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룰 집행 vs 시청자가 심판이냐’ 렉시 톰슨 벌타 후폭풍

이은경 기자| 승인 2017-04-03 17:59
렉시톰슨.사진=마니아리포트DB
렉시톰슨.사진=마니아리포트DB
[마니아리포트 이은경 기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ANA인스퍼레이션의 우승 트로피 향방을 가른 ‘4벌타 사건’을 두고 팬들과 선수들 사이의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3일(한국시간) 막을 내린 이 대회에서는 유소연(27, 메디힐)이 연장 끝에 렉시 톰슨(미국)을 꺾고 역전 우승했다.
4라운드 중반까지도 톰슨의 기세가 무서웠다. 3타 차 단독 선두를 질주하던 톰슨은 12번 홀을 마친 후 경기위원으로부터 “전날 3라운드 경기 도중 마크한 곳에 정확하게 공을 놓지 않은 게 밝혀져 4벌타를 부과한다”고 통보 받았다. 이 순간 톰슨은 “농담이죠?”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그만큼 갑작스럽고 일반적이지 않은 패널티였다.

톰슨은 3라운드 17번 홀(파3)에서 퍼트를 하기 위해 마크 자리에 공을 놓았는데, 이때 원래 공이 있던 곳보다 약 2.5cm 정도 홀 앞으로 공을 놓고 쳤다. 이 같은 사실은 중계를 지켜보던 한 시청자의 제보로 뒤늦게 알려졌고, 경기위원은 이를 받아들여 공을 잘못 둔 것에 대해 2벌타, 스코어카드를 잘못 적은 것에 대해 2벌타를 매겨 총 4벌타를 부과했다. 이 벌타는 4라운드 도중에 부과되면서 순식간에 톰슨의 순위가 추락했다. 톰슨은 기어이 스코어를 회복해 연장까지 갔지만, 유소연에게 밀려 준우승했다.

찬(贊) : 골프는 매너의 운동, 철저하게 규정 적용해야

벌타를 매기기까지 과정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일단 톰슨이 3라운드 도중 규정을 위반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중계 화면을 다시 확인해 보면, 톰슨이 3라운드 17번 홀 파 퍼트를 하기 전 공을 집어들 때와 다시 공을 놓을 때의 위치가 다르다.

골프는 매너의 스포츠다. 경기위원이 존재하긴 하지만, 스스로 규정을 어겼다는 걸 알아채면 먼저 신고하는 게 원칙이다.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서 플레이하는 LPGA투어에서 이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난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서도 우승자가 벌타를 받은 적이 있다. 더스틴 존슨(미국)이 최종 라운드 퍼트를 하던 도중 미세하게 공이 움직였고, 움직이는 원인을 존슨이 제공했다고 판단돼 존슨은 라운드를 모두 마친 후 1벌타를 받았다. 2위와 격차가 컸던 덕분에 이 벌타가 존슨이 우승하는 데는 변수가 되지 못했다.

지난해 US여자오픈에서도 연장 두 번째 홀 도중 안나 노르드크비스트(스웨덴)가 벙커 샷을 할 때 클럽이 닿아 모래가 움직였다며 벌타를 받았다. 이 같은 사실은 연장 세 번째 홀에서야 통보됐고, 이 탓에 노르드크비스트는 준우승에 그쳤다. 최근 메이저 대회에서 유독 더 깐깐하게 규정이 적용되고 있는 것도 추세라고 할 수 있다.

톰슨이 고의로 공을 잘못된 자리에 두진 않았을 거라는 게 동료 선수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일부 팬들은 “렉시 톰슨이 평소에도 퍼트를 할 때 마크 보다 조금씩 앞에 공을 두는 나쁜 습관이 있다. 그게 이번에 불운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냉정하게 분석하기도 했다.

ANA인스퍼레이션4라운드의렉시톰슨.사진=AP뉴시스
ANA인스퍼레이션4라운드의렉시톰슨.사진=AP뉴시스

반(反) : 시청자가 경기위원인가?

아무리 골프가 매너의 경기고, 규정이 칼 같이 지켜져야 하는 스포츠라고 하더라도 TV 중계를 보던 시청자의 제보가 우승 향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건 심정적으로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비슷한 케이스가 2013년 최운정(볼빅)에게도 있었다. 당시 최운정이 캐나다 퍼시픽 오픈 2라운드를 마쳤을 때 경기위원이 ‘10번 홀 퍼트 때 마크를 정확한 위치에 하지 않았다’며 2벌타를 매겼다. 최운정의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최운정은 스코어카드를 제출하지 않고 기권했다.

선수 입장에서는 자신의 플레이가 시청자의 제보에 영향을 받는다는 게 쉽게 납득이 갈 리 없다. 골프장에서 바람과 햇빛, 심리적 부담 등 각종 어려움과 싸우며 이뤄낸 결과를 편하게 TV 보던 사람이 개입해서 바꾼다는 것도 심리적 저항감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ANA인스퍼레이션 우승자 유소연도 우승 인터뷰에서 “모든 선수들이 혼신의 힘을 다 해 플레이한다. 렉시 톰슨의 벌타 소식을 듣고 나 역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미국 네티즌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날 렉시 톰슨의 벌타와 관련된 기사, SNS 링크에 달린 댓글을 보면 “말도 안 된다” “LPGA가 한심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모처럼 LPGA투어에서 미국 선수가 우승 기회를 잡았는데, 석연찮은 이유로 날아갔으니 더 흥분할 만하다.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렉시 톰슨을 대거 응원하고 나섰다. 타이거 우즈(미국)는 자신의 트위터에 “집에서 TV중계를 보던 시청자가 경기위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썼고, LPGA 투어프로 앨리슨 리(미국)는 “만일 대회가 다 끝난 후에 잘못이 발견되면 어떻게 되나? 트로피를 빼앗나?”라고 비꼬았다.

골프채널의 기자 저스틴 레이는 “이봐, 스테판 커리. NBA 파이널 3차전에서 자유투를 쏠 때 선을 밟았어. 그 경기는 클리블랜드가 이긴 걸로 해”라고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PGA 프로 스마일리 카우프먼(미국)은 “렉시 보기에 부끄럽다. 소파에서 치토스 먹던 시청자가 대회 결과에 개입할 수는 없다”고 일갈했다. 리디아 고(뉴질랜드)는 “믿을 수 없다. 사람들이 전화하는 걸 막도록 조치를 취하거나 규정이 바뀌어야 한다”고 의견을 내놨다. /kyo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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