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904] 테니스에서 왜 ‘그랜드 슬램(Grand Slam)’이라고 말할까

김학수 기자| 승인 2023-02-14 07:26
세르비아의 노바크 조코비치가 지난달 호주 멜버른의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호주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스테파노스 치치파스를 누르고 우승을 확정한 뒤 가족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조코비치는 이 대회 통산 10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AP=연합뉴스]
세르비아의 노바크 조코비치가 지난달 호주 멜버른의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호주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스테파노스 치치파스를 누르고 우승을 확정한 뒤 가족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조코비치는 이 대회 통산 10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AP=연합뉴스]
노바크 조코비치(36·세르비아·세계 5위)는 지난 달 29일 호주 멜버른의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호주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스테파노스 치치파스(25·그리스·4위)를 2시간56분 혈투 끝에 3대0(6-3 7-6<7-4> 7-6<7-5>)으로 제압했다. 조코비치는 호주오픈 결승에 총 10차례 올라 모두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그는 자신이 보유한 호주오픈 최다 우승 기록을 10회로 늘렸고, 22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으면서 라파엘 나달(37·스페인·2위)과 이 부문 최다 공동 1위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지난해 6월 이후 7개월 만에 세계 랭킹 1위 자리도 되찾게 됐다. 특히 남자 단식에서 호주 오픈 10회를 비롯, 프랑스 오픈 2회, 윔블던 7회, US 오픈 3회 우승을 차지해 나달과 22회로 그랜드 슬램 공동 최다 우승을 기록했다.

그랜드 슬램이라는 말은 이미 표준 국어사전에도 오른 외래어이다. 사전에는 ‘골프, 테니스에서 한 선수가 한 해에 4대 타이틀 경기에서 모두 우승하는 일 또는 야구에서 만루 홈런을 치는 일’로 설명한다. 그랜드 슬램은 ‘큰, 웅대한’이라는 뜻의 ‘Grand’와 ‘쾅 때린다’는 의미의 명사 ‘Slam’가 어울어진 영어이다. 직역하면 크게 친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요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로 적합한 조어라고 여겨진다. 영어용어사전 등에 따르면 그랜드 슬램의 어원은 원래 카드놀이인 브리지게임에서 패 13장 전부를 따는 ‘압승’을 뜻하는 용어에서 나왔다고 1814년 찰스 존스의 게임 책인 ‘Hoyle's Games Improved’에서 설명했다..(본 코너 86회 ‘왜 골프에서 ‘그랜드 슬램(Grand Slam)’이라고 말할까‘ 참조)
이후 그랜드 슬램은 특별하고 강력하다는 의미로 다른 종목에서 널리 쓰였다. 폴 딕슨의 야구사전에는 미국야구에선 1929년 그랜드 슬램을 만루홈런이나 한 번에 많은 득점을 올리는 뜻으로 사용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골프에선 1930년 미국의 바비 존스가 브리티시 오픈, US오픈, 브리티시 및 US 아마추어 등 4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하면서 처음으로 그랜드 슬램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테니스에선 1938년 미국의 돈 버지(1915-2000)가 4대 메이저대회 윔블던, 프랑스, 호주, US오픈에서 모두 우승을 하면서 이 말을 쓰기 시작했다.

스포츠 뿐 아니라 군사나 문화 용어로도 그랜드 슬램이라는 말이 쓰인다. 2차 세계대전 때 영국 공군이 사용한 강력한 폭탄을 ‘그랜드 슬램’이라고 불렀으며 칵테일 용어로도 쓰였다.

우리나라 언론에선 1960년대부터 이 말이 등장한다. 조선일보 1962년 8월24일자 ‘아 십 니 까? 세계제일(世界第一)’ 기사는 ‘이제까지 사용된것중에 가장 컸던폭탄은 영국공군이 일구사(一九四)〇년「U=보트」상륙작전에 투하한「그랜드·슬램」으로이(二)천육(六)백육십(六十)관이었다.실험용으로는 일구사구(一九四九)년 미국 공군이「캘리포니아」의「뮤록」에서 시험한오(五)천칠십칠(七十七)관짜리였다’고 소개했다. 조선일보 1972년 6월22일자 ‘니클라우스 13승(勝)기록,4관왕(冠王) 도전’ 기사는 ‘잭 니클라우스는 US오픈우승으로올해 상금합계(賞金合計) 18만6천51달라를 올려 선두(先頭)를 계속 유지—그는 전번의마스타즈와 합해 세계(世界)2대(大)타이틀을 딴것이며 전영(全英),전미(全美)프로등을 노려그랜드슬램(4관왕(冠王))에의위업(偉業)에정진케되었다.그는 이제 빅 토너먼트 13승(勝)(마스타즈4,전영(全英)2,전미(全美)프로2,전미(全美)아마2)을 기록함으로써구성(球聖) 보비 존스의 그것과 타이기록(記録)을 세웠다’고 전했다.

한국여자골프의 박인비는 2015년 8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네 번째 메이저 대회 리코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커리어 그랜드 슬램(Career Grand Slam)’을 달성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통산 그랜드 슬래머가 됐다는 의미였다. 박인비는 메이저 7승을 거두며 팻 브래들리, 줄리 잉스터, 아니카 소렌스탐, 루이스 석스, 카리 웹, 미키 라이트에 이어 역대 7번째 커리어 그랜드슬래머의 주인공이 됐다. 박인비는 에비앙 대회만 우승하면 카리 웹에 이어 2번째로 슈퍼 그랜드 슬래머가 될 수 있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2012년 에비앙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박인비는 그 다음 해부터 에비앙 대회가 메이저 대회로 추가된 이후 이 대회에서 우승트로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112년만에 여자골프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박인비는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당대 최고의 여자 골퍼임을 입증해 보였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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