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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778] 당구에서 왜 영어 ‘object ball’을 ‘적구(的球)’라고 말할까

2026-05-08 07:30:54

프로당구(PBA) 전설 다니엘 산체스 경기 모습 [PBA 제공]
프로당구(PBA) 전설 다니엘 산체스 경기 모습 [PBA 제공]
당구장에서 가장 흔하게 들리는 말이 ‘수구(手球)’와 ‘적구(的球)’이다. 득점이 모두 둘에 의해서 좌우되기 때문이다. 수구는 ‘손 수(手)’와 ‘공 구(球)’의 합성어로 ‘손으로 조작하는 공’, 다시 말해 플레이어가 직접 다루는 공이라는 의미이다. 일본에서는 영어 ‘큐볼(cue ball)을 ‘手玉(てだま, 테다마)’라고 불렀는데, 이 표현이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한자음을 따라 수구(手球)라는 말로 자리 잡았다. (본 코너 1777회 ‘당구에서 왜 ‘큐볼’이라 말할까‘ 참조)

적구라는 말은 한자어로 ‘과녁 적(的)’과 ‘공 구(球)’를 쓴다. ‘표적이 되는 공’이라는 뜻이다. 영어 ‘object ball’을 일본식 한자어로 옮긴 표현이 한국 당구계에 들어오며 굳어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적(敵)’자를 떠올리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object ball의 어원은 영어 단어 ‘object’에서 나온다. 여기서 object는 현대 영어의 ‘물건’이라는 뜻보다, 오래된 의미인 ‘목표·대상(target)’에 가깝다.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라틴어 ‘objectum’으로 ‘앞에 던져진 것’, ‘눈앞에 놓인 대상’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중세 프랑스어·영어를 거치며 ‘시선이나 행동의 대상’이라는 뜻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스포츠·게임 영어에서 object는 종종 ‘목표물’, ‘겨냥 대상’ 의미로 쓰였다. 당구의 object ball도 같은 구조이다. ‘cue ball’은 ‘내가 치는 공(수구)’이며, object ball은 ‘내가 맞혀야 하는 대상 공(적구)’이다.
프로당구협회(PBA)가 지난 2022년 표준화된 당구 용어 보급을 위해 'PBA 당구 용어 2022'에 따르면 적구를 ‘목적구’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목적구라고 하면 너무 딱딱한 느낌이 들어 활용도가 높지 않다. ‘표적구’라는 표현도 왠지 교과서 같은 느낌을 준다.
적구라는 표현이 어색하면서도 동시에 절묘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단어 구조가 간결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당구 특유의 긴장감과 잘 어울린다. 큐 끝에서 날아간 수구가 결국 맞혀야 할 운명의 대상. 적구라는 두 글자에는 묘한 승부의 감각이 있다. (본 코너 1774회 ‘당구용 막대기를 왜 ‘큐(cue)’라고 말할까‘ 참조)

한국 스포츠에는 일본식 한자어 흔적이 유난히 많다. 야구의 ‘사사구’, 복싱의 ‘판정승’, 축구의 ‘센터링’ 같은 말들이 대표적이다. 당구는 특히 심하다. 다마, 히네리, 우라마와시 같은 일본식 표현들이 오랫동안 당구장을 지배했다. 최근에는 ‘뒤돌리기’, ‘끌어치기’처럼 순화된 표현이 자리 잡고 있지만, 유독 적구와 수구만은 끈질기게 남아 있다. (본 코너 1회 ‘ 스포츠 용어를 제대로 알면 인생이 넓어진다’, 6회 ‘영어 세 단어를 두 단어로 줄인 합성어 '사사구'’ 참조)

아마 이유는 간단하다. 언어는 정확성보다 습관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당구는 세대에서 세대로 기술을 말로 전해온 종목이다. 적구는 단순한 용어가 아니라 당구장의 호흡이 됐다. 누군가는 시대에 맞게 ‘목적구’나 ‘표적구’를 쓰자고 말하지만, 막상 큐를 잡으면 입에서 먼저 나오는 말은 여전히 적구다.

결국 적구라는 단어의 생명력은 언어의 논리보다 현장의 감각에서 나온다. 당구는 물리의 스포츠이면서 동시에 감각의 스포츠다. 감각은 늘 짧고 익숙한 단어를 선택한다. 어쩌면 적구는 틀린 말이 아니라, 한국 당구 문화가 지나온 시간을 품고 있는 말인지도 모른다. 큐 끝에서 이어져온 오래된 언어의 궤적 말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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