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 교사 허치슨(W. du. F. Hutchison, 轄治臣)과 핼리팩스(T. E. Hallfax, 奚來百土)의 인솔로 관립외국어학교 분교인 영어학교 학생들이 소풍과 운동을 겸한 야외놀이 행사였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운동회라고 할 수있는 화류회(花柳會)다.
낯선 행사인 화류회라고 했지만 사실 우리나라에는 옛부터 화류라는 놀이가 있었다. 봄과 가을 날씨가 좋은 날을 골라 이웃마을 서당의 학동들끼리 벌이는 놀이였다. 이때 화류에서는 장치기, 줄다리기, 릴레이식 바가지 밟기 등을 했다. 이 놀이에서 이긴 서당은 농악을 치며 마을을 돌았는데 집집마다 떡상을 차려 이들을 융숭하게 대접했다고 한다. 서당에 앉아 공부만 하는 학동들이 이날 만큼은 공부에서 벗어나 이웃마을 학동들과 우의도 다지면서 신체단련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으며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응원을 하기도 했다.
독립신문은 1896년 5월 5일자에서 이 때 화류회 모습을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영어학교 교사와 학도들이 이달 이튿날 동소문 밖으로 화류회를 갔다. 오래 학교 속에서 공부하다가 좋은 일기에 경치 좋은데 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장부에 운동을 하는 것은 진실로 마땅한 일이나 다만 마음과 지각만 배양할 게 아니라 조선 사람들이 몸 배양하는 것도 매우 소중한 일이니 몸 배양하는 데는 맑은 공기에 운동하는 게 제일이요, 목욕을 자주하야 몸을 정하게 하는 것이 제일이라."
즉 독립신문은 조선사람들에게 체육의 필요성과 함께 보건과 위생을 통해 몸 배양, 즉 건강한 신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영어학교의 화류회가 끝난 뒤 20여일이 지난 5월 31일에는 훈련원(전 동대문운동장으로 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자리)에서 처음으로 운동회라는 이름을 붙인 ‘관립소학교 연합운동회’가 열렸다. 이 운돟회에는 장동에서 23명, 계동에서 40명, 정동에서 76명, 묘동에서 48명 등 모두 181명의 재학생들이 모였으나 오심이 속출하면서 분쟁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 바람에 수명의 교사들이 10일간씩 행정처분의 징계를 받기도 했는데 일부 연구자에 따라서는 이를 우리나라 최초의 운동회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여간 화류회를 통해 근대적인 운동회가 시작됐고 이 운동회는 각급 신식학교들과 지역 청년회들을 중심으로 체육활동의 일환이라는 단순함에서 벗어나 조선의 국권회복을 상징하는 행사로 자리잡으면서 초기 근대체육을 일반 대중들에게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우리나라 근대체육의 시작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태화 마니아리포트 편집인/cth08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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