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79] 왜 월드시리즈(World Series)는 7차전까지 할까

김학수 기자| 승인 2020-10-2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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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창설된 월드시리즈는 1925년부터 본격적인 7전4선승제 방식으로 승부를 가렸다. 탬파베이 레이스 최지만의 역사적인 한국인 타자 월드시리즈 첫 안타 장면.
미국 프로야구(MLB) 월드시리즈는 미국인들에게는 1년 중 어떠한 휴일보다 중요한 행사이다. 7월4일 독립기념일처럼 애국적이고, 11월 네 번째 목요일 추사감사절처럼 전통적이다. 또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아침만큼 기대되는 최고 프로스포츠 대회이다. 월드시리즈는 역사가 1세기에 접어들면서 단순한 야구 대회를 넘어 미국 문화의 중요한 테마로 자리잡았다. 월드시리즈는 마법의 순간들을 하이라이트로 제공하면서 큰 감동을 준다. 미국인들은 월드시리즈를 보면서 어린 시절부터 ‘밤비노의 저주’ 등 숱한 스토리를 접하고 희노애락을 느끼며 추억을 쌓아간다.

만약 월드시리즈를 7차전까지 하지 않고 5차전에 끝낸다든지, 7차전이상을 한다면 어떨까 상상을 해본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뭔가 아쉽거나 또는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다. 7전4선승제의 지금 방식은 ‘신의 한수’로 최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홈경기 2번-원정경기 3번-홈경기 2번씩으로 양대 리그 우승팀이 번갈아 하는 7전4선승제는 지난 수십년간 고정된 월드시리즈 경기방식이다. 2003년부터 올스타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올스타전에서 승리한 리그에게 월드 시리즈에서 홈 필드 어드밴티지를 적용했다.

월드시리즈는 현재와 같은 경기방식을 채택하기까지 여러 변화를 거쳤다. 1903년 첫 월드시리즈를 갖기전부터 우승팀을 가리는 방식은 들쑥날쑥했다. 초기 프로야구는 당초 포스트 시즌을 갖지 않고 시즌 최고 성적을 거둔 팀이 우승을 차지하는 방식이었다. 1884년부터 1890년까지 내셔널 리그와 아메리칸 협회는 시즌 말 포스트시즌에서 맞붙어 최종 챔피언을 가렸다. 시리즈는 사전에 양대 챔피언팀 구단주들의 협상을 통해 조건을 조율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경기 수는 1884년 3경기(프로비티가 뉴욕을 3대0으로 격파한 것)에서 1887년 15경기(디트로이트가 세인트루이스를 꺾은 것)까지 다양했다. 1885년 시리즈와 1890년 시리즈는 무승부로 끝나기도 했다. 1894년 내셔널리그는 1,2위팀간 7전4선승제로 챔피언을 가렸다. 7차전 방식은 이후 3년간 지속되며 포스트 시즌의 인기를 다지는데 기여했다.
1903년 양대 리그는 마침내 월드시리즈라는 이름을 내걸어 챔피언전을 치렀다. 첫 월드시리즈는 보스턴과 피츠버그가 맞붙었는데 보스턴이 9전5선승제에서 5승3패로 챔피언타이틀을 차지했다. 첫 월드시리즈는 양대 리그 선두였던 구단주끼리 사전 협의를 통해 경기방식을 조정한 결과, 보스턴이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04년 월드시리즈는 양대리그의 서로의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해 열리지 않았다. 9 게임방식에 동의하지 않은 일부 팀으로 인해 불발됐다. 내셔널리그 챔피언 뉴욕 자이언츠의 존 브러쉬 사장은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보스턴과의 경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그는 “열등한 아메리칸리그와의 경쟁을 거부한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1905년 다시 개최된 월드시리즈는 뉴욕 자이언츠와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의 대결이었다. 이때 7전4선승제 방식으로 경기를 치렀다. 이후 1918년까지 이 방식대로 했다가 1919년부터 1921년까지 9전5선승제로 하는 등 조금씩 시리즈가 변화했다. 1925년부터 현재와 같은 7전4선승제가 정착됐다.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인해 시즌 경기가 60경기로 줄어들었고, 월드시리즈는 홈앤드어웨이 방식이 아닌 중립경기 방식으로 텍사스주 알링턴에서 치러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는 최종 챔피언시리즈를 MLB 방식을 채택, 운영하고 있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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