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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75] 장기에서 왜 ‘차(車)’라고 부를까

2026-08-15 07:25:33

 장기판
장기판
장기판에서 ‘차(車)’는 가장 강력하고 기동성이 뛰어난 공격 기물이다. 직선으로 멀리 움직이는 장거리 공격수이다. 가로와 세로로 장애물이 없을 때 원하는 만큼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한 번 열린 길을 잡으면 상대 진영 깊숙이까지 단숨에 파고든다.

‘車’는 본래 ‘수레’를 뜻하는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타난 車를 보면 차체와 끌채, 양쪽 바퀴가 갖춰진 형태로 되어 있다. 즉 글자 자체가 실제 수레의 모습을 그림처럼 나타낸 데서 출발했다. 이 글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수레’라는 뜻을 가졌다. ‘설문해자’에서는 車를 ‘바퀴가 있는 수레의 총칭’으로 풀이한다. 현대 한국어에서도 車의 훈은 여전히 ‘수레’, 음은 ‘차’ 또는 ‘거’이다.

장기의 차가 자동차의 ‘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오히려 자동차가 훨씬 나중에 등장하면서, 원래 ‘수레’를 뜻하던 車가 자동차를 가리키는 말로 확대된 것이다. 오늘날 국립국어원 사전에서도 ‘차’의 기본 의미를 바퀴가 달려 사람이나 짐을 나르는 기관으로 설명하고, 장기의 車 역시 별도의 의미로 싣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차’와 ‘거’이다. 같은 車인데 왜 ‘자동차’에서는 차이고 ‘자전거’에서는 거일까? 이것은 車에 한국 한자음이 두 가지, 즉 차와 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동차(自動車), 기차(汽車)에서는 ‘차’, 자전거(自轉車), 전거(戰車) 같은 말에서는 ‘거’가 쓰이는 역사적인 차이가 생겼다.

그렇다면 수레가 왜 장기말이 됐을까. 장기는 단순한 말판 놀이가 아니라 옛 중국의 전쟁을 상징적으로 재현한 게임이라는 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본 코너 1871회 ‘왜 '장기(將棋)'라고 말할까’ 참조) 장기판의 주요 기물들을 보면 그 성격이 드러난다. 말(馬)은 기병을, 상(象)은 코끼리 부대를, 포(包)는 포병을 상징한다. 그리고 車는 전차, 즉 전쟁터에서 수레를 끌고 다니던 전차 부대를 나타낸다. 실제로 장기의 車를 ‘전차 부대’에 대응시키는 설명도 확인할 수 있다.

장기에서 車는 가로와 세로로만 움직인다. 이 역시 전차라는 이미지와 연결해 생각해볼 수 있다. 전통적인 장기와 중국의 상기(象棋)에서 車는 직선으로 이동하는 강력한 기물이다. 실제 전쟁에서 사용되던 고대 전차가 오늘날 자동차처럼 자유롭게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탈것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장기의 직선 이동을 고대 전차의 이미지와 연결해 설명하기도 한다.

물론 장기의 규칙 하나하나가 실제 전차의 움직임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장기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규칙과 형태가 발전한 놀이이기 때문이다. 다만 ‘車’라는 이름만큼은 아주 오래된 전쟁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생각해 보면 장기판은 작은 전쟁 박물관과도 같다. 말은 말을 타고 달리고, 상은 코끼리를 타고 움직인다. 포는 포를 쏘고, 병사들은 전진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車는 수레의 모습으로 묵묵히 직선을 달린다.
오늘날 우리는 ‘차’라고 하면 으레 자동차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장기판에서 “차 나왔다”는 말이 들리는 순간, 그 ‘차’는 자동차가 아니다. 수천 년 전 전쟁터를 누비던 수레, 車의 기억이다.

그러고 보면 장기의 車는 꽤 오래된 이름을 가진 말이다. 자동차보다 훨씬 오래됐고, 어쩌면 자동차라는 말이 생기기 전부터 이미 ‘차’였다. 우리가 장기판 위에서 부르는 짧은 한 음절 속에, 수레와 전차와 고대 전쟁의 역사가 함께 들어 있는 셈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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