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스토리] 하늘로 떠난 전설의 야구 기자 천일평, 그의 삶과 추억

김학수 기자| 승인 2021-02-18 11:29
 고 천일평 스포츠 대기자. [연합뉴스 자료사진]
고 천일평 스포츠 대기자. [연합뉴스 자료사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1년 이상 좀처럼 잦아들지 않으면서 주위에서 고령자들이 많이 세상을 떠난다. 내 주위서도 아는 선배들이 코로나19는 아니지만 여러 기저질환 등으로 삶을 마감하고 있다. 지난 16일 향년 76세로 타계한 천일평 전 한국일보 기자는 나를 비롯해 여러 선후배 스포츠기자들로부터 스포츠기자의 멘토로 귀감이 됐던 분이었다.나는 1985년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스포츠기자로 출발했다.
천일평 기자는 나를 지도하고 이끌던 언론사 선배였다. 처음 프로야구 담당기자를 맡게 되면서 스포츠 기자의 기본 정신부터 취재 방법 등에 대한 모든 것을 선배로부터 배웠다. 천 선배로부터 배운 스포츠 기자의 기본기는 이후 내가 수십년간 스포츠 기자에서 활동하는데 중요한 자양분이 됐다. 취재 과정에서 힘들 때나, 기사 작성을 하면서 많은 고민을 할 때마다 그가 제시했던 여러 팁들이 자주 떠올랐다.
자신과 함께 일했던 여러 후배기자들이 능력을 인정받아 다른 언론사로 스카우트됐다는 것을 자랑아닌 자랑으로 말하기도 했던 그는 “기자로 성공하려면 타 언론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쌓고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기사 심의서까지 직접 쓸 때의 일이다. 정보 위주로만 맥빠지게 쓰던 경기 기사에 관련된 인물들의 말을 가급적 달도록 주문했다. 아무리 마감시간에 쫓기더라도 관련자들의 ‘육성’을 직접 달아야 기사의 전달력이 더욱 생생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당시 나를 비롯한 기자들은 경기 기사에 주요 기록들을 토대로 작성하고 관련된 이들의 말을 집어 넣지 않았던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실제로 자신이 직접 기사를 쓰며 기자로서의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원래 투철한 기자 정신으로 똘똘 뭉친 이였다. 1984년 LA올림픽 취재를 갔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치기 이전부터 야구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1973년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로 출발한 그는 해병대 출신답게 모든 취재에 정신력과 근성을 갖고 달려 들었다. 서울고 재학시절 야구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는 한국일보 체육부를 거쳐 일간스포츠 체육부에서 야구담당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1977년 니카라과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국야구팀을 취재하기도 했던 그는 본격적으로 야구기자로서 입지를 굳혔다.
교통사고로 6개월간 생사 고비를 넘나들었던 그는 후유증으로 척추 고장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를 딛고서 휠체어를 타면서 36년여간 야구 취재에 열정적인 삶을 바쳤다. 야간 경기로 벌어지는 프로야구 경기 취재를 위해 젊은 후배들과 같이 야근을 하며 생생한 기사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일간스포츠에서 야구 기명칼럼을 2~3일에 한 번씩 연재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일간스포츠 야구부장, 체육부장, 편집인 등을 거치면서도 그는 기명 칼럼을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인터넷 스포츠 연예매체인 ‘OSEN’과 스타뉴스에서도 그는 ‘야구장 가는 길’, ‘야구장 사람들’과 같은 기명칼럼을 써 야구계에 많은 화제를 제공해주고 날카로운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는 기자 이전에 본디 따뜻한 감성을 지닌 이였다. 직접 운전을 하며 경기장에 취재 가는 후배기자들을 태워주고 일과 이후 술잔을 주고 받으며 소소한 삶의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다른 언론사 후배기자 기사를 관심있게 챙기며 좋은 기사를 쓴 이들을 칭찬해 주기도 했다. 1980년대 언론 통폐합으로 해직된 이후 몇년 만에 다시 기자로 복직한 타사 후배 기자가 쓴 기자를 보곤 "당신이 예전 그 기자가 맞는냐"며 다시 복귀해 축하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미 고인이 된 유홍락, 이종남 기자와 함께 공동으로 집필한 ‘한국야구사’와 장애인들의 애환과 사회적인 관심을 촉구하는 칼럼집 ‘눈 가리고 아웅하니 자식 키우기 힘드네’를 펴내기도 했다. 그는 2020년 8월17일 스타뉴스에 ‘천일평의 야구장 가는 길-’요동치는 선두권‘ 키움, NC와 반 경기 차.. LG는 단독 3위’라는 글을 마지막 기사로 남기고 깊은 병마와 싸워야 했다.
17일 발인 하루 전날 저녁 빈소가 차려진 분당 서울대 병원 영안실로 찾아가면서 50년이상 스포츠 대기자로 확연한 족적을 남긴 고인의 삶을 다시 떠올려봤다. 사실에 근거해 사람의 숨결을 불어넣으려 노력했던 그의 기자 정신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결코 변치 않을 것이다. ‘볼펜 시대’를 거쳐 ‘스마트폰 시대’로 변화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삶의 성공은 기본기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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