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42. ‘링의 대학교수’를 눕힌 대학생 박찬희

이신재 기자| 승인 2020-11-22 02:40
박찬희는 빠르게 프로 정상에 다가갔다. 프로 전적 10전 9승 5KO 1무 만에 갖는 타이틀전이었다. 하지만 그의 역량은 127전 125승 2패의 아마추어 전적에서 이미 검증된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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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는 고교 1학년 때 국가대표로 뽑혔고 고 2 때인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기교파이면서 펀치력까지 겸비한 천재복서의 출현이었다.

대학 1년생인 박찬희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나섰다. 금메달도 가능하다는 예상이었다. 하지만 8강전에서 세계 최강인 쿠바의 호르헤 에르난데스를 만나는 바람에 금메달은커녕 메달권 진입에도 실패했다.

프로로 돌아선 박찬희는 1979년 3월 18일 기회를 잡았지만 챔피언의 길은 험난해 보였다. 챔피언인 멕시코의 미구엘 칸토는 WBC 플라이급 타이틀을 14차례나 방어한 백전노장. 뛰어난 테크닉과 경기운영으로 ‘링의 대학교수’로 불리고 있었다.

대학생과 ‘교수’의 싸움. 예상은 교수였다. 하지만 결과는 대학생이었다. 박찬희는 변칙복싱으로 칸토의 진로를 봉쇄하는 한편 원투펀치와 훅을 들이밀어 칸토가 자기 자신의 복싱을 구사하지 못하게 했다. 박찬희의 산뜻한 15회 판정승이었다.

창졸간에 타이틀을 잃은 칸토는 ‘챔피언 옵션’을 행사, 박찬희의 2차방어전 상대로 나섰다. 박은 그 사이 일본의 이가라시 치카라를 15회 판정으로 누르고 1차 방어에 성공했다.

이번에도 예상은 또 칸토의 우세였다. 칸토가 자신의 복싱을 제대로 구사할 것이고 그렇다면 두 번은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전문가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박찬희는 5회 다운을 뺏는 등 경기를 주도했다. 하지만 중반이후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경기 일주일전 쯤 걸린 감기가 화근이었다. 그런 중에도 박찬희는 용케 버티었다. 서 있기도 힘든 정도. 그 바람에 주먹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헤맸지만 지지는 않았다. 무승부로 타이틀을 방어했다.

WBA플라이급 전 챔피언 에스파다스와의 3차 방어전(12월 16일)은 역대급 명승부였다. 박찬희는 1회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운을 당했다. 11전10승10KO 1패의 에스파다스 주먹을 생각하면 간담이 써늘해지는 다운이었다.

그러나 충격이 심하지 않았든 듯 다시 일어서 주먹을 교환했다. 1회전을 무사히 마쳤지만 언제 다시 쓰러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2회전,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박찬희의 화려한 주먹이 불을 뿜었다. 연타에 연타, 에스파다스는 쓰러지고 또 쓰러졌다. 세차례의 다운, 박찬희의 통쾌한 역전 KO승이었다.

박찬희는 1980년 5월 18일 6차 방어전에서 일본의 오쿠마 쇼지에게 9회 KO패, 타이틀을 잃었다. 패인은 기량이 아니라 배탈이었다. 6개월 후 오쿠마와의 일본 원정 리턴매치에서 잘 싸웠지만 텃세판정을 극복하지 못했다.

WBC가 일본측의 텃세판정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WBC는 재대결을 지시했다. 세 번째의 경기. 설욕을 노렸지만 박찬희는 이미 의욕을 잃은 듯 했다. 또 판정패, 끝내 정상탈환에 실패한 후 링을 떠났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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