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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46] 북한 김정은은 왜 ‘마이클 조던’의 열렬한 팬이 되었을까

2025-12-27 07:00:52

 2013년 북한을 방문한 데니스 로드먼이 김정은을 만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3년 북한을 방문한 데니스 로드먼이 김정은을 만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은이 1990년대 스위스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은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전성기와 맞아 떨어진다. 당시 조던은 시카고 불스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NBA의 위상을 전 세계로 끌어올렸다. 그의 개인 성과로 NBA 챔피언 6회 (1991~93, 1996~98), 전무후무한 파이널 MVP 6회, 정규시즌 MVP 5회, 득점왕 10회, 올스타 14회, NBA 역사상 최고 평균 득점(30.1점) 등을 손꼽을 수 있다. 그는 농구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상징적인 인물로, 단순한 스포츠 스타를 넘어 현대 대중문화와 리더십의 아이콘으로 평가됐다.

김정은이 청소년기에 머문 유럽 사회는 축구가 지배적이지만, 학교 체육과 실내 스포츠 문화 속에서 농구는 매우 일상적인 종목이었다. 이 시기 김정은은 NBA 중계와 스타 선수들의 플레이를 접하며 농구를 자연스럽게 흡수했을 가능성이 크다. 농구는 그에게 외부 세계와 연결된 개인적 기억의 일부였다.

특히 마이클 조던에 대한 선호는 상징적이다. 조던은 단순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승부욕, 스타성이 극대화된 미국 문화의 아이콘이다. 김정은이 이런 인물을 동경했다는 점은, 그가 서구 문화를 전면 거부하기보다 선택적으로 수용해 왔음을 보여준다. 농구는 이념적 부담이 적은 ‘미국 문화’였고, 김정은은 이를 통해 체제의 벽을 넘지 않으면서도 외부와 접촉하는 창을 확보했다.
농구라는 종목의 성격 또한 주목할 만하다. 빠른 전개, 잦은 득점, 개인 기량의 강조. 이는 집권 이후 김정은이 강조해 온 ‘젊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 이미지와 잘 맞는다. 집단과 조직을 전면에 내세우는 축구와 달리, 농구는 스타 플레이어 한 명이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김정은에게 농구는 집단지도 체제의 잔영을 지우고,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데 유용한 상징 자산이었다.

최고 지도자의 조던에 대한 관심은 북한 내에서도 여러 형태로 드러났다. 1999년 현대 아산측의 초청으로 통일농구대회를 갖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남한 땅을 밟은 북한 농구대표팀에는 ‘북한의 마이클 조단’으로 불린 박천종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99년 12월25일자 ‘박천종“과연 北의 조던”’ 기사는 ‘24일 통일농구 남자경기에서 돋보인 선수는 이명훈과 함께 뛴 북한의 포워드 박천종(30·1m86·사진)이었다.키는 특별히 크지 않지만점프력이 좋고 긴 체공시간을 이용한 점프슛과 순간적인 돌파력이 일품.전후반을 풀타임으로 뛰면서도코트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지치지 않는 체력을 과시했다.50—48로 현대에 뒤진 후반 5분쯤 잇단 드라이브인과 외곽슛으로 동점,역전골을 넣는 등 양팀 통틀어 최다득점인 31점을 올려 팀 승리의 1등 공신이 됐다. 서울에선 이명훈에 가려 덜 주목받았지만 북한에선 잘 생긴 외모와출중한 실력으로 이명훈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린다고 한다.신동파전 국가대표 감독은“드리블,슈팅능력,패스워크 등 개인기술이 탁월하다”며“다만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옥의 티”라고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기사는 북한이 선호한 ‘마이클 조던형’ 플레이 스타일의 선수를 소개한 것이다.

김정은은 2010년 이후 최고 지도자로 등극하면서 자신이 마이클 조던과 함께 농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공개석상에서 보여주었다. 마이클 조던과 한 팀원으로 시카고 전성시대를 연 NBA 스타 출신 데니스 로드먼을 평양으로 초청해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로드먼 방북은 외교적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북한이 미국과 완전히 단절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핵 협상보다 농구공이 먼저 평양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지만, 바로 그 비정치성이 김정은에게는 전략이었다. 농구는 총성과 구호 없이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였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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