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아 스토리]대한민국 체육100년 100인 100장면 ⓫ 죽음마저도 극복한 엄홍길

이신재 기자| 승인 2020-08-16 06:04
죽음은 인간이 죽어도 극복할 수 없는 마지막 한 가지다. 그러나 굳이 극복하지 않아도 된다. 가면 그만이니까. 죽음은 그래서 살아남은 자의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지극한 슬픔이고 고통이다.

안나푸르나는 오랜 아픔이었다. 언젠가는 안나푸르나의 신이 허락하리라고 믿고 있었지만 그 믿음을 의심케 할 정도로 번번이 아픔과 좌절을 안겼다. 1999년 엄홍길은 또 안나푸르나로 향했다. 다섯 번 째 였다. 세월로는 10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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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가운데 13개 봉 등정에 성공한 스페인의 후아니토가 하나 남은 그 길을 함께 하고 싶다며 연락해왔다. 4번의 실패를 통해 안나푸르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엄홍길의 경험이 필요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1989년 겨울 첫 등정에서 좌절을 맛본 엄홍길은 안나푸르나를 후순위에 넣고 있었다. 그가 다시 안나푸르나를 찾은 것은 1996년 겨울이었다. 그리곤 해마다 안나푸르나로 향했다. 꼭 해야 될 숙제를 하지 않은 찜찜함 때문이었지만 한(恨)만 쌓였다.

1997년 봄 세 번째 도전. 혈육 같은 셰르파 나티를 보냈다. 1998년 본 네 번째 도전. 정상 직전의 설사면에서 셰르파를 구하다가 발목이 180도 돌아가는 부상을 입었다. 하산에 3일이 걸릴 정도의 큰 부상이었다.

고산 등반이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엄홍길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일어섰고 1년만에 다시 안나푸르나를 찾았다.

그 길에 그는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여성 산악인 지현옥을 대동했다. 첫 등정 실패 때 함께 했던 터여서 기회를 주고 싶었다. 후아니토도 지현옥도 다 좋아했다. 그들은 이미 산에서 안면을 익힌 터였다.

안나푸르나가 이번에는 정상으로 향하는 문들을 활짝 열어주길 마음속으로 간절히 원하며 새벽에 길을 나섰다.

얼마를 올랐을까. 태양 빛이 정수리를 넘어 갈 즈음 시야가 거침없이 트였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었다. 부상당했던 오른 쪽 다리가 떨어져나갈 듯이 욱신거렸다.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안고 정상에 엎드렸다.

하산 길. 정상에서 20분 쯤 내려왔을까. 지현옥이 올라오고 있었다. 엄홍길은 손을 들어 정상을 가리키며 그에게 무전기를 건넸다. 지현옥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눈앞의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 모습이 그가 엄홍길에 보여준 마지막 모습이었다. 정상에 올랐다는 무전교신을 끝낸 후 소식이 끊겼다. 그 밤을 꼬박 새웠지만 지현옥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산 길에 사고를 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미친 듯이 찾아다녔으나 정상으로 향한 능선 어디에도 지현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갈망했던 안나푸르나. 엄홍길은 살아 남았지만 지현옥은 갔다. 침묵의 산이 부른다며 언제나 산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지현옥은 영영 그 속에 묻혔다.

죄책감과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녀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 아닌가. 환각과 환청에 사로잡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지현옥이 활짝 웃으며 금방이라도 들어설 것 같았다.
처음이 아니었지만 지현옥은 유달랐다. 아픔은 잊혀지는 게 아니라 갈수록 더 심했다.‘엄홍길은 불사신이지만 그를 따라나서면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는 수근거림까지 들려왔다.

이제 그만 접어야 할까.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히말라야에 남은 지현옥을 위해서라도 또 가야했다. 아직도 오르지 못한 낭가파르바트, 칸첸중가, K2의 3개의 봉우리가 있었다.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 죽음을 뛰어넘어야 했다. 그만 두는 건 이중의 아픔이고 두 번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등정을 재촉했다. 2개월 후 엄홍길은 낭가파르바트가 기다리고 있는 파키스탄으로 향했다.

엄홍길은 안나푸르나 후 불과 1년4개월 여만에 3개의 봉우리를 모두 올랐다. 유례를 찾기 힘든 빠른 등정이었다. 2000년 7월 K2를 마지막으로 14좌 완등을 마쳤다. 그리곤 로체샤르 등 2개의 위성봉까지 마저 올라 16좌 완등 기록을 세웠다.

죽음, 특히 동료들의 죽음은 늘 그를 죽을 것 같은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그 때마다 그는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좋았을 걸’하고 되 뇌이면서도 또 일어섰다. 죽음을 극복하는 일은 정말 힘들었지만 그건 먼저 간 동료와 그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엄홍길에게 산은 차라리 쉬운 선택이었다. 산은 늘 그곳에 있었고 산에 가자고 처음 마음 먹은 후 변하지 않는 명제였으니까. 그에게 정말 어려운 선택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총선 때가 되면 정치권에서 그를 찾았다. 지역구 공천을 주겠다고도 했고 비례대표를 제의하기도 했다. 더러 흔들린 적도 있었으나 생각해 본적 없는 일이어서 바로 거절했지만 그들은 나름의 이유를 설명하며 그를 종용했다.

산의 동료들은 반대했다.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이용만 당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되지도 않는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 명예를 지켜야 한다. 자칫 오염되면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다 날라 가고 만다.

비산악인들은 찬성했다.

그것도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정치를 통해 산의 일을 계속 볼 수 있고 산악인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산을 탈 수 있겠느냐. 국회의원은 새로운 명예다. 현실을 파악해야 한다.

그는 자문했다.

국회의원 엄홍길도 결코 나쁜 건 아니다. 분명히 할 일도 있을 것이다. 상처는 입겠지만 묵을 가까이 하면 검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후회는 있을 수 있지만 새로운 선택이 과연 현재를 포기할 만큼 중요한 것인가.

영원한 산악인 엄홍길. 그는 2019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에 선정되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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