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의 ‘사람 人’] 30년 스포츠기자에서 소설가가 된 손장환 “교감 아버지를 직위 해제시킨 ‘이윤상 군 살해사건’을 소설로 썼다”

김학수 기자| 승인 2020-06-23 10:10
 스포츠 저널리스트 손장환씨가 신문사 퇴직 후 아버지의 아픈 경험을 소재로 첫 소설 '파랑'을 냈다. 소설집을 들고 있는 손장환씨. [정지원 기자]
스포츠 저널리스트 손장환씨가 신문사 퇴직 후 아버지의 아픈 경험을 소재로 첫 소설 '파랑'을 냈다. 소설집을 들고 있는 손장환씨. [정지원 기자]
  손장환씨가 신문사 퇴직 후 아버지의 아픈 경험을 소재로 첫 소설 '파랑'을 냈다. 소설집을 들고 있는 손장환씨의 아버지. [정지원 기자]
손장환씨가 신문사 퇴직 후 아버지의 아픈 경험을 소재로 첫 소설 '파랑'을 냈다. 소설집을 들고 있는 손장환씨의 아버지. [정지원 기자]


선생님으로서 아버지의 삶은 40년전 그 사건에서 멈춰 버렸다. 1925년생이시니 딱 55세였을 때다. 1980년 발생한 ‘이윤상 군 유괴살해사건’이다. 선생이 중학생 제자를 유괴 살해한 희대의 엽기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건을 해결하라고 독촉했을 정도로 전 국민적 이슈가 됐다. 미제 사건으로 남을 뻔 하다 1년 뒤에 범인을 잡고 보니 범인은 이군의 체육 선생 주영형이었다. 온 국민이 ‘선생의 도와 덕이 땅에 떨어졌다’며 치를 떨었다. 한 때 아버지로부터 최고의 교사로 보였던 그가 미성년자인 중학생 제자 여러 명과 성관계를 맺었고, 그중 일부 학생은 주영형의 범행을 돕기도 해 충격을 줬다.
범인 주영형은 한때 아버지가 교감으로 재직하던 창덕여중에 같이 근무한 적이 있었다. 당초 아버지는 경서중학생 이윤상 군이 유괴됐다는 뉴스를 보면서 하필이면 주 선생이 옮기자마자 사건이 벌어져 참 안됐다는 생각을 했다. 주영형이 범인일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1년 뒤 범인이 주영형이라는 소식에 깜짝 놀라며 깊은 배신감을 느끼며 부들부들 떨었다. 5년제 경복중학교를 졸업하고, 19세부터 교사를 시작한 아버지는 이 사건으로 안타깝게도 교장 승진을 바로 눈앞에 두고 37년간의 교직생활을 접어야 했다. 유괴사건 범행에 공범자로 지목된 여고생 2명이 주영형이 근무했던 창덕여중 때부터 불륜관계를 맺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아버지는 도의적인 책임을 져 직위해제를 당한 것이다. 아버지는 그 이후 일체의 직업을 갖지 않으시고 그냥 세월만 흘려 보내셨다.

자신도 주영형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었다. 1978년 당시 대학 2학년이었을 때 아버지가 창덕여중 3학년 수련회에서 레크리에이션을 맡아달라고 했다. 예산절감용이었다. 창덕여중은 공립학교치고는 드물게 운동장에 야외수영장이 있었다. 체육 선생인 주영형은 수련회 전체 진행을 하면서 수영 지도도 했다. 보디빌더 같은 몸매에 삼각 수영팬티 하나 걸치고, 선글라스를 낀 주영형의 모습은 멋있었다. 수련회는 여름방학에 5일간 진행됐는데, 2년동안 하면서 주영형과 친해져서 테니스도 같이 치는 사이까지 됐다. 하지만 그는 결과적으로 겉으로만 포장된 악인의 탈을 쓴 위선자였다.

한 해 한 해 기력이 쇠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평생의 한이었던 아버지의 아픈 경험을 책으로 써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지난 1986년 중앙일보 공채기자로 입사해, 사회부와 경제부를 거쳐 체육부 기자와 체육부장과 부국장으로 20여년 근무한 뒤 중앙일보 출판 계열사인 중앙북스 상무로 일하고 퇴직하면서 마침내 책을 쓰겠다며 행동에 들어갔다. 1년간 쉬면서 버킷리스트였던 미국 서부 LA에서 뉴욕을 거쳐 캐나다 동부까지 간 북미 대륙횡단 드라이브와 성경 세 번 통독하기를 마친 뒤 나이 60에 직접 글을 쓰고 직접 책을 만드는 1인 출판사를 차렸다. 지난 해 생애 첫 번째 책으로 부부 에세이 ‘느림보 토끼와 함께 살기’를 펴낸 뒤 1년여의 탈고 끝에 이달 초 세상에 아버지의 실제 경험을 모티브로 한 범죄추리소설 ‘파랑’을 세상을 내놓았다.

지난 주 95세의 나이로 노환과 치매기가 있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조촐한 소설집 헌정식을 가졌다. 잘 걷지 못해 휠체어에 의지하는 아버지는 5남2녀 가운데 여섯 째인 아들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쓴 것을 전혀 모르는 듯 했다. 소설가 아들은 아버지에 한을 풀어 드린 것 같다며 기뻐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알 듯한데 당신의 기억이 지워진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기자에서 소설가로 첫 변신한 전 언론인 손장환(62)씨를 22일 서울 중구 무교동 대한체육회관 4층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에서 만났다.
 소설의 주인공 기파랑의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 마카오 카지노를 찾아 취재를 했다. [손장환 SNS 캡처]
소설의 주인공 기파랑의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 마카오 카지노를 찾아 취재를 했다. [손장환 SNS 캡처]


선과 악의 양면성을 가진 인간상을 보여주려 소설 구상

-아버지에게 큰 효도를 한 소감은.

“ 사실 좀 더 일찍 소설 헌정식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찾아와 제대로 가질 수가 없었다. 이번에 소박한 가족모임을 통해 자리를 가졌는데 안타깝게도 아버님이 걷지도 못하고 치매기가 있으셔서 아들의 마음을 제대로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글쎄 이렇게 하는 게 효도일지는 잘 모르겠다.”

아버지의 의식이 좀 더 살아 있었을 때 책을 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는 말이다. 문득 중국의 유명한 시집 '한시외전'에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는 '풍수지탄(風樹之嘆)'이라는 고사가 떠올랐다. 자식이 아무리 효도를 위해 좋은 마음을 갖고 있더라도 점차 늙어가고 의식이 흐려지는 어버이는 다른 세상으로 점차 멀어져 간다는 의미이다. 그의 말이 곧 그런 느낌을 갖게 했다.

-그 사건으로 집안에는 어떤 일이 생겼나.

“아버지는 그 사건이후 지난 40년간 영혼없는 시간을 보내셨다. 경제적으로도 돈을 전혀 벌지 않고 거의 손을 놓고 지내셨다. 그 사건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가져왔던 것이다. 우리 집안도 그 사건 이후 살림이 많이 어려워져 가족들이 저마다 자기 밥벌이를 해야했다.”

-소설 구상과 글쓰기는 어떻게 했나.

“소설에 대한 구상은 오래 전부터 했다. 사건 자체가 시대를 뒤흔든 엽기적인 것이었고, 우리 집안에도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소설로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기자시절부터 가졌다. 하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물론 게으른 탓도 있었다. 지난 해 1인 출판사 ‘LiSa’를 차린 것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다. 그때부터 소설쓰는 작업에 들어갔다.”

-‘주영형 사건’을 소설로 만드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는데.

“정색을 하고 쓰자니 제약이 많았다. 재미도 없을 것 같았다. 아버지와 주영형의 관계를 뼈대로 삼고, 상상력으로 살을 입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쓰지 않은 소설에 도전하기로 결정한 배경이다. 뼈대가 있으니까 금방 작업이 끝날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소설은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매일 상상력의 한계를 느껴야 했다. 한 줄도 못쓰고 지나간 날도 많았다. 쓰고 나서 보니 앞뒤가 연결이 되지 않아 몽땅 들어낸 적도 있었다.”

-소설 구성을 위해 마카오 카지노로 취재를 가기도 했다는데.

“주영형이 유괴살인사건을 저지른 이유는 도박빚을 갚기 위해서였다고 자백했었다. 도박장을 제대로 알아야 주영형 관점에서 주인공의 생각과 말을 끌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정선 카지노 보다 좀 더 리얼한 도박장의 느낌을 갖기 위해 마카오 베네치안 카지노로 날아가 생생한 현장을 지켜 봤다.”

-소설을 쓰는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8명의 소설 등장 인물을 각각 1인칭 관점에서 사건을 전개하는게 힘들었다. 체육 선생인 기파랑과 마포서 강력계장 강석규, 창성중 교감 손경훈, 기파랑의 아내, 기파랑과 관계를 맺은 여학생 등 8명의 인물을 각각 묘사해야 했다. 특히 10대 여학생의 관점에서 서술하는게 쉽지 않았다.”

-체육 교사 주인공의 이름 기파랑이 소설 제목 ‘파랑’과 연관성이 있는 것 같은데.

“기파랑은 신라 화랑의 이미지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화랑은 ‘꽃남자’라는 뜻으로 기파랑은 모든 것에 능한 팔방미인이라는 의미에서 붙였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만 속을 뒤집어보니 희대의 색마, 살인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파랑 색깔은 맑고 청초한 이미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우울한 기분도 동시에 준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색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보았다. 그래서 소설 제목을 먼저 정해 주제를 분명히 하고 주인공 이름을 그 다음에 지었다. ”

퇴직 기자로 소설 쓰기

-기자 출신으로 소설 쓰는데 도움이 된 것도 있었을텐테.

“수십년간 팩트를 근간으로 해 글을 쓴 기자출신이라 논리 전개는 잘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팩트 위주로 기사를 쓰던 직업병이 아직도 남아 있어 자꾸 팩트를 따라갔다. 소설을 쓰기 위한 상상력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선 더 이상의 취재를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소설에서 상상력과 팩트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8대2 정도의 비율이라고 본다. 상상력에 의해 이야기를 많이 꾸려갔으며 팩트는 전체적인 골격을 세우는데 나름대로 상당한 역할을 했다. 기본적으로 팩트가 없으면 이야기 자체를 만들 수가 없기 때문에 기자 때 생활화한 ‘팩트 파운딩‘은 중요한 요소가 됐다고 본다.

-소설을 보면 경찰 기자때 만난 형사 모델이 나온다고 했는데.

“1986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후 87년 사회부 기자로 강남경찰서를 출입했다. 그 때 관내에서 원혜준 유괴 사건이 터졌다. 당연히 이윤상 유괴살해사건이 거론됐는데 당시 강남서 형사계장이 바로 주영형을 체포한 마포서 강력반장이었다. 묘한 인연이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강석규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체육 기자 출신으로 체육 선생인 주영형을 보는 관점에 어느 정도 참고가 됐는지.

“체육 현장을 20년 이상 취재했다. 학교 체육의 문제점도 많이 지켜 볼 수 있었다. 한때 체육 교사들이 무시당하는 것도 보았다. 체육이야말로 인권을 중시해야하는 인성교육의 표본이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주영형도 겉으로는 최고의 선생님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었지만 정작 속은 악마의 화신이었다.”

-기자 출신 소설가 김훈(전 한국일보), 고승철(전 경향신문) 등은 본인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가.

“그분들은 나름대로 소설계에서도 이미 이름을 날리고 있는 분들이다. 나는 이제 첫 발을 내딘 초년병이다. 앞으로 전업 소설가로 자리잡기 위해선 많은 책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포츠 기자였던만큼 무궁무진한 스토리를 갖고 있는 스포츠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한 소설 들을 쓰고 싶다.”

-소설가로 밥벌이가 될 수 있는가.

“사실 이번 첫 소설은 돈벌이는 되지 않는다. 1인 출판사를 만들어 편집, 교정 등을 모두 혼자 하고, 디자인까지 하다가 도저히 안돼 그건 외주를 줬다. 교보문고 등 대형 서점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납품을 하고 세금계산서까지 직접 발행해야 하는 등 잡무가 만만치 않다. 글쓰는 것 이외에 영업적인 것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작품을 세상을 내놓았다는 사실 그 자체로 만족하면 나름 의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가로 불리고 싶다

소설을 보면 잘 짜인 영화 대본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8명 등장인물이 서로 자기만의 관점에서 사람과 사회, 세상을 바라보며 스토리를 이끌어 가기 때문이었다. 소설 이후를 생각하는 구성을 갖고 있는 듯했다.

-이 소설을 차후 영화 등 다른 버전으로 극화할 생각이 있는지.

“잘 봤다. 영화까지 생각하고 소설을 썼다. 대학(연세대 신방과) 때 연극 연출을 한 적이 있었다. 항상 그 분야에 관심이 많다. 소설도 잘 보시면 영화화 하기에 좋은 등장인물과 구성을 갖고 있다. 예를들어 형사 역에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범인을 잡는 범죄영화를 많이 찍은 영화배우 김윤석이 딱 맞을 것 같다.”

-소설에서 막판 반전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직접 읽어봐야 안다. 내가 미리 얘기하면 재미없다. 범죄 추리소설 형식으로 구성된만큼 스포일러에 의한 막판 극적인 전환이 재미를 높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읽어 본 독자들이 흥미로웠다고 인터넷 독후감 후기에 올린 글을 봤다.”

-앞으로 소설을 계속 쓸 것인가.

“일단 첫 작품을 쓰는 게 힘들었지 그 다음은 그렇게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소설가로 활동을 계속 하고 싶다.”

그는 소설 말미 후기에서 1년에 걸쳐 책을 완성했다는 기쁨이 컸다고 했다. 자신이 쓰고 직접 만든 책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책을 헌정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기자 퇴직 후 기자 생활 중에 가족과의 시간이 부족했던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에게 소설을 내기까지 도움을 준 것에 대해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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