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클롭 감독의 '마이 웨이, 독일 시골 소년에서 리버풀 감독까지

이태권 기자| 승인 2020-03-2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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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을 이끄는 위르겐 클롭 감독.[연합뉴스]
독일의 검은 숲에서 한 소년이 자라고 있었다. 검고 울창한 나무 숲에서 동심을 키우며 마음껏 축구공을 차고 동네 친구들과 놀았다. 이 소년이 먼 훗날 세계 빅리그의 프로축구팀 감독으로 성장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소년은 마음속으로 세계 최고를 꿈꿨다. 마침내 소년이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 감독으로 등극하는 영광의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무슨 애꿏은 일이었던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승승장구를 하며 리그 우승을 눈앞에 뒀다가 코로나19로 경기가 전면 중단되며 우승의 꿈을 잠시 접어야했다. 리버풀 FC 위르겐 클롭 감독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영국 BBC스포츠는 23일 클롭 감독의 어릴 시절 이야기를 집중 조명했다. 위르겐 클롭 감독의 '마이 웨이', 독일 시골 소년에서 리버풀감독까지'이다.

클롭 감독은 독일 남서부 지방의 슈바벤 출신이다. 스와비아 산맥을 지나면 마인츠와 도르트문트, 리버풀 같은 산업도시와 다른 전원풍의 글라텐 마을이 있다. 클롭은 이 곳에서 소박한 시골 풍경을 보고 자랐다. 들과 산, 개울을 넘나들며 살았던 어린 시절의 영향으로 자유분방하고 소박한 성격을 갖게됐다. 실제로 클롭은 리버풀 감독으로 부임한 후 취임식에서 '스페셜 원'이라 불리는 무리뉴 감독에 대조해 자신을 '노말 원'이라고 소개하며 수수하고 독립적인 성격을 드러낸 바 있다.

슈바벤 사람들은 낯가림이 심하지만 한번 친해지면 평생의 동반자로 지낼만큼 깊은 교류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마을사람들의 영향으로 클롭 감독은 넉넉한 인간성을 기르고 감정이 풍부해졌다. 클롭은 사람과의 인연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40년이 지났어도 자신이 유소년 선수로 뛸 때 당시 코치로 있었던 울리치 라스의 75번째 생일 축하 전화를 한 것이 한 예이다. 감독으로 부임한 도르트문트와 리버풀구단에서 선수는 물론 구단 임원진, 팬, 미디어 관계자를 가릴 것없이 격의없는 소통을 하면서 인간적인 교류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클롭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그의 아버지다. 보따리 장수 일을 하며 아마추어 골키퍼로 활동했던 그의 아버지는 위르겐 클롭을 스포츠의 길로 안내했다. 인격적으로도 아버지의 기질을 이어받은 클롭은 항상 활기차고 열정적인 소년이었다. 클롭과 SV글라텐의 유스팀에서 같이 뛰었던 젠스 하스는 "클롭은 유소년 팀의 주장이었다" 면서 "승부욕이 강했고 천성적인 리더였다"고 밝혔다.

축구 감독으로서의 클롭의 면모는 그가 열한살이 되던 해부터 발휘되었다. 유소년 축구선수로 뛰면서 미드필더로 활약한 클롭은 그의 동료 하스와 함께 응원팀 슈트트가르트의 경기를 라디오 중계로 들었다. 하스는 "클롭은 라디오 중계를 통해 들리는 슈트트가르트의 전술을 분석하고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몇 가지 대안을 말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잠시 후 라디오의 해설을 들어보면 슈트트가르트와 클롭이 내통한 것처럼 작전 변경이 이루어졌었다"며 그때부터 클롭이 명장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고 전했다.
클롭은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스포츠과학을 전공하며 아마추어 선수생활을 하다가 1990년 23살의 나이에 분데스리가 마인츠05에 입단했다. 클롭의 입단 당시 마인츠05의 주장이었던 슈마허는 "공격수 클롭은 스피드가 빠르고 헤딩 능력이 좋았다. 하지만 테크닉이 부족해서 기량을 늘리는데 고생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당시 경기장에 클롭이 소개되면 팬들은 야유를 보냈고, 클롭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당시 동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클롭은 선수생활을 회상하면서 "나는 1부 리그의 축구두뇌를 가졌지만 실력은 그렇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기량은 좋지 않았더라도 선수시절 클롭은 전술적인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는 1995년 울프강 프랭크 감독의 권유로 수비수로 변신했다. 수비수로 전향 후에도 공격 본능을 발휘해 '원더골'을 성공시키는 등 수비수 변신에 성공한 클롭은 마인츠에서 11시즌동안 325경기에 출장했다.

감독자리는 갑자기 찾아왔다. 2001년 마인츠는 3부리그의 강등권에 놓여있었다. 당시 마인츠 단장이었던 헤럴드 스투르츠는 "3명의 감독이 연속적으로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되었고 구단 수뇌부는 새 감독을 구하지 못하면 선수단 내부에서 감독 적임자를 찾으려고 했었다"고 밝혔다. 그는 팀을 이끌며 팬들에게도 감동을 준 클롭을 감독으로 선임했다. 클롭은 감독으로서 첫번째 경기였던 뒤스부르크전 1-0승리를 시작으로 부임 후 7경기에서 6경기를 이기며 마인츠를 강등권에서 탈출시켰다. 2001-2002, 2002-2003시즌 연속으로 아깝게 시즌 최종전에서 1부리그 승격에 실패한 클롭 감독은 2003-2004시즌 팀을 리그 3위로 이끌며 승격시켰다.

마인츠의 1부리그 승격과 함께 클롭의 질주가 시작됐다. 전술적인 예리함과 인간적인 매력을 바탕으로 독일 축구계에서 손꼽히는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된 그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해설을 맡으며 일반 대중들에게도 이름을 알렸다.

2008년 도르트문트 감독으로 부임한 클롭은 8만명이 수용가능한 베스트팔렌스타디움의 '노란 벽'이라고 불리는 도르트문트 팬들과 강한 친밀감을 형성했다. 경기도중 선수들에게 소리치고 손짓하는 등 열정적인 지도와 함께 '게겐프레싱(압박전술)'으로 알려진 클롭 감독 특유의 강한 압박축구를 구사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도르트문트 감독 부임 3년만에 2011시즌 분데스리그 타이틀을 따낸 클롭 감독은 이듬해 분데스리그와 컵대회에서 연이어 우승을 차지하며 유럽축구의 변방이었던 도르트문트를 가장 주목받는 팀으로 변모시켰다.

클롭 감독은 전술적으로 해박할 뿐 아니라 마케팅 역량도 갖췄다. 클롭이 도르트문트 감독에 부임했을 당시 마케팅 팀장이었던 카스텐 크라머는 "클롭은 타고난 감성마케터"라고 평가했다. 이어 "클롭은 격의없는 소통으로 구단에 인간미를 입힌다. 이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처럼 팬들과 감정적 교류가 많은 구단에게 완벽하게 적합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클롭 덕분에 스폰서로부터 계약 연장을 제의 받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도르트문트를 떠나 부임한 리버풀은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 6회를 달성하며 EPL구단중에서 가장 많은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린 전통의 명문 구단이다. 하지만 정작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한번도 리그 우승을 달성하지 못하는 오점을 남기고 있다. 클롭은 리버풀 감독 취임식에서 "4년 내에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하면 사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2018-2019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하며 팬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올시즌 클롭은 리버풀의 숙원사업인 리그 우승의 짐을 짊어지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다.

[이태권 마니아리포트 기자/report@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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