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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고의 거포, 전 LA 다저스 유망주, 그리고 남태혁

고교 1학년 때부터 4번 타자로 활약하며, LA 다저스 '러브콜' 받아

2014-09-14 17:45:24

▲제물포고재학당시만났던남태혁.우타거포인그는고교3학년진학과함께계약금50만달러조건으로LA다저스행비행기에몸을실었다.사진│김현희기자
▲제물포고재학당시만났던남태혁.우타거포인그는고교3학년진학과함께계약금50만달러조건으로LA다저스행비행기에몸을실었다.사진│김현희기자
[마니아리포트 김현희 기자]“어휴, 먼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주말을 맞이한 인천 제물포고. 여느 학교와 마찬가지로 교정은 텅 비어 있었다. 이는 운동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야구부 학생들은 햇살이 내리쬐는 운동장에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각자의 위치에서 연습에 한창이었다. 투수조는 투수조대로 불펜에서 투구 연습을 하고 있었고, 야수조 역시 타격 훈련에 임하거나 그라운드에서 펑고를 받으며 수비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일부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자기 관리를 충실히 하기도 했다. 바로 그 웨이트 트레이닝장에서 한 명의 건장한 청년이 나타나 필자를 반겨주었다. 지난 2009년, LA 다저스와 입단 계약을 맺으며 미국행을 선언했던 거포 유망주, 남태혁(23)이 그 주인공이었다.

고교 1학년 때부터 4번에 배치, ‘주목받을 수밖에 없던 유망주’
사실 그는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유망주’였다. 당시 고교야구에서 보기 드문 오른손 거포 내야수라는 점도 그러했지만, 그가 1학년 때부터 4번에 배치되어 2, 3학년 ‘형님’들을 능가하는 성적을 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당시 가내영 감독의 용병술은 ‘파격’에 가까웠고, 그러한 스승의 믿음에 남태혁은 실력으로 보답했다. 당시를 떠올린 남태혁은 “사실 (유)익표 형(전 인하대)이 전진 배치되어 있었고, 그 형이 잘해 줬기 때문에 나에게도 찬스가 많이 왔던 것뿐이다.”라며 오히려 당시 활약을 팀 동료들의 공으로 넘기기도 했다. 그러는 한편, “그때 나와 함께 라인업에 배치됐던 (유)익표 형이 지금은 모교에서 코치를 하고 있다.”라며 옛 동료에 대한 근황을 전해 오기도 했다.

남태혁의 고교 시절 등번호는 55번이었다. 굳이 5번을 두 개 새긴 이유에 대해 남태혁은 “4연타석 홈런은 이미 고교야구에서 한 번 나왔다. 그래서 나는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에 등번호를 55번으로 선택했는데, 이게 또 쉽지가 않더라. 만루 홈런을 기록해 본 일도 있고, 연타석 홈런도 자주 기록했었으나, 미국 출국 전까지 ‘5연타석 홈런’은 기록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엇을 하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우타 거포’로서의 위용도 그렇게 3년 내내 지속되었을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가 소속된 제물포고는 2009년 당시 우승과는 별로 인연이 없는 팀이었다. 3학년 남태혁을 필두로 포수 정윤기(넥센)가 타선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마운드에서도 3학년 우완 홍유상(삼성)을 필두로 2학년 좌완 이현호(두산), 이창재(KT)가 전진 배치되어 있어 ‘우승 후보’로서 손색이 없었던 것과는 분명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에 대해 남태혁은 “이상하게 우리가 1회전에서 패했는데, 우리를 이긴 팀이 모두 우승을 차지하더라. 그래서 경기에서 졌어도 할 말이 있었다. ‘우리는 우승팀에게 졌다.’고(웃음). 그 고비를 넘겼다면, 2009년 청룡기 우승팀의 주인은 바뀌었을 수 있었다.”라며 지난 추억을 되새겼다.

그렇게 우승에 목말라 있던 제물포고는 시즌 마지막 대회인 미추홀기에서 극적으로 우승에 성공했다. “마지막 대회에 우승을 하고 미국으로 떠날 수 있어서 기분은 좋았다.”라고 이야기한 남태혁이었지만, 정작 우승의 기쁨은 오래 누리지 못했다. 우승 직후 바로 다음날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천으로 인하여 결승전이 하루 순연되었던 것도 남태혁의 ‘서두른 출국’을 재촉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청운의 꿈을 안은 채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누가 나와도 언제든지 나의 스윙을 할 수 있었고, 포지션도 기존 1루에서 3루로 정착하면서 자신감이 최고조에 올라 있었다. 나에 대한 구단의 대우 또한 굉장히 좋았다. 이대로만 가면, 상위 리그 승격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봤다.”
실제로 애리조나 루키리그에서부터 시즌을 시작한 남태혁의 초반 기세는 상당히 좋았다. 한때 4할 타율까지 기록하며 ‘리그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4번 타자’로 이름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시련이 찾아오면서 그도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바로 부상이다. 그것도 주루 플레이 과정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한 것이었다.

“(당시를 회상하는 듯한 얼굴로) 어휴,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1루에서 2루로 뛰는 과정에서 더블 플레이를 막으려고 적극적인 주루를 했는데, 상대 내야수 무릎에 얼굴을 맞았다. 그래서 한동안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어야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빨이 몇 개 나갔더라. 이때 까지만 해도 며칠 쉬고 나면 다시 정상적으로 플레이를 할 줄 알았다.” 남태혁의 회상이다. 그러나 한 번 아픈 몸은 좀처럼 낫지 않았다.

- 2편에서 계속 -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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