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야구용어를 많이 만든 메이지 유신 시대의 대표적인 문학가 마사오카 시키(1867-1902)가 원래 처음 썼던 말은 ‘확자(攫者)’였다. 움켜 잡는다는 의미인 ‘攫’과 사람을 의미하는 ‘者’를 붙여 사용했다. 확자가 포수로 바뀐 것은 그의 사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확자보다는 포수가 대중들이 좀 더 쓰기 편한 말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시키는 손 수자가 들어가는 포지션을 자를 써서 표기했다. 투수를 ‘투자(投者)’라고 했다. 그가 만든 ‘타자(打者)’는 아직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야구에서 포수는 투수가 던지는 공을 잡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투수와의 호흡을 잘 맞춰야 한다. 투수와 포수를 한데 묶어 ‘배터리(Batter)’라고 부르는 것도 그만큼 둘 간 협력관계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 코너 18회 ‘투수와 포수를 총칭하는 말을 왜 ‘배터리’라고 할까‘ 참조)
원래 포수 역할은 미국 초창기 야구에서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보호 장비도 없었고 그냥 맨손으로 공을 받았다. 19세기 중반까지 야구경기는 오락용이었다. 아마추어들이 즐기는 운동이었다. 현재 크리켓처럼 투수가 던지는 부드러운 공을 맞춰 점수를 내는 방식으로 경기가 이루어졌다. 1860년대에는 한 게임에서 팀들이 50~60점 올리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이때 포수는 홈플레이트 뒤에서 멀찍이 떨어져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고 타자가 치지 않는 공을 잡는 역할에 그쳤다 .
하지만 대중들의 인기를 끌고 야구가 프로종목으로 발전하면서 경기 방식이 변화했다. 언더핸드로 던지는 투구 동작이 오버핸드로 전환하며 투수들이 빠른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아웃 규정이 생겨 포수들은 홈플레이트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투수들이 다양한 구질의 공을 던지게 됨에 따라 포수들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투수들이 직구와 함께 커브볼, 너클볼 등 특화된 공을 개발한 뒤 포수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득점은 줄어들고, 도루와 번트가 많아졌다. 1901년 내셔널리그는 포수가 홈플레이트에서 10피트 이내에 서야한다는 규칙을 도입했다.
역대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포수로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로 유명한 뉴욕 양키스 요기 베라(1925-2015)와 LA 다저스에서 박찬호와 배터리를 이룬 마이크 피아자 등을 꼽는다. KBO리그서는 이만수, 조범현, 박경완 등에 이어 올 시즌 NC 다이노스를 창단이후 첫 우승으로 이끈 양의지를 최고 포수로 평가한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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