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경민은 그 해에 해외 진출을 선언했던 7명의 고교 유망주(시애틀 최지만-김선기, 휴스턴 문찬종, 캔자스시티 신진호, LA 남태혁, 시카고 김동엽-나경민)들 중 가장 좋은 대우를 받으며 미국 진출의 꿈을 이루었던 이였다. 하지만, 그의 미국행은 봉황대기 대회 이후 발표됐기 때문에, 그 소식 자체에 놀라움을 표시하는 이들도 많았다. 더구나 그는 당시 청소년 국가대표팀에도 최종 선발되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계약으로 그도 태극마크를 내려놓아야 했다. 그를 대신하여 당시 경기고 외야수였던 조윤성(현 LG)이 발탁된 바 있다.
나의 모교, ‘덕수고에 대한 자부심’
하지만, 당시 청룡기 대회 4강으로 가장 아쉬워한 장본인이 바로 나경민이다. 당시를 떠올린 나경민은 “사실 나에게 쐐기점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1사 만루 상황에서 내가 타석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땅볼만 쳐도 한 점 낼 수 있다는 생각에 빠른 볼을 노렸는데, 예상대로 몸쪽 빠른 볼이 들어오더라. 그런데 이게 몸쪽으로 들어오다 보니 빗겨 맞았다. 그래서 투수 땅볼이 됐고, 그 여파로 병살타를 치고 말았다.”라며 아쉬워했다. 당시 덕수고는 경기 규정(22:45 이후 새 이닝을 시작할 수 없음)에 따라 다음날까지 준결승전을 연장해서 치러야 했는데, 1박 2일의 일정으로 치러진 준결승전에서는 3루수 김경도(현 한화)의 실책으로 결승점을 내줘야 했다.
“3루는 본래 (김)경도의 포지션이 아니었다. 하지만, 본인은 최선을 다했다. 경기 직후 펑펑 운 (김)경도의 모습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내가 그 상황에서 병살만 안 쳤어도 결승에 올랐을 경기였다.” 라며 5년 전 경기를 또렷이 기억해 내는 나경민. ‘지기 싫어하는 승부사 기질’은 졸업 이후에도 여전히 변함없어 보였다.
그렇게 당시 덕수고 라인업을 책임졌던 이들은 현재 모두 프로 입성에 성공했다. 이인행이 그 해 KIA 유니폼을 입은 것을 시작으로 김경도 역시 고려대 졸업 이후 올 시즌부터 한화 신고 선수로 프로 입단에 성공했고, 양효석과 유영현도 KT의 부름을 받으며 ‘덕수고 동문 전성시대’를 예고했다. 이 모습에 기뻐한 나경민도 “사실 내가 타고난 복이 많은 것 같다.”라며 부모님과 덕수고 정윤진 감독, 그리고 동문들에게 감사 인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경민은 올 시즌 모교 덕수고가 청룡기 3연패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자 누구보다도 기뻐했다고 한다. 우승의 순간을 기억하는 그는 “우리가 못한 일(전국 대회 3연패)을 후배들이 해 줬다. ‘덕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선수 개인의 모습보다는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려는 힘은 덕수를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라며 모교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은혜를 준 모든 이들을 위하여 ‘작은 봉사’를 시행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2편, ‘미국 진출 이후의 나경민’에서 계속-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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