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는 외래어이다. 영어로 ‘tennis’로 표기한다. 영어용어사전에 따르면 테니스는 ‘받다(take)’라는 의미의 프랑스 고어 ‘뜨네(tenez)’에서 유래했다. ‘뜨네’는 서브하기 전에 외치는 말이었다. 테니스 발상지는 중세 프랑스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귀족 가문에서 ‘죄드폼(Jeu de Paume)’이라는 공놀이를 했었는데, 이를 테니스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죄드폼은 직역하면 ‘손바닥 놀이’라는 뜻이다. 공을 손바닥으로 쳐서 상대편에게 보내는 놀이다. 일종의 핸드볼이었으며, 성직자들은 교회나 수도원 안뜰에서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죄드폼을 현대 테니스로 발전시킨 것은 영국이다. 프랑스와 백년전쟁(1337~1453)을 치르면서 죄드폼이 영국으로 전해졌다. 1873년 영국군 소령이던 월터 윙필드가 죄드폼을 개량해 공놀이(playing ball)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인 ‘스페어리스틱(sphairstirke)’라는 옥외 경기를 개발했다. 이때 정해진 규칙들이 현대 테니스 규칙의 기본 틀을 이루게 됐다. 이 경기가 영국 중산층에서 인기를 끌면서 1877년 윔블던 경기장에서 첫 윔블던 테니스 대회가 열렸다.
우리나라에 테니스가 전파된 것은 영국에 의해서였다. 대한테니스협회는 남해섬 거문도를 최초의 테니스 전래지로 인정하고 관련행사도 갖는다. 1884년 조선과 러시아가 통상 조력을 체결하자,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던 영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거문도을 불법으로 점거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거문도사건(1885~1887)이다. 당시 거문도에 주둔하던 영국인들이 테니스를 전파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테니스 동호회는 1908년 2월 2일 탁지부 관리들이 결성한 회동구락부이며, 최초의 공식 경기는 1927년 9월 24일 마니이치 신문 경성지국이 주최한 선수권 대회다.
테니스라는 말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널리 쓰였다. 조선일보가 창간하던 1920년 6월8일자 휘문고보학생(徽文高普學生) 개혁운동(改革運動)의결과(結果)‘ 기사는 ’경셩원 등에 잇난 사립휘문 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에셔 재작오(五)일 간친회(懇親會) 끗에 사백오십(四百五十)여명의 학생은 돌연히 교가를 부르며 몃々학생이 연단에 나셔 여러학생과 션생을향하야 연셜을하고 교쥬 민영휘(校主閔泳徽)씨에계 대하야 (일(一)) 고명한 션생님을 더 고빙할일 (일(一))완젼한 서실을 설립할일 (일(一))디방에서 류학하러 상경한 류학생 삼백명을 수용할만한 긔숙사를 설립할일 (일(一))사백명이상의 학생을 수용할만한 완젼한 강당을설비할일 (일(一))화학실험실(化學實驗室)을확장하야 실험긔구를 완버할일 (일(一))교실을중측할일 (일(一))박물표본(博物標本)을 완젼히 설비할일 (일(一))학생의 운동울 장려하기위하야『뼈스쁠』『풋볼』『테니스』『스켓트』『뽀트』와 기외도운동에 필요한 긔구를 설비할일‘이라고 전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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