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순우체국 건너편에서 그 선수가 나타나기를 기다릴 때 즈음, 저 멀리서 ‘덩치 큰 사나이’ 한 명이 성큼성큼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한눈에 봐도 운동선수라는 사실을 바로 인지할 만큼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먼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작년 5월에 귀국했습니다. 좋지 않은 몸으로 뛰는 것에 자신이 없어 제가 먼저 구단에 방출을 요청했고, 구단도 제 뜻을 이해하고 흔쾌히 귀국을 허락했습니다.”
본인이 선택한 귀국이었지만, 그는 혼란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막고 싶었다. 한때 야구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즈음,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힘을 줬다.
“한때 여행도 다니면서 심신(心身)을 바로하고, 주위의 조언도 들으면서 마음을 다 잡게 됐습니다. 이제 또 다른 목표를 위해 뛰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새로운 목표를 향하여 ‘소리 없이 노력하는’ 사나이, 전 캔자스시티 로열스 포수 신진호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 최근 세한대학교에서 운동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신진호(이하 ‘신’) : 세한대에는 내가 (고교) 1학년 때 감독을 하셨던 이동석 감독님이 사령탑으로 재직 중이시다. 내가 귀국하고 한동안 어떻게 할지 막막할 때 감독님께서 연락을 하셨다. ‘와서 운동도 하고, 미국에서 배워 온 것을 후배들에게 전수 좀 해 달라.’라고. 그래서 두말 없이 세한대로 갔다. (세한대가 위치한) 영암에서 학교와 기숙사만 왔다갔다한다. 다른 생각 하지 않고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사실 동국대 쪽으로도 알아볼까 했지만, 서울보다는 여기(세한대)가 좋을 것 같아서 그대로 자리를 잡았다.
- 동국대에는 어떠한 인연이 있는가?
신 : 고교 2학년 때 감독님이 지금 동국대에 계시는 이건열 감독님이다. 3학년 때 감독이셨던 김동현 감독님도 지금 코치로 동국대에 계신다. 그래서 서울로 갈까 생각도 했지만, 서울에 있으면 왠지 다른 생각을 하면서 밖으로 놀러다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마지막에는 생각을 바꿨다. 생각해 보니, 난 고교 3년 동안 세 명의 감독님을 만난 셈이다(웃음).
- 그도 그럴 것이 이동석 감독님은 화순고 사령탑을 역임하면서 모교의 부름을 받아 군산상고로 가셨고, 후임 이건열 감독님도 프로의 부름을 받지 않으셨나.
신 :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 그런데 내가 화순고에 오게 된 이유가 바로 이동석 감독님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나를 점찍어 두셨고, 고교 진학 전에 화순고에서 같이 운동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기도 했다.
- 그래, 고교 이야기가 나왔으니 옛날이야기를 좀 해 보자. 2009년 당시 화순고 야구부의 선수 규모는 작았지만, 전력은 참 괜찮았던 기억이 난다.
신 : 에이스로 (이)승현(現 LG)이가 버텨주고 있었고, 그때 2학년이었던 (홍)건희(現 KIA)도 나름대로 제 몫을 다 했다. 타선에서는 나를 비롯한 (정)진기(現 SK), (김)선현(동국대)이 등 후배들이 참 좋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성적을 내지 않았나 싶다.
- 김선현이라면 현재 군 복무에 임하고 있는 김선빈(現 KIA)의 친동생 아닌가.
신 :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 무릎 부상 때문에 지난해 내내 제대로 못 뛰었다고 한다. (김)선빈이 형이나 (김)선현이하고 고교 시절에 모두 뛰어 봐서 나름대로 각자의 장점을 잘 아는데, 방망이 실력만 놓고 보면 선현이가 한 수 위라고 본다. 대신 선빈이 형은 수비 센스가 뛰어나고, 때로는 투수로도 마운드에 올랐을 만큼 어깨가 상당히 강하다. 그 점 때문에 프로에서도 성공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선현이도 부상을 극복하고, 다시 프로 입단을 위해 올 시즌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 그런데 신진호 본인도 형제 야구선수 아닌가. 형(신성호)도 건국대에서 야구를 한 것으로 안다.
신 : 형은 휴학 후 군 복무에 임했다. 작년에 전역하여 올해 4학년으로 복학하는데, 야구는 그만뒀다. 이제 보통 학생으로 돌아가 무사히 졸업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집에서 운동하는 사람이 나 하나다.
-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옛날로 돌이켜 보면, 2009년 화랑대기 당시 준결승전에서 이재학(現 NC)이 버티고 있는 대구고를 만나지 않았는가.
신 : 그 경기에서 우리가 5-4로 이겼다(웃음). 목표가 4강이었는데, 1차 목표를 달성한 이후 결승까지 오르고 나니 정말로 내친김에 우승까지 가보고 싶었다.
- ‘눈물의 역투’를 펼친 이재학을 뒤로하고 결승에서는 또 다른 ‘괴물’, 김주원(現 KT, 개명 전 김민식)이 버티고 있는 개성고를 만났다.
신 : (아쉬운 듯) 지금도 (이)승현이와 만나면 그 때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 정말 하루만 더 쉬고 만났다면 이기지 않았을까 싶다. 그만큼 (이)승현이가 많이 던졌다(주 : 당시 결승에서 3-1로 개성고 승리).
- 그런데 정작 큰 문제는 바로 다음이었다. 결승전 끝나자마자 그 다음날 바로 봉황대기 1회전 경기를 하기 위해 부산에서 수원으로 이동해야 했다.
신 : (고개를 흔들며) 화랑대기 끝마치고 다음날 새벽 4시에 도착했다. 그때 (이)승현이하고 “야, 우리 이거 자야하는 거냐, 말아야 하는 거냐?”라며 잠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를 하려면 잠깐이라도 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딱’ 두 시간 잤다(웃음). 정말 ‘해 볼 때까지 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버텼는데, 몸이 안 따라 주더라. 결국, 1회전에서 충훈고에 졌다. 그래도 미국에 가면서 우승 한 번 하고 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참 아쉬웠다.
- 2편, 미국 진출 이후 이야기에서 계속 -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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