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지금, 그는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맞붙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더그아웃에 앉아 있다. 그리고 다저스의 타선 정보를 전하고 있다.
필리스의 롭 톰슨 감독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뷸러가 다저스 타자들에 대한 정보를 투수 코치들에게 주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뷸러는 시즌 초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했지만, 부진 끝에 8월 말 방출됐다. 그를 받아준 팀은 다름 아닌 필리스였다. 잭 휠러가 혈전 증세로 이탈하며 공백이 생긴 팀이었다. 톰슨 감독은 뷸러를 불펜에서 쓸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전보다 더 중요한 건 그의 존재 그 자체였다. 7년 동안 다저스에서 쌓은 경험과 데이터, 그리고 내부 사정을 꿰뚫는 눈. 그건 어느 팀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자산이다.
문제는 윤리다. 물론 규정상 잘못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프로스포츠에서 팀 내부 정보를 이전 소속팀에 대한 무기로 활용한다면, 그건 도덕의 경계에 선 행동이다.
뷸러에게는 생존의 선택이었을지 몰라도, 다저스 팬들에게는 배신처럼 느껴질 수 있다.
야구는 정보전이다. 타자의 타이밍, 투수의 성향, 사인의 흐름까지 모두 데이터로 읽는다. 그렇기에 '정보를 가진 자'는 곧 힘을 가진 자다. 경험, 존재감, 그리고 적을 가장 잘 아는 자라는 사실. 그것이 지금 필리스에게 필요한 승리의 조각이었다.
다저스는 1차전에서 역전승을 거두며 시리즈의 흐름을 잡았다. 하지만 이제, 다저스의 과거를 누구보다 잘 아는 투수가 그 반대편에 서 있다. 그가 던지는 공 한 개, 혹은 전해준 한마디 조언이 시리즈의 향방을 바꿀 수도 있다. 그건 전혀 과장이 아니다.
결국 이 사건이 보여주는 건 하나다. 충성은 사치가 되었고, 정보가 생존이 된 시대다. 워커 뷸러는 여전히 투수다. 단지 지금은 공이 아닌 정보를 던지고 있을 뿐이다.
[강해영 마니아타임즈 기자/hae2023@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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