[ 대한민국배구협회 제공]


다시 돌아보는 3년6개월

오 회장은 2017년 6월 취임 후 평소 배구 발전 방안에 대해 고민한 부문을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협회를 안정화시키며 취약한 부분인 마케팅 강화를 위해 외부전문 마케팅 대행사인 갤럭시아 SM을 영입했다. 이를 통해 신한은행을 국가대표팀 후원사로 유치해 국가대표팀 지원 환경을 크게 개선했다. 44년만에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를 국내에 유치해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의 균형발전을 위해 새로운 4인제 생활체육대회를 창설, 언제 어디서든 쉽게 배구를 즐길 수 있는 환경 구축을 위해 힘썼다.

-지난 임기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잘 된 부분과 아쉬운 부분을 꼽는다면.

“먼저 지난 임기동안 가장 잘 된 부분은 여자대표팀이 올림픽 3연속 출전권을 획득한 것이다. 대표팀의 사상 첫 외국인 지도자 선임이 도쿄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좋은 성과로 이어진 점은 외국인 지도자와 국내 코칭스탭, 그리고 선수들이 한 마음으로 이뤄낸 성과라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트렌드인 유럽배구 스타일과 기존의 한국배구 스타일을 잘 혼합해 대표팀을 이끈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2019년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를 국내에서 개최한 것 역시 잘 된 부분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배구저변 확대를 위해 배구인들과 팬들을 위한 대회운영시스템의 모바일버전을 개발했으며, 비대면 배구교육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도 의미가 크다. 생활체육에서 4인제 배구를 출범시킬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반면 남자배구가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서 이란에 아쉽게 패한 게 아쉬움이 컸다. ”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나.

“배구 국제 경쟁력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게 아니다. 지속적으로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먼저 협회는 유소년부터 시니어까지 대표선수 발굴과 육성을 위해 체계적인 훈련프로그램과 국제대회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미래 국가대표 육성을 위한 전지훈련, 국가대표 후보선수 육성, 유스 및 청소년 국제대회 파견 등을 통해 차세대 국가대표 선수들을 확보해야 한다. 또 국제심판을 지속적으로 양성해야 하고, 국제연맹 등의 지원을 통해 인적네트워크를 강화해야한다. 최신 국제배구 흐름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교육 자료를 확보해 국내 지도자와 선수들에게 보급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운영을 해야 국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협회 운영에 가장 큰 어려움을 무엇인가.

“생활체육과 전문체육이 통합된 지 벌써 5년이 됐다. 하지만 아직도 저변에서부터 최상위 대표팀까지 연결되는 구조가 불안하다. 현재 스포츠클럽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전문선수나 등록팀 수가 여전히 적다. 스포츠클럽과 전문팀과의 연결고리를 원활하게 하고 많은 선수들이 국내에서 활동하는 것이 미래 배구를 위해 중요하다. 저변을 확대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며 오래 걸리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

외유내강 리더십과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진 CEO

오 회장은 중동에서 사업으로도 큰 성공을 이룬 CEO이다. 선수 은퇴이후 여자 실업팀 한일합섬 감독을 역임 한 뒤 중동으로 날아가 두바이 프로배구팀과 바레인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활동했다. 오 회장은 이후 바레인의 명소로 손꼽히는 음식점 ‘아리랑&에도’와 킹덤 팰리스 호텔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사우디·쿠웨이트 등 인근 국가의 부호들은 아리랑&에도 식당에서 한식과 일식을 즐기고, 식당 바로 옆 킹덤 팰리스 호텔에서 며칠씩 쉬었다 간다고 한다. ‘페르시아만의 사랑방’으로 불리는 오 회장의 사업장에는 중동 명사들과 비즈니스맨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해부터 그의 사업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국내에서 배구협회장을 맡게 되면서 사업에 전념할 수 없었던 것도 사업에 다소간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바레인 등에서 하는 사업은 현재 어떤 상태인가.

“ 세계적인 팬더믹으로 바레인을 비롯한 중동에서 확진자가 속출해 국가간 이동이 봉쇄되고 외부 출입이 제한됨에 따라 나를 비롯한 재외동포 모두 어려움 속에 사업을 하고 있다. 운영하고 있는 호텔, 레스토랑 및 렌트사업 모두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어려운 시기에 개보수 공사로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하고 있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보면 항상 위기가 찾아온다.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참고 잘 극복한다면 또 다른 기화가 올 것이라 확신한다.”

-배구를 한 것이 삶에 어떤 도움이 됐나.

“배구 선수 생활을 할 때 세터로 활동하면서 넓은 시야와 판단력, 통찰력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사업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또 배구를 통해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인연을 맺은 분들이 사업과 인생을 살아가는데 밑거름이 됐다. 앞으로도 배구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배구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헌칠한 키에 온화한 미소가 인상적인 외유내강의 오 회장에게서 영원한 배구인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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