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7년차 SK 이건욱과 불혹(40살)에 접어든 불펜 포수 LG 이성우. 이들의 행보는 다른듯 뭔가 닮았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무명으로 보냈다. "올해 한해만 더…, 올해 한해만 더…"라며 포기하고 싶은 끈을 간신히 붙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올해는 2게임에 나섰다. 지난 12일과 13일 LG전에서 두 차례 구원등판해 각각 1이닝 무실점, 2⅔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확연히 달라졌다. 스프링캠프를 부상없이 완주한 덕분이었다. 달라진 이건욱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 본 염경엽 감독의 눈도장도 받았다. 그리고 퓨쳐스리그에 내려가 선발 수업을 쌓은 뒤 28일 두산전에 전격적으로 선발로 기용됐다. 이미 두산에 연패를 당해 스윕패의 위기가 감돌고 있는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경이적이었다. 4회 2사까지 두산의 그 어떤 타자도 1루를 밟지 못했다. 공격적인 피칭이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5⅓이닝 3피안타 1볼넷 3탈삼진 1실점(1자책)을 하며 6-1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팀에 귀중한 1승 선물을 하면서 생애 첫 승리투수가 됐다.
이건욱에게 지난 6년간은 너무나 아프고 힘든 시간들이었다. 동산고 시절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한일전에서 오타니 쇼헤이(26·LA에인절스)와 맞대결을 펼쳐 한국을 승리로 이끌면서 일찌감치 '슈퍼루키'로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8이닝을 무실점. 반대로 오타니는 7이닝 2실점으로 패전투수였다. 당연히 프로에서도 1순위로 지명을 받았고 큰 기대도 받았다. 하지만 프로에서는 거의 보기가 어려웠다. 잦은 부상때문이 발목을 잡았다.
이건욱이 절치부심의 6년을 보냈다면 LG 이성우는 프로생활 20년차인 '일년 살이' 선수다. '일년살이' 선수가 항상 그렇듯이 '한 해만 더 할수 있다면…', 그리고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며 시즌을 보낸다, 그만큼 그는 2년 전 SK에서 방출될 때 이제는 유니폼을 벗어야 할 선수였다. 그런 그에게 LG가 지난해 연봉을 1천만원이나 더 인상해 주면서 손을 잡았다. 그리고 55게임에 백업포수로 출장해 64타수 10안타(타율 0.156)를 기록했다. 처음으로 끝내기 안타가 있었지만 재계약을 해 주지 않아 유니폼을 벗더라도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그런 선수에 불과했다.
그러던 그가 27일 한화전에서는 8회초 1사 만루에서 좌중월 만루홈런을 날렸다, 20년의 프로생활에서 단 4개뿐이던 홈런, 그리고 2004년 이후 6년만에 터진 5번째 홈런이 승리에 쐐기를 박는 생애 첫 만루홈런이었다. 후보선수로만 버텨온 오랜 시간들을 한순간에 보상받는 순간, 그는 자신을 믿고 기다려 준 아내와 두 아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뒤늦었지만 야구선수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있는 것 같다.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만루홈런으로 아이들과 가족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했다"며 뿌듯해 했다.
이성우는 더 이루고 싶은 것이 없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다. 주전으로 나서고 있는 유강남의 체력안배를 위해 뒤에서 열심히 받쳐 주는 역할에 만족하고 있다. 여기에 더 욕심이 있다면 이민호, 김윤식, 이상규 등 신인급들이 LG의 주축 투수로 성장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생각뿐이다.
"야구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손을 내밀어 준 LG에 감사하다. 그냥 한경기 한경기를 하고 있는 지금 너무나 행복하다"는 이성우의 베테랑 찬가가 오랫동안 이어지기르 기대한다.
[정태화 마니아리포트 기자/cth0826@naver.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report@maniareport.com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