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노트] 류현진, 박찬호의 길을 갈 것인가, 매덕스의 길을 갈 것인가

장성훈 기자| 승인 2020-08-01 05:08
개막 후 2경기에서 부진했던 류현진
개막 후 2경기에서 부진했던 류현진


‘코리안 특급’ 박찬호는 LA 다저스에서 성장했다. 강속구 하나 믿고 한양대 재학 중 1994년 미국으로 홀연히 떠나 첫 경기부터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마’ 같았던 그는 2경기 만에 마이너리그로 강등됐다. 선발로 키우기 위한 다저스의 계산이었다.

더블A와 트리플A를 전전하며 2년간 마이너리그 생활을 견뎌냈던 박찬호는 1996년 마침내 메이저리그에 복귀했다.

선발 투수로도 10경기에 나서 5승5패, 평균자책점 3.64를 기록하며 선발 5인 중 한자리를 꿰차는 데 성공했다.

이후 그는 그야말로 폭풍 성장을 했다. 매 시즌 30경기 이상 선발 투수로 나섰다. 5년간 75승을 올렸다. 한 시즌 평균 15승을 다저스에 선사했다. 2000시즌에는 생애 최다인 18승을 올리며 메이저리그 정상급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이쯤 되면 그도 사람인지라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거기다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의 유혹도 집요했다.

자신을 키워준 다저스에서 은퇴할 것으로 보였던 박찬호는 2002년 다저스의 재계약 제의를 뿌리치고 5년 6500만 달러의 ‘잭팟’을 터뜨리며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했다. 당시 5년 6500만 달러는 지금 시세로 치면, 연평균 약 3000만 달러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고향이나 다름없었던 LA를 떠난 박찬호는 그러나 레인저스와는 궁합이 맞지 않았다.

잦은 부상과 구위 저하 등으로 3년 반 동안 고작 22승을 선사하는 데 그쳤다. 평균 자책점은 5.79였다.

인내심에 한계를 드러낸 레인저스는 결국 2005시즌 중 그를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에 트레이드하고 말았다.

이 일로, 매년 자유계약 때만 되면 박찬호는 ‘역대 최악의 계약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먹튀’라는 지적도 감내해야 했다.

레인저스를 떠난 박찬호는 이후 2010년 메이저리그 생활을 접을 때까지 무려 8개 팀을 전전하는 ‘저니맨’으로 전락했다.

아시아 투수 최다승 기록(124승)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말년은 쓸쓸했다.

42세까지 355승을 기록한 그렉 매덕스는 ‘제구력의 마술사’였다.

그의 평균 패스트볼 구속은 메이저리그 평균(145km)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도 매덕스는 송곳 같은 제구력 하나로 최고의 피칭 사이언티스트가 됐다.

그가 타자를 잡아내는 과정은 환상적이었다. 포심 패스트볼, 투심 패스트볼, 컷 패스트볼, 서클 체인지업, 슬라이더, 스플리터, 싱커, 커브 등 8가지 구종을 속도와 궤적을 바꿔가며 던졌다. 같은 공이 같은 코스, 같은 속도로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여기에 홈플레이트의 양 모서리에 정확히 꽂히는 제구력은 일품이었다. 볼넷이 거의 없었다.

또 ‘수싸움’이 능수능란했다. 특히 매덕스는 볼 배합을 포수에게만 의지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의 타격 자세를 보고 어떤 공을 노리고 있는지를 알아냈다.

이러니 비록 150km 이상의 강속구를 던지지 못해도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투수로 오랫동안 군림할 수 있었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이 별명답지 않게 올 시즌을 불안하게 출발하고 있다.

두 경기에서 8.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특히 두 경기 모두 5회를 넘기지 못했다. 비정상적인 시즌임을 감안하더라도, 평소의 그답지 않은 모습이다.

류현진은 박찬호처럼 LA 다저스에서만 던졌다. 고향과도 같았다. 홈경기에서의 성적이 이를 말해 준다. 그래서 그는 영원히 다저스에서만 공을 던질 줄 알았다, 박찬호처럼.

그러나, 그 역시 보라스의 ‘꼬임’에 넘어가고 말았다. 4년간 8000만 달러라는 거액을 거머쥐게 해주겠다는 보라스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미국도 아닌 캐나다의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했다. 어머니 품 같이 포근한 LA를 버리고, 물설고 낯선 곳을 택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류현진 역시 박찬호처럼 FA 대박을 터뜨린 후슬럼프에 빠졌다. 자칫 박찬호의 길을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단순한 슬럼프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류현진도 박찬호처럼 ‘먹튀’ 소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류현진은 한때 ‘코리안 매덕스’라는 찬사를 받았다. 제구력이 매덕스 못지 않았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다시 그런 칭찬을 받을 수 있다. 그러려면, 매덕스의 길을 더욱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

[장성훈 선임기자/report@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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