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292] 왜 샬케(Schalke) 04라고 말할까

김학수 기자| 승인 2021-02-14 08:17
 샬케 04는 단순한 팀이름으로 분데스리가에서 한국팬들에게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은 샬케 04와 볼프스부르크 경기.
샬케 04는 단순한 팀이름으로 분데스리가에서 한국팬들에게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은 샬케 04와 볼프스부르크 경기.
독일 분데스리가 샬케(Schalke) 04는 오래전부터 특이한 팀이름으로 인해 한국팬들에게 관심을 모았다. 샬케라는 간단한 단어와 04라는 숫자가 한 번 들으면 잘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어 샬케는 지역 이름이며, 04는 축구단을 창단했을 때의 연도인 1904년을 의미한다. 샬케 04의 현재 연고지는 독일 북부 도시 겔젠키르헨(Gelsenkirchen)이다. 샬케 04가 연고도시이름을 쓰지 않은 것은 창단과 관련이 있다.

1904년 겔젠키르헨 외곽 샬케 마크트(Markt, 시장)에서 학생들이 자신들만의 클럽을 만들기로 결의하고 처음 팀을 만들었을 때 이름은 ‘베스트팔리아(Westfalia) 샬케’였다. 출범 초기인 1912년 정규리그 진입에 실패하면서 ’김나스틱 샬케 툰버라인 1877(Gymnastic Schalker Turnverein 1877‘) 구단과 합병해 1923년 샬케지역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팀은 독일의 대표적인 탄광지역이기도 한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광부들(Die Knappen)‘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광부 출신 선수들이 여러 명 있어 광부들의 응원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공업지역인 독일 루르지방에서도 겔젠키르헨은 석탄 광산이 많아 일찍이 산업혁명으로 발전한 도시였다. 언덕 이름에서 유래된 샬케는 1900년 겔젠키르헨으로 합병되면서 이름으로만 남게됐다. 샬케 04는 1924년 합병에서 분리돼 현재의 팀이름을 갖게됐다. 현재 홈구장은 겔젠키르헨 엘레 지역에 있는 벨틴스 아레나이다. 벨틴스 아레나의 선수 출입구는 마치 광산터널을 연상케 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샬케 04와 도르트문트는 루르 지방에 위치한 공업도시를 연고로 삼아 ‘루르 더비(Ruhr Derby)의 라이벌전을 갖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더비는 국제축구연맹이 선정한 세계 10대 더비 중 하나이다. 한국 프로축구로 얘기하면 울산 현대와 포항 스틸러스의 맞대결 정도로 얘기할 수 있다. 양 팀 모두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경기장 관중 수용 규모가 6만석이 넘어 매 경기마다 뜨거운 열기를 보인다. 1925년부터 맞붙은 이후 오랫동안 명승부를 펼쳤다. 샬케 04의 명성이 더 높았으나 1990년대 이후 도르트문트가 좀 더 우세한 전적을 보이고 있다.

샬케 04는 히틀러가 통치하던 2차 세계대전 이전 그의 지원을 받는다는 의혹을 받았다. 1933년부터 1942년까지 10시즌 동안 독일 챔피언에 6번 등극했기 때문이다. 1935년부터 1939년까지는 무패의 위용을 과시했다. 공교롭게도 전성기 때가 히틀러 통치시절과 맞아 떨어져 히틀러가 독일 국민 단합을 위해 샬케 04에 막대한 지원을 해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과 관계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샬케 04는 1963년 분데스리가 출범 시즌에 참가해 첫 해 4위를 차지했다. 이후 팀이 하락세를 보여 1965년에는 간신히 강등을 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팀을 재정비해 1971-72시즌에는 리그 준우승을 한 적도 있다. 당시 1970년 멕시코 월드컵 득점왕인 독일 최고 골잡이 게르트 뮐러가 이끄는 바이에른 뮌헨에 승점 3점차로 뒤졌다. 리그 준우승에 그쳤지만 컵 대회에서는 우승을 했다.

1971년 샬케 04와 빌레필트 등 일부 구단이 승부조작 사건에 연류돼 가담 선수들에게 6개월~2년간의 출전 정지, 영구 제명 등의 징계를 받으며 큰 타격을 입었다. 1977년 리그 준우승을 한 뒤 1982년, 1990년 2부리그로 강등됐다가 승격되는 부침을 겪기도 했다. 1996-97시즌 UEFA컵(현재 유로파 리그)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이 최근 최고의 성적이며 아직까지 분데스리가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팀으로 남아 있다. 샬케 04는 1977년 최강 바이에른 뮌헨을 7-0으로 대파한 적이 있었다. 이 점수차는 뮌헨이 당한 최다 점수패이다.
지금은 사양길에 접어들었지만 광산지역으로 한때 세계 최고의 공업 국가 독일을 상징하던 겔젠키르헨 지역을 연고로 한 샬케 04를 보면 1960년대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로 광부를 파견했던 가슴 아픈 한국 현대사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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