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문에서 기든스는 상류층 스포츠인 럭비는 원래 경쟁적이지 않았던 반면 노동자 등 하층계급 스포츠였던 축구는 늘 경쟁적이었다고 밝혔다. 부르주아는 개인주의적이고 경쟁적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경쟁보다는 규율과 질서를 강조하는 럭비를 선호했고, 프롤레타리아는 집단 환경에서 개인을 내세울 수 없었기 때문에 축구라는 스포츠를 좋아하며 경쟁성을 지향했다는 것이다. 계급적 차이와 한계 등으로 인해 ‘럭비는 위계적이지만 축구는 민주적이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수상은 “축구는 불량배들이 하는 신사적인 스포츠이고, 럭비는 신사들이 하는 불량배적인 스포츠(Football is a gentleman's game played by hooligans, and Rugby is a hooligans' game played by gentlemen)”라고 말했다고 한다. 축구는 규칙 자체가 선수들 간에 많은 신체적 접촉이 제한되어 있어 신사적으로 보이지만 축구 선수와 관객들은 상대 팀에 대한 심한 욕설 및 심판 판정에 항의가 잦은 반면, 신체적 접촉이 허용되는 럭비는 규칙이 엄격하고 게임이 매우 난폭하고 격렬하지만 모든 선수와 관객들은 서로를 배려하며 존중하고 신사답게 행동하며 선의의 경쟁으로 펼쳐지는 스포츠라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본 코너 8회 ‘축구는 왜 영어에서 ‘football'과 ’soccer'로 나눠 부를까?‘, 1474회 ‘왜 럭비에서 ‘노사이드’라고 말할까‘ 참조)
럭비는 ‘상류층 스포츠’, 축구는 ‘하류층 스포츠’로 구분된 인식은 단순한 경기 방식의 차이보다, 영국 사회의 계급 구조와 교육 제도,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됐다. 럭비와 축구는 모두 영국이 종주국이다. 럭비는 영국의 전통 명문 사립학교인 ‘럭비 스쿨’에서 탄생했다. 럭비는 상류층에서는 엘리티시즘에 알맞는 스포츠로 여겼다. 초창기 당시 라이벌 종목이었던 축구가 프로화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럭비는 아마추어리즘을 고수했다. 축구는 노동자들이 만든 길거리 축구와 클럽 중심으로 경기가 펼쳐졌다. (본 코너 8회 ‘축구는 왜 영어에서 ‘football'과 ’soccer'로 나눠 부를까?‘, 1471회 ‘왜 ‘럭비’라고 말할까‘ 참조)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스포츠는 순수하게 취미로 즐기는 아마추어를 숭상했다. 돈을 받고 뛰는 프로페셔널은 하층민이 하는 매우 저급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축구가 프로의 길로 접어들자 영국 상류 사회에서는 저급한 스포츠로 취급하여 외면하고 럭비에 관심을 더욱 더 기울였다.

오랫동안 아마추어를 유지했던 럭비는 축구만큼 세계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대신 반대로 상류층이 기반이 된 스포츠로 자리잡아 스포츠맨십이나 신사 문화가 축구보다 발달했다. 럭비가 북미로 전해져서 미식축구, 캐나디안 풋볼 등으로 발전했다. 이들 국가에서 사립 학교에는 대부분 전통적으로 럭비팀이 있다. 미국 아이비 리그 대학들에도 상류 스포츠라 여겨지는 조정과 함께 럭비팀이 있는 이유다.
럭비와 축구는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팽창으로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으나 이런 종목적 성향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았다. 럭비가 영연방 국가에서 주로 성행하며 ‘백인스포츠’라는 지엽성을 면치 못한데 반해, 축구는 흑백이 함께 즐기는 보편적인 세계적인 종목으로 자리잡았던 것은 이런 특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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