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손자병법] 허재와 신선우 감독의 심모원려(深謀遠慮)

이신재 기자| 승인 2021-01-27 11:51
-깊은 꾀와 멀리 앞을 내다보는 생각.

왜 허재를 버릴까. 나이가 들긴 했지만 허재는 여전히 게임을 좌지우지할 힘이 있는 맹장 아닌가.
[스포츠 손자병법] 허재와 신선우 감독의 심모원려(深謀遠慮)


19985월 현대 신선우감독은 허재를 나래에 내주고 정인교를 받아들이는 기아의 트레이드를 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허재가 원한 트레이드였지만 아무래도 기아가 밑지는 장사였다. 틀림없이 이면 계약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신감독의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 가지 가능성.
그래, 윌리포드다.

그 생각을 머리에 떠올리자 자신도 모르게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프로농구 원년 최우수 외국인선수인 윌리포드가 기아에 합류, 클리프위드와 함께 골밑은 지킨다면 그것은 현대가 도저히 뚫을 수 없는 철옹성이었다.

어렵사리 이긴 챔피언결정전이었다. 7차전까지 가는 악전고투였다. 기아의 힘이 현재보다 눈꼽만큼만 강해져도 현대로선 무리였다. 윌리포드가 가세하면 기아의 전력은 최소 10% 이상 증가되는 셈이었다.

가설이지만 가능성은 충분했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현대의 2연패는 바라 볼 수 없었다. 윌리포드와 클리프리드 대 조니 맥도웰과 제이웹의 싸움. 맥도웰은 리드와 맞상대가 되지만 제이 웹으로 윌리포드를 막을 수 없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신감독은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우승 공신 제이 웹을 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구단에선 무슨 소리나며 펄펄 뛰었다. 그러나 앞뒤 상황을 설명하며 2연패를 하자면 달리 방법이 없다고 밀어붙였다.

신감독은 잠시 쉬기로 했던 계획을 미루고 바로 미 프로농구 하계 캠프로 날아갔다. 윌리포드에 대적할 만한 선수를 물색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그곳에서 큰 키에 스피드와 탄력을 보유한 재키 존스(2m 1, 105kg)를 발견했다.

신감독은 존스에게 트라이아웃에 신청할 것을 권유했다. 한국 제일의 기업인 현대에서 뽑겠다는 언질을 주면서. 그리고 8월 드래프트에서 현대는 2라운드 1순위에서 존스를 손안에 넣었다.

한편 기아는 신감독이 예상했던 대로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뽑은 데릭 존슨을 넘기며 나래의 윌리포드를 데려갔다. 허재와 정인교를 바꾼 후 외국인 용병 드래프트에서 나래가 원하는 선수를 뽑아 나래에 넘기고 윌리포드를 받는다는 전략. 그것이 바로 기아의 이면 계약이었다.

팀을 이끌 확실한 기둥 정인교도 받고 실력이 검증된 윌리포드까지 손에 넣는다는 기아의 트레이드 전략은 매우 훌륭한 것 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가 눈치채지 못했을 때의 일. 이미 작전을 간파하고 미리 대비하는 사람에게 통하지 않는다.

1년 후 다시 맞붙은 현대-기아의 챔피언전. 현대의 존스는 매치업 상대인 윌리포드를 압도, 현대의 41패 우승 밑거름이 되었다.

우승은 하늘이 도와줘야 하지만 하늘의 도움만으로도 안된다고 말하는 신선우 감독. 그의 심모원려가 없었다면 현대의 2연패도 없었다.

[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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