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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시카고 컵스 유망주 나경민의 '야구 인생 이야기'

2009년 해외 진출 선언 7인방 중 가장 좋은 대우로 '컵스행'

2014-08-02 19:22:10

▲모교덕수고교정에서만난'해외유턴파'유망주나경민.부상으로메이저리거의꿈은접었지만,프로가되겠다는그의꿈은여전히현재진행형이다.사진│김현희기자
▲모교덕수고교정에서만난'해외유턴파'유망주나경민.부상으로메이저리거의꿈은접었지만,프로가되겠다는그의꿈은여전히현재진행형이다.사진│김현희기자
[마니아리포트 김현희 기자]폭염 주의보가 발효된 대한민국. 그러나 그러한 폭염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특히, 그라운드가 잘 정비되어 있기로 유명한 덕수고 교정에는 동호회 야구팀들이 한창 경기를 펼치며, 무더운 더위를 자신들의 취미 생활로 극복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청룡기 3연패 이후 덕수고 선수들이 잠시 그라운드를 비우자 동호회 야구 선수들이 학교 측의 허가를 얻어 야구장을 잠시 빌려 쓴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덕수고 교정에서 꽤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2009시즌 이후 시카고 컵스와 입단 계약을 맺으며 태평양을 건넜던 ‘만능 외야수’, 나경민(23)이 그 주인공이었다.

나경민은 그 해에 해외 진출을 선언했던 7명의 고교 유망주(시애틀 최지만-김선기, 휴스턴 문찬종, 캔자스시티 신진호, LA 남태혁, 시카고 김동엽-나경민)들 중 가장 좋은 대우를 받으며 미국 진출의 꿈을 이루었던 이였다. 하지만, 그의 미국행은 봉황대기 대회 이후 발표됐기 때문에, 그 소식 자체에 놀라움을 표시하는 이들도 많았다. 더구나 그는 당시 청소년 국가대표팀에도 최종 선발되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계약으로 그도 태극마크를 내려놓아야 했다. 그를 대신하여 당시 경기고 외야수였던 조윤성(현 LG)이 발탁된 바 있다.

나의 모교, ‘덕수고에 대한 자부심’
당시를 떠올린 나경민은 예전 고교 시절 이야기부터 풀어나갔다. 당시에 비해 많이 세련된 모습으로 등장했지만, ‘대통령배 대회 2연패’의 추억은 분명 나경민에게도 강렬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2009년 대통령배 결승에서 상원고에 10-9로 추격당하던 상황에서 마지막 두 개의 아웃카운트를 한꺼번에 잡아낸 주인공도 다름 아닌 나경민이었다. 외야 플라이로 아웃 카운트를 하나 잡아낸 이후, 3루로 뛰던 주자를 날카로운 송구로 잡아냈기 때문이다. 그 기세를 몰아 덕수고는 그 해 청룡기 대회에서도 4강에 오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당시 청룡기 대회 4강으로 가장 아쉬워한 장본인이 바로 나경민이다. 당시를 떠올린 나경민은 “사실 나에게 쐐기점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1사 만루 상황에서 내가 타석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땅볼만 쳐도 한 점 낼 수 있다는 생각에 빠른 볼을 노렸는데, 예상대로 몸쪽 빠른 볼이 들어오더라. 그런데 이게 몸쪽으로 들어오다 보니 빗겨 맞았다. 그래서 투수 땅볼이 됐고, 그 여파로 병살타를 치고 말았다.”라며 아쉬워했다. 당시 덕수고는 경기 규정(22:45 이후 새 이닝을 시작할 수 없음)에 따라 다음날까지 준결승전을 연장해서 치러야 했는데, 1박 2일의 일정으로 치러진 준결승전에서는 3루수 김경도(현 한화)의 실책으로 결승점을 내줘야 했다.

“3루는 본래 (김)경도의 포지션이 아니었다. 하지만, 본인은 최선을 다했다. 경기 직후 펑펑 운 (김)경도의 모습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내가 그 상황에서 병살만 안 쳤어도 결승에 올랐을 경기였다.” 라며 5년 전 경기를 또렷이 기억해 내는 나경민. ‘지기 싫어하는 승부사 기질’은 졸업 이후에도 여전히 변함없어 보였다.

그렇게 당시 덕수고 라인업을 책임졌던 이들은 현재 모두 프로 입성에 성공했다. 이인행이 그 해 KIA 유니폼을 입은 것을 시작으로 김경도 역시 고려대 졸업 이후 올 시즌부터 한화 신고 선수로 프로 입단에 성공했고, 양효석과 유영현도 KT의 부름을 받으며 ‘덕수고 동문 전성시대’를 예고했다. 이 모습에 기뻐한 나경민도 “사실 내가 타고난 복이 많은 것 같다.”라며 부모님과 덕수고 정윤진 감독, 그리고 동문들에게 감사 인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경민은 올 시즌 모교 덕수고가 청룡기 3연패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자 누구보다도 기뻐했다고 한다. 우승의 순간을 기억하는 그는 “우리가 못한 일(전국 대회 3연패)을 후배들이 해 줬다. ‘덕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선수 개인의 모습보다는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려는 힘은 덕수를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라며 모교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은혜를 준 모든 이들을 위하여 ‘작은 봉사’를 시행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스포츠용품을 운영하는 김경록 대표도 한 눈에 그의 ‘범상치 않음’을 알아봤다고 한다. 하루는 김 대표가 나경민을 불러 세우더니, “너희 아버지를 뵙고 나니까 네가 어떠한 선수인지를 알겠더라.”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야구 용품은 돈 주고 사지 마라. 내가 용품 일체를 후원해 줄 테니, 야구 용품으로 고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며 후원을 약속했다고 한다. 그리고 김 대표는 약속대로 나경민의 미국 진출 이후에도 후원을 지속하며 그가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 후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나경민도 사진 촬영을 위해 일부러 김경록 대표가 준 글러브를 챙겨들고 나오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2편, ‘미국 진출 이후의 나경민’에서 계속-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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