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균자책점, 탈삼진, 다승, 그리고 타율과 타점, 홈런 숫자 등은 모두 그라운드에서 ‘눈에 보이는 숫자’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해당 선수의 ‘실력’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게 해 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숫자’는 순위를 매길 수 있을지언정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라운드 뒤편에서 ‘노력’을 했던 흔적들은 절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도 그 노력을 위해 글러브와 야구 방망이를 잡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렇게 숨어 있는 이들 중에서 ‘진짜 프로’가 나올 수 있는 법이다. ‘히든루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야구 입문 5년 만에 프로행을 꿈꾸는 아마추어, 동강대학교 투수 우영재(20) 선수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예술 유망주’ 우영재, 운명과도 같았던 ‘야구와의 만남’
당시 주전 외야수로 뛰었던 우영재는 1학년이었다. 제아무리 약체라 해도 1학년이 실전에 투입되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다. 더군다나 그는 고교 진학 이후에야 야구를 시작했다. 준비가 안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2011년 후반기 주말리그부터 실전에 투입됐고, 당시 전주고의 ‘유일한 승리’였던 충주 성심학교와의 경기(당시 9-7로 전주고 승)에서도 현장에 있었다. 이에 대해 우영재의 부친인 우승화씨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억한다.
“사실 (우)영재는 애니메이션에 소질이 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대회만 나가면 입상을 했고, 그 중에는 ‘금상’ 수상으로 학교에서도 주목을 받았던 아이였다. 그런데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축구를 시작하더니, 2학년 때에는 사회인 야구를 하는 아저씨들을 쫓아가서 야구를 하더라. 그때까지만 해도 아들이 야구를 계속할 줄 몰랐다.”
사실이다. 우영재는 향후 ‘한국 종합예술학교’로도 진학할 수 있었던, 예술 계통의 유망주였다. 중학교 때 했던 축구도, 사회인 야구팀을 따라서 즐겼던 야구도 모두 취미로 시작했고, 우영재 본인도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했던 터였다. 그러나 우영재는 취미로 시작했던 야구의 재미에 빠져들었고, 안정된 진로 대신 도전을 선택하겠다는 뜻을 아버지에게 전달했다.
“원래 소속 학교는 동네에 있던 신서고등학교였다. 그런데 영재가 ‘야구 테스트 한 번만 보게 해 달라, 떨어지면 다시는 야구를 쳐다보지도 않겠다.’라고 하면서 가족들을 설득하더라. 그래서 우리(가족)도 ‘그런 조건이라면, 실력껏 해 봐라.’라고 조건부 허락을 했고, 마침 선수가 부족했던 전주고에서 선수 공개 모집 테스트를 한다기에 그곳으로 갔다. ‘설마 합격하겠는가?’ 싶었는데, 덜컥 합격해서 돌아왔더라. 원망 안 들으려고 테스트 본 것이 결국 인생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됐다.” 아버지 우승화씨의 설명이다.
“사실 (우)영재가 합류할 때만 해도 김승중 당시 코치께서 ‘여름 훈련을 버티지 못하고 이탈할 것 같았던 선수’로 생각하셨다고 하더라. 그런데 웬걸. 그대로 남아 혹독한 훈련을, 그것도 아마추어 중에 아마추어가 그렇게 버텨 내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고 하더라. 결국, 3학년 끝까지 별 탈 없이 선수 생활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했다.”
우영재의 합류와 함께 전주고에도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2011시즌 이후에는 전북 인근에 이평중학교 야구부가 창단되는 등 선수 수급을 위한 전제 조건도 갖춰졌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 속에서 우영재도 큰 결단을 했다. 바로 투수로의 보직 전환이었다(2편에서 계속).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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