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손자병법] 12 김성근의 순수견양(順手牽羊

이신재 기자| 승인 2020-03-24 00:06
[프로야구 손자병법] 12 김성근의 순수견양(順手牽羊)

-기회를 틈 타 양을 슬쩍 끌고 간다. 적의 허점을 파고들어 승리를 얻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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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팀을 맡았지만 난감했다. 확실한 선발투수도 없고 공격의 물꼬를 틀만한 1번타자감도 없었다. 타자중엔 김기태, 투수중엔 김원형, 성영재, 김기덕이 고작이었다.

96시즌을 앞두고 쌍방울 지휘봉을 잡은 김성근감독은 고민이 많았다. 쌍방울의 전력은 밖에서 보던 것 보다 훨씬 못했다. 그렇다고 구단이 전력보강을 위해 애 써 줄 것 같지도 않았다. 알아서 하는 수밖에 없었다.

두산, 태평양, 삼성 감독을 지낸 그는 그가 지나온 곳에서 혹시 버리는 선수가 없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특히 인적자원이 풍부한 삼성을 예의주시했다. 백인천감독이 새롭게 부임, 기강을 잡고 있는 터여서 ‘버리는 물건’이 있을 법했다.

기대했던 정보가 들어왔다. 사생활 문제로 오봉옥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소식이었다. 오봉옥은 김 감독이 삼성 시절 승률 100%의 기록으로 승률왕에 올린 투수였다. 술을 좋아해서 문제지만 어깨는 튼튼했다. 다독거리며 잘 기용하면 충분히 한 몫 할 수 있었다.

김 감독은 즉시 오봉옥을 ‘수배’했다. 오봉옥은 교통사고를 낸 후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삼성은 그런 오봉옥을 방출해 버렸다.
김 감독은 그날 바로 대구로 향했다. 그리곤 병원 근처 커피숍에서 오봉옥을 만나 함께 한 번 해보자고 했다. 이런저런 문제로 실의에 잠겨있던 그는 얼싸 좋다며 머리를 숙였다. 김 감독은 그런 오봉옥을 보며 한마디 덧 붙였다.

“또 말썽을 피우면 가차 없이 자르겠다.”

김 감독은 오봉옥으로부터 다짐을 받자마자 즉시 오봉옥의 집이 있는 제주도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로부터도 승낙을 받았다. 오봉옥의 아버지는 김 감독에게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하며 제발 사람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김성근 감독이 그토록 숨가쁘게 오간 것은 혹시 삼성의 마음이 변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의 예상대로 삼성은 이틀쯤 후 오봉옥을 주워 담으려 했다. 그러나 엎지러진 물, 오봉옥이 이미 계약을 맺은 후였다.

김 감독에게 또 한가지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엔 재일동포 김실이었다. 발이 빨라 써먹을데가 많은데 게으른 것이 흠이었다. 삼성에선 활용도가 높지 않지만 쌍방울에선 거의 주전급으로 쓸 수 있었다.

김실은 백인천 감독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가 내쫓겼다. 백 감독은 김실이 재능만큼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에게 1개월여의 시간을 주며 살을 빼라고 했다. 회생의 기회를 준 것이었는데 김실은 그러질 못했고 백 감독은 가차없이 버렸다.

김성근 감독은 창졸간에 오갈데 없어진 김실을 얼른 챙겼다. 물론 그에게도 ‘게으름 피우면 끝장’임을 단단히 일러두었다.

공짜로 주운 오봉옥과 김실을 넣고 보니 제법 팀의 모양이 갖춰졌다. 오봉옥은 중간계투 요원으로 나서 흔들리는 경기를 잘 잡았다. 김실은 124경기에 출장, 3할에 가까운 타격을 했다. 그리고 꼴찌였던 쌍방울은 페넌트레이스 2위를 차지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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