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944] 왜 ‘테니스공(tennis ball)’이라고 말할까

김학수 기자| 승인 2023-03-29 07:54
한국 남자테니스 간판 권순우 경기 모습. 형광색 테니스공을 받아 넘기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 남자테니스 간판 권순우 경기 모습. 형광색 테니스공을 받아 넘기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테니스공(tennis ball)’은 테니스 경기를 위해 만들어진 공을 말한다. 공식 경기에서 쓰는 테니스공은 형광의 노란색깔을 갖는다. 하지만 동호인끼리의 경기에서는 여러 색깔의 공을 쓴다. 테니스공을 영어 발음대로 ‘테니스볼(tennis bal)’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오랫동안 썼던 사회적 언어습관 때문이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골프 등 구기종목들은 종목 이름과 함께 ‘공’이라는 우리 말을 붙여 쓴다. 여기에는 어떤 구체적인 규정이 없고 그냥 관습적으로 쓴 것으로 추정된다. (본 코너 122회 ‘왜 ‘골프볼(Golf Ball)’이 아닌 ’골프공‘이라고 말할까’ 참조)

영어용어사전에 따르면 영어에서 볼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1205년 영어 시가에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어의 기원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고대 게르마니아어 ‘발루(Bollr)’에서 중세 영어 ‘발(Bal)로 바뀌면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고대 스웨덴어 ’발러(Baller), ‘중세 독일어와 네덜란드어 ’발(Bal)’도 같은 어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만약 볼이 게르만어에 기원을 두었다면 라틴어 '폴리스(Foll-is)'와 같은 의미인 "폭발되거나 부풀려진 것"이라는 동의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후기 중세 영어의 철자에서 이 단어는 프랑스어 ‘발레(Balle)와 그래픽적으로 일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 ’발레‘는 그 자체로 게르만어의 기원과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테니스공의 역사는 1599년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 영국 대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헨리 5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415년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중 ‘아쟁쿠르 전투’ 직전과 직후 사건에 초점을 맞춘 영국왕 ‘헨리 5세’ 이야기를 다룬 작품에서 왕에게 선물한 테니스공이 전쟁을 다시 촉발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초기 테니스공은 양모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1870년대 테니스 경기를 규칙화한 영국군 소령 월터 윙필드는 독일에서 수입한 고무공을 잔디 테니스용 용구로 사용했다. 당시 테니스공은 밝은 회색 또는 빨간색이었다. 형광색 노란공은 TV 중계에서 더 잘 보인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1972년에 처음 도입됐다. 현대식 테니스 공은 크기, 무게, 변형 및 바운스 기준에 대한 특정 기준을 준수해야 정규 경기용으로 승인된다. 국제테니스연맹(ITF)은 테니스공 공식지름을 6.54~6.86cm(2.57~2.70인치)로 규정한다. 공무게는 56.0~59.4g(1.98~2.10온스) 범위여야 한다. 노란색과 흰색은 ITF에서 승인한 유일한 색상이다. 생고무공속에 특수가스를 넣고 다시 천으로 감아 만드는 테니스공은 고도의 제작기술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미국에서 만든 ‘윌슨’과 일본에서 만든 ‘던롭’ 제품을 많이 쓴다.

우리나라 언론에선 일제강점기 때부터 테니스를 ‘경식정구(hard ball tennis)’로 칭하며 ‘공’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조선일보 1923년 5월19일자 ‘예천정구대회(醴泉庭球大會)의성황(盛况)’ 기사는 ‘예천(醴泉)운동게에 새력사에 광채잇는 쳣머리를 장식할 전예천춘계정구대회(全醴泉春季庭球大會)는 지난 십삼일아츰부터 예천사설대창학원운동장(醴泉私設大昌學院運動場)에셔 예천청년회(醴泉靑年會) 주최와 본보예천지국(本報醴泉支局) 후원하에서 뎨일전을 개시하게되엿는데 동대회에 참가한 단톄는 례쳔공립보통학교 례쳔청년회의경영인대창학원이며 례쳔운동게에셔 일흠잇는 선수들은 긔의 전부가참가하야 전에보지 못하든 성황을 이루엇다 오전 아홉시경 운동장에 모힌 선수들은 경쳡한 운동부에 공채를 손에들고 대오를정졔하고 운동장에 도착하야 입장식을거행하엿는데 각선수의 영광을 자랑하는 우성긔는따듯한 봄바람에 펄々 흔날니며 활긔잇는 선수의 얼골에는 희망의빗이 아츰 해에 더욱 새로운중 례천청년회장 박원석(朴元錫)씨의 주□가잇슨후 전투준비에 옴기어서 오전열시부터 청년회의소속인 군악소리를 따라셔 경기가 개시되얏다 그런대 오전에는 단순이 학생선수로만이십조를 추쳔하야 박원셕씨의 심판으로부터「푸레이뽀ㄹ」의소리에 운동장의 공긔는 더욱긴장 하고 뎨일전에나셔는 어린학생의 선수의태도는 새로이 씩씩하다 추첨한 순셔대로 경기를 닷투는중 때때로 사방에셔 일이나는 박수소래는 운동장을 뒤집는듯하며 긔상이활발한 학생선수들은 용맹으로 장시간을싸호다가 마침내 월계관(月桂冠))은 황암우(黃岩于))김상반(金相般)) 두선수의 머리에쏘계 되얏스며 다시오후에는청년과 학생이합동하야 오후셰시부터시합이개시하얏는데 더욱이관람객은 인해를이루엇스며 간간히 들니는 청아한음악소리는 일반관람자로하여금 정신을 상쾌케하며 연하야 박수의소래와 푸레이소래는 사람의 이막을 놀나게 하얏스며 각조의선수들은 순서를따라 진행하얏는대 최후의승리도 역시 학생템으로 장춘근(張春根)백낙경(白樂慶)두선수에게 도라간후 오후칠시에 이르러 우승긔를 수여하고 군악을 선두로하야 운동장에 일회를 도라단닌후 산회하엿더라(례쳔)’고 전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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