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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775] 당구에서 왜 ‘초크’라고 말할까

2026-05-05 05:57:57

 큐대와 초크를 들고 있는 여자프로당구 이미래
큐대와 초크를 들고 있는 여자프로당구 이미래
당구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큐 끝에 푸른 가루를 바르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본 코너 1774회 ‘당구용 막대기를 왜 ‘큐(cue)’라고 말할까‘ 참조) 그것을 아무 생각 없이 ‘초크’라고 부른다. 이 말은 영어 ‘chalk’를 음차한 것이다.

chalk는 중학교 때 배우는 기본 어휘로 분필, 백묵이 원래의 뜻이다. 교실에서 쓰는 분필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쓰인다. chalk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로 작은 돌, 자갈을 의미하는 ‘khalix’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이 석회, 석회암을 뜻하는 라틴어 ‘calx’로 넘어왔고, 고대 영어 ‘cealc’를 거쳐 현대 영어로 자리잡았다. 원래 의미는 ‘부드러운 석회질 돌’이었는데 현대 영어에서 분필이나 백묵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한국에서 초크라는 말이 정확히 언제 처음 쓰이기 시작했는지를 특정 연도로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흐름은 비교적 분명하다. 당구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개화기 이후, 즉 19세기 말~20세기 초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에는 일본을 거쳐 서양 문화가 유입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당구 역시 그 경로를 탔다. 일본에서는 영어 chalk를 일본식으로 발음해 ‘초쿠(チョーク)’라고 불렀고, 이 표현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초크로 정착됐을 가능성이 크다. (본 코너 1771회 ‘‘ 빌리어드(billiards)’를 왜 ‘당구’라고 부를까‘ 참조)
특히 1960~80년대 당구장이 대중화되던 시기에, 큐·초크 같은 용어들이 영어 원어에 가까운 형태로 널리 퍼졌다. 이때부터 ‘초크 바른다’ 같은 표현이 일상적인 당구 용어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초크라는 말이 당구에서 쓰이게 된 이유는, 초기 큐 팁에 실제로 석회 성분(분필)을 발라 미끄러짐을 줄였기 때문이다. 이후 재료가 바뀌었음에도 이름은 그대로 남아 오늘날의 ‘당구 초크’까지 이어진 것이다.

초기 당구에서는 큐 끝이 공을 미끄러지듯 치는 일이 잦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표면에 마찰력을 높여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19세기 초 프랑스의 당구 선수이자 발명가였던 프랑수아 망고는 큐 끝에 가죽을 붙이고, 여기에 분필 성분을 발라 마찰을 높이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때 사용된 물질이 실제 chalk 계열이었기 때문에, 이후 개량된 제품이 등장했음에도 이름은 그대로 남게 된 것이다.

오늘날의 당구 초크는 사실 순수한 ‘백악(白堊)’이 아니다. 실리카, 산화알루미늄 등 다양한 미세 입자가 혼합된 공업용 재료에 가깝다. 색깔 역시 파란색이나 녹색 등으로 다양하게 바뀌었지만, 명칭만큼은 여전히 초크로 통일되어 있다.

언어는 종종 이렇게, 처음의 의미를 벗어나면서도 관습적으로 살아남는다. 흥미로운 점은 이 단어가 단순한 물질을 넘어 하나의 ‘행위’까지 포함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초크라는 단어는 물질에서 출발해 기술을 거쳐 문화로 확장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작은 큐브 하나에 담긴 이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스포츠와 언어가 어떻게 맞물려 발전해 왔는지를 엿볼 수 있다. 당구대 위에서 무심코 바르는 그 한 번의 동작에도, 사실은 수백 년의 시간이 스며 있는 셈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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