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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의 스포츠 브레인] 2026년 KBO 올스타전, 잠실 마지막 밤에 대하여

안녕이라 말하기 전에, 뇌는 필름을 다시 돌린다...격세지감(隔世之感)의 뇌과학

2026-07-13 09:58:36

올스타전 임하는 드림, 나눔 팀 / 사진=연합뉴스
올스타전 임하는 드림, 나눔 팀 / 사진=연합뉴스
지난 7월 11일 토요일 저녁 6시, 잠실야구장에서 나눔 올스타가 드림 올스타를 10-2로 눌렀다. 하지만 이날 스코어보드보다 더 크게 걸린 문구가 있었다.

'RE:잠실 - 올스타즈, 올 메모리즈', 1982년 출범한 한국프로야구는 올해 45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고, 잠실야구장은 올해 시즌으로 마무리되고 2031년 돔구장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이별을 한다. 2026년 KBO 올스타전은 그렇게 잠실에서 열리는 마지막 올스타전이 됐고, 관중석 곳곳에서 카메라를 든 손이 유독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왜 사람들은 스코어보다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더 반응했을까. 여기엔 해마와 대뇌피질이 손잡고 벌이는 특별한 작업이 있다. 평소 우리 뇌는 오래된 기억을 창고에 얌전히 넣어두고 어지간해서는 꺼내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신호가 들어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뇌는 그 기억을 다시 꺼내 재생하고 현재의 감정을 덧입혀 새로 저장한다. 이를 기억 재응고화라고 부른다. 마치 오래된 필름을 다시 편집실로 가져와, 지금의 색감으로 덧칠하는 것과 비슷하다.

잠실이라는 공간이 사라진다는 사실 하나가, 관중 수만 명의 뇌 속에서 각자 다른 필름을 동시에 재생시킨 셈이다. 누군가는 첫 데이트를, 누군가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앉았던 좌석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 재편집 과정에서 뇌는 단순한 사실을 넘어 '내가 이 공간에서 살아온 시간'이라는 감정적 의미를 다시 확인한다.

그래서 마지막이라는 말은 슬픔의 신호가 아니라, 뇌가 스스로에게 보내는 정리의 신호에 가깝다.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간직하기 위해 한 번 더 꺼내보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재응고화는 그냥 기억을 되풀이하는 것과는 다르다.

꺼내는 순간 기억은 잠시 불안정한 상태가 되고, 그 틈에 지금 느끼는 아쉬움이나 자부심 같은 감정이 새로 끼어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같은 잠실을 떠올려도 저마다 조금씩 다른 온도로 그 공간을 다시 저장하게 된다.

미스터 올스타 수상한 허인서 / 사진=연합뉴스
미스터 올스타 수상한 허인서 / 사진=연합뉴스
이날 주인공은 예상 밖의 인물이었다. 공교롭게도 생일이 7월 11일이었던 한화 허인서는 5타수 4안타 1타점 1득점으로 나눔 올스타의 10-2 승리를 이끌었고, 기자단 투표 26표 중 13표를 얻어 미스터 올스타에 올랐다.
2위는 10표를 받은 팀 동료 문현빈이었는데, 두 사람은 경기 후 서로를 향해 웃으며 축하를 건넸다. 마운드에서는 17년 만에 감독추천선수로 복귀한 류현진이, 타석에서는 42세의 최형우가 각자의 자리를 지켰다.

두 베테랑에게는 이번이 기록보다 더 큰 의미였을 것이다. 잠실이라는 무대가 사라지기 전, 자신이 걸어온 시간을 다시 한번 그 자리에서 확인하는 셈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정작 이번 올스타전에서 가장 화제였던 인물은 경기장 밖에 있었다.

양의지는 팬투표 기간 중 올린 "자려고 누웠는데"라는 짧은 글이 밈으로 번지면서, 정작 이날의 활약과는 무관하게 전체 득표 1위에 올랐다.

이 현상은 뇌과학적으로도 흥미롭다. 우리는 온라인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접하면, 그 내용의 사실 여부보다 '이걸 공유하면 나도 반응을 얻겠다'는 예측에 먼저 반응한다.

밈이 퍼지는 속도는 정보의 질이 아니라, 뇌가 사회적 반응을 예측하는 속도에 달려 있다. 45년째 같은 자리를 지켜온 구장과 하루 만에 퍼진 밈이 같은 밤 같은 공간에서 만난 셈이다. 잠실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그리움과 웃음이 동시에 SNS를 타고 흘렀다.

올스타전 축하 불꽃 쇼 / 사진=연합뉴스
올스타전 축하 불꽃 쇼 / 사진=연합뉴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말이 있다. 오래 지나지 않았는데도 마치 딴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을 뜻한다. 원래는 급격한 세월의 변화를 한탄하는 말이었지만, 이날 잠실 관중들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45년 된 공간이 사라지기 직전, 사람들은 그 변화를 슬퍼하기보다 자신이 그 세월을 함께 지나왔다는 사실을 조용히 확인하고 있었다. 세대가 바뀌고 응원하는 팀이 바뀌어도 잠실이라는 좌표만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의 뇌 속에도 이제 곧 사라질 '잠실'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자주 가던 분식집일 수도, 매년 여름을 보냈던 바닷가 마을일 수도 있다.

그 공간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뇌는 이미 필름을 다시 돌리기 시작했을지 모른다. 다음에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슬퍼하기보다 한 번 물어보면 어떨까. 나는 지금 이 공간에서 어떤 장면을 가장 오래 붙잡고 싶은가.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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