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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51] 북한 농구에선 왜 ‘골밑슛’을 ‘륜밑투사’라고 말할까

2026-01-01 05:54:56

 2023 항조우 아시안게임 한국-북한전. 북한 선수의 골밑슛을 한국 선수가 저지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2023 항조우 아시안게임 한국-북한전. 북한 선수의 골밑슛을 한국 선수가 저지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 농구 용어는 대부분 미국 원어를 기반으로 일본 번역어를 거쳐 정착됐다. 이 과정에서 일본식 번역·조어 관행이 강하게 남았고, 지금까지도 일상 용어로 쓰이고 있다. ‘골밑슛’이라는 말도 일본 관행의 흔적이 남아 있는 단어이다. 영어에 골밑슛을 직접 의미하는 용어는 없다. 다만 ‘under the basket shot’, ‘close-range shot’, ‘inside shot’ 같은 표현이 쓰인다. 한국에서는 이를 직역하지 않고 ‘goal’은 골, ‘under’는 ‘밑’, 그리고 ‘shoot’는 ‘슛’이라는 말로 압축적으로 결합해 골밑슛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다. 일본에선 ‘골밑’을 ‘ゴール下(ごーるした, 고루 시타)’라고 말하며, 여기서 ‘ゴール(goal)’는 ‘basket’를 대신하는 일본식 표현이다. 골밑이라는 말이 일본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언론에서 골밑슛이라는 말은 1960년대부터 등장한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66년 9월9일자 ‘3분(分)30초(秒)두고타이 이영희(李榮姬)롱슛이결정(决定)’ 기사는 ‘이날 상은(商銀)은 게임초부터 올코트 프레싱을 벌였으나 오히려 제일은(第一銀)의 속공에 말려들어 6대4로 리드당하기 시작—. 제일은(第一銀)은 F임순화(任順化) 김월선(金月仙)등이 착실히 득점을 하는데 반해 상은(商銀) F김명자(金明子)G김추자(金秋子)의 슛은 극히 부조(不調)해 채현애(蔡賢愛) 김경자(金炅子)등 2진 선수와 교체하여 C박신자(朴信子)를 포스트에 세우고골밑슛에만 득점을 의존 했다.제일은(第一銀)은 12분 F이혜숙(李惠淑)이들어와 박신자(朴信子)를 마크하면서 공수 양면의 리바운드를 거의 독점,스코어는더 벌어졌고7포인트를앞선채 전반은타임아웃’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기사에는 당시 일본식·미국식 농구 용어가 혼합된 1960년대 스포츠 문체가 잘 드러난다. 골밑슛은 일본식을 가미한 표현으로 오늘날까지 그대로 쓰고 있다.

북한 농구에선 골밑슛을 ‘륜밑투사’라고 부른다. 이 말은 영어 ‘림(rim)’을 의미하는 한자어 ‘바퀴 륜(輪)’과 아래를 의미하는 순우리말 ‘밑’, 그리고 쏘는 행위를 의미하는 한자어 ‘투사(投射)’의 합성어이다. 림 밑에서 쏜다는 의미이다. 원래 rim은 컵·바퀴·바구니·그릇 등의 둘레 가장자리, 테두리를 뜻한다. 고대 고지 독일어가 어원이며 고대 영어로 차용됐다. 1891년 미국에서 농구가 만들어질 당시, 득점 장치는 ‘복숭아 바구니(peach basket)’였고, 이 바구니의 입구 테두리를 자연스럽게 rim이라 불렀다. (본 코너 352회 ‘왜 농구(籠球)라고 말할까’ 참조)
륜밑투사는 외래어를 최소화하고 자국어로 치환하려는 북한의 언어 정책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골밑이라는 결과 중심 표현 대신, 림 아래라는 공간 개념을 택한 것도 특징이다. 득점보다 위치와 상황을 먼저 설명하는 방식이다.

‘슛’이 아닌 ‘투사’ 역시 눈길을 끈다. 던질 투(投), 쏠 사(射). 공을 던져 목표에 맞히는 동작을 해부하듯 풀어낸 말이다. 동시에 이 단어는 군사 용어와 겹친다. 북한에서 체육은 오래도록 전투력과 연결돼 왔다. 선수는 전사이고, 슛은 투사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래서 북한 농구 용어는 기술적이면서도 전투적이다. 달림투사, 벌넣기, 륜밑투사 같은 말들은 경기의 속도와 힘, 공간을 강조한다. 표현은 달라도 농구의 본질은 같다. 다만 그 언어를 통해 드러나는 사회의 얼굴은 확연히 다르다. (본 코너 1600사회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스포츠 언어참조)

‘륜밑투사’는 북한 농구의 말이자, 북한 체육 언어의 성격을 압축한 단어다. 스포츠 용어 하나에도 체제와 사유 방식이 스며든다. 공 하나를 던지는 장면에서조차, 언어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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