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심영자회장(77)은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복싱 프로모터로 1980~90년대 복싱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4년 88프로모션을 설립, 김진길관장과 WBC 슈퍼 플라이급 전 챔피언 김철호와 함께 김용강을 WBA•WBC 플라이급, 문성길을 WBA 밴텀급, WBC 슈퍼플라이급, 김봉준을 WBA 미니멈급 챔피언으로 키웠다.

여배우 출신으로 상당한 재력가였던 그는 재능 있는 복서들을 발굴, 적극적으로 후원하며 복싱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프로모션을 하기 전에도 권투 선수들을 후원했는데 한창 때는 4~5명의 선수가 그의 집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장정구도 그의 눈에 띄어 본격적으로 복싱에 뛰어들었고 본인이 운영했던 88체육관 관장인 전 챔피언 김철호 역시 그가 키운 선수였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세계선수권자 문성길을 조금 일찍 프로로 돌려 챔피언좌에 올린 것도 심영자 회장이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외국선수들을 후원하기도 했다. 복싱강국 태국의 ‘형제 챔피언’ 갤럭시도 그가 관심을 가지고 지원했고 결국 그런저런 연유로 문성길과 타이틀매치를 벌였다. 카오코 갤럭시와 형 카오사이 갤럭시는 무에타이 선수 출신의 세계 챔피언이었다.
심회장은 경기 전 행사의 하나로 악수 대신 상대 선수의 볼에 키스를 했는데 태국 원정 시 볼키스를 받은 싱노이 등 두, 세명의 선수가 연이어 패하자 태국언론이 ‘죽음의 키스’라며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키스는 국적을 떠나 열심히 복싱하는 선수들에 대한 마음의 키스였고 태국 언론도 그 점을 강조하면서 한편에선 '행운의 키스'라고 했다.
90년대 초 확실하게 국내 프로복싱 프로모션계의 선두주자로 올랐으나 복싱에 너무 많은 재산을 쏟아 부은 터에 프로복싱이 침체의 길에 들어서는 바람에 1990년대 중초반 복싱을 떠났다.
복싱 사랑이 지극했던 고 심영자회장은 모든 선수들을 ‘엄마’처럼 편안하게 대해 ‘마마 심’으로 불리며 10여명의 세계챔피언과 인연을 맺었다. 고수미라는 예명으로 ‘죽도록 사랑했노라’, ‘홍도야 울지마라’ 등 1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향년 77세. 빈소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 발인 24일 오후 2시, 장지 서울 추모공원.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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