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화 부회장(2010.12.5)[국민생활체육전국씨름연합회 제공]](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20419034441039675e8e9410871751248331.jpg&nmt=19)
서울에서 나서 용인에서 자란 그는 용인고 1학년 때 우연히 경기도 광주에서 열린 대회에 나갔다가 우승하며 씨름에 입문했다. 당시만 해도 씨름부가 있는 학교가 없어서 개인 훈련으로 각종 대회에 출전했지만, 키 186㎝, 몸무게 105㎏의 뛰어난 체격 조건 덕분에 전국종별씨름선수권, 전국장사씨름대회 등에서 우승했다. 1976년부터는 대한씨름협회 경기이사, 상벌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그는 1981년 광역시로 승격된 인천시가 분리된 뒤 경기도 씨름협회 전무이사에 임명됐다. 1981년 경기대에 도내 유일의 씨름부를 창단하며 감독을 맡았으며, 그해 5월 국풍81 씨름 대학부 경기에서 우승했다. 당시 창단 멤버가 김준태 경기대 씨름부 감독, 조경덕 전 안산시청 씨름팀 감독 등이다.
1986년 경기도 연고 실업팀인 해태유업 씨름단을 창단해 감독을 맡는 등 경기도 내 초중고교와 실업팀 창단에 매진했다. 2016년에는 경기도와 수원시, 경기대의 3자 협약을 끌어낸 끝에 경기대 캠퍼스 안에 광교씨름전용체육관을 건립했다.
또 경기도씨름협회와 일본 오키나와스모(角力)협회 간 정기적인 교류전을 이끌었고, 2006년 1월 전국씨름협회 회장 직무대행을 맡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임숙자씨와 사이에 아들 최근철씨와 딸 최순미씨 등이 있다. 빈소는 수원시 연화장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20일 낮 12시, 장지는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묘봉리 선영. ☎ 031-218-6561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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