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은 비틀즈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1960-70년대 세계적인 팝그룹으로 이름을 날린 비틀즈는 독일 함부르크 등 여러 곳을 전전하고 인기가 많아진 뒤에는 런던으로 진출해 활동했다. 하지만 비틀즈가 최초로 라이브 공연을 했던 곳은 리버풀 캐번 클럽이다. 이 곳은 전세계에서 비틀즈 광팬들이 몰려드는 명소가 됐다. 비틀즈는 리버풀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2009년 '리버풀 호프 대학(Liverpool Hope University)' 석사과정에 '비틀즈 학과'가 개설되었으며, 리버풀 공항 이름도 ‘리버풀 존 레논 공항’일 정도이다.
아일랜드 해를 앞에 둔 리버풀은 일찍이 봄과 여름에 사용하기 위한 외로운 항구도시로 발달했다. 맨체스터 스톡포드에서 시작해 리버풀로 이어지는 머지 강은 영국에서 조수 차가 두 번째로 높다. 조수 간만차가 최고 4m에서 10m미터의 다양한 차이를 보인다.
리버풀은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맨체스터가 면직물을 시작으로 기계, 식품, 화학, 전자 등 전세계 상공업에 중심도시로 성장하면서 외항으로 함께 발전했다. 19세기에는 세계 물동량의 절반이 리버풀 항구를 거쳤을 만큼 세계적인 무역항이었다. 뉴욕으로 첫 출항했다가 빙산과 충돌해 대서양에 침몰한 타이타닉호가 출발한 항구이기도 하다. 흑인 노예 무역의 메카이기도 했다. 아프리카~유럽~아메리카를 잇는 삼각무역에서 리버풀은 흑인 노예의 집결지 역할을 했다.
리버풀은 맨체스터와 지역감정이 나쁘기로 유명하다. 이웃한 맨체스터로 인해 번영했지만 쇠퇴도 했기 때문이다. 양 도시는 최초의 근대 철도시스템인 리버풀과 맨체스터 철도를 만들어 해외로 무역 물량을 운송했다. 하지만 운송비용을 줄이기 위해 맨체스터가 직접 바다로부터 길이 75km의 운하를 뚫으면서 운송이 중단된 리버풀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리버풀은 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맨체스터에 대한 지역감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리버풀 FC와 맨체스터를 연고로 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가 잉글랜드 최고 축구 라이벌로 등장한 것도 이런 지역감정에 기반한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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