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마라톤은 한때 세계가 주목하는 ‘마라톤 왕국’이었다.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한 손기정 선수는 한국 선수였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이를 갈며 나라가 망한 설움을 우승으로 삼키며 달리고 또 달렸다. 심장이 터지도록 달리며 손기정 선수는 2시간 29분 19초 2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베를린의 영웅이 되었다. 이어서 특히 후반 레이스가 강한 전남 순천 출신인 남승룡 선수도 2시간 31분 42초의 기록으로 3위에 입상하며 마라톤의 저력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올림픽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마라톤에서 한국의 두 선수가 금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한 것이다.
우리 국민에게 마라톤은 스포츠라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민족의 혼을 일깨우고 자긍심을 드높이는 역할을 해왔다. ‘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마라톤은 그 어떤 반칙이나 편법이 통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우리 국민성과 각별하다. 온몸으로 전 과정을 빈틈없이 관통해야 하는 것이 마라톤이다. 어떤 물리적인 공간, 시간적인 여백도 개입할 수 없는 것이 마라톤이다.
세계 마라톤은 현재 ‘마라톤 왕국’으로 불리는 케냐 등 아프리카 선수들이 주도하는 스피드 경쟁으로 엄청난 기록 단축을 실현해가고 있다. 지난 2022년 9월 25일에 열린 베를린 마라톤에서 엘리우드 킵초게(39·케냐)는 2시간 01분 09초의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서브 2’ (2시간 이내에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 꿈의 실현이 다가왔다.
하지만 한국 마라톤은 지난 2000년 도쿄국제마라톤에서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세운 한국 신기록 2시간 7분 20초의 벽을 2023년 9월 현재까지 23년째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아시안게임 남자 마라톤에서 역대 7회 우승하며 6회 우승한 일본을 앞서 아시아에서도 강한 저력을 과시했다. 이창훈(1958년 도쿄), 김양곤(1982년 뉴델리), 김원탁(1990년 베이징), 황영조(1994년 히로시마), 이봉주(1998년 방콕/2002년 부산), 지영준(2010년 광저우) 선수가 우승했다.
이번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마라톤에 출전하는 남녀 4명의 선수들에게 우승과 함께 한국 신기록을 기대한다. 한국 마라톤의 새로운 희망 박민호(25·코오롱) 선수는 지난해 3월 서울마라톤에서 자신의 기록을 1분 30초나 단축하며 2시간 10분 13초로 최고 기록을 세우며 우승, 2시간 6분대를 목표로 막바지 훈련과 최상의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어 기대가 크다.
또 국내 여자부에서는 정다은(27·k-water)이 2시간 28분 32초로 자신의 기록을 4분 가까이 단축하면서 1위로 골인해 기염을 토하며 여자 마라톤의 새로운 유망주로 떠올랐다. 이런 놀라운 기록 단축 추세를 보면 정다은 선수도 기대가 된다.
여기에 2021년 4월 경북 예천군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기록한 2시간 11분 24초의 경험이 풍부해 노련한 심종섭(32·한국전력)과 한국 여자 마라톤의 간판이자 투혼의 최경선(31·제천시청)은 2023년 4월 대구국제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 28분 49초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어 눈길을 끌만 하다.
예고편만 보아도 벅차오르는 ‘1947 보스톤’ 영화 개봉과 함께 그날의 감동과 영광을 10월 5일 육상경기 마지막 날 열리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마라톤에서 선배들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우승과 한국 신기록을 기대하며 태극마크가 새겨진 조국의 유니폼을 입고 손기정 선배님의 정신으로 뛰어주길 바란다.
[글=김원식 마라톤 해설가·전남 함평중 교사]
[김선영 마니아타임즈 기자 / scp2146@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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