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국내야구

[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42] 북한 야구에선 왜 '베이스'를 '진(陳)'이라 말할까

2025-12-24 08:04:04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북한-일본 소프트볼 경기를 지켜보는 북한 응원단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북한-일본 소프트볼 경기를 지켜보는 북한 응원단
야구 용어로 쓰이는 외래어 ‘베이스’는 영어 ‘base’를 음차한 말이다. 내야의 네 귀퉁이가 되는 자리 또는 거기에 놓은 흰 방석 모양의 물건을 의미한다. 베이스는 일본식 한자어로 ‘루(壘)’라고 말한다. (본 코너 138회 ‘왜 ‘베이스(Base)’를 ‘루(壘)’라고 말할까‘ 참조)

영어 base는 걷다, 발을 딛다, 발판이라는 뜻을 지닌 고대 그리스어 ‘básis(βάσις)’에서 유래했다. 이 그리스어가 라틴어 ‘basis’, 중세 프랑스어 ‘base’를 거쳐 현대 영어로 이어졌다. 야구에서 base는 주자가 발을 딛고 서는 곳이며, 공격의 출발점·중간 기착지이다. 또 다음 행동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초 지점이다. 이 점에서 ‘básis(발을 딛는 곳)’라는 원뜻이 그대로 살아 있다. 야구의 base는 단순한 표식이 아니라, 움직임이 성립되는 근거인 셈이다.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베이스라는 말을 썼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2년 12월10일자 ‘조선일보사급각단체후원하(朝鮮日報社及各團體後援下)에 용장맹사(勇將猛士)의전투(戰鬪)’ 기사는 ‘량군의 선수들은 서로악수를 한후 즉시 경기를 시작하게되야 몬져 미국직업야구단이 수비를 하게되얏스며 우리의 전조선군은 빼ㅅ틩을 들고 나오게되얏다 쳐음으로 젼조선군의 샌터 마춘식군이 나스며「히트」를치자 수비에 능란한 미군측에셔는 즉시 하잇뽀ㄹ을 밧게되야 무참하게나 쳐음 갈긴뽀ㄹ이 져들의 수즁에 드러가자 마군은 아웃이되고 말앗다 그후에 박텬병군이 다시 홈으련을 게획하고 뻬쓰에 나왓스나 미군의 피쳐로 유명한 편낙크군의 능란한뽀ㄹ을갈기얏스나 산싱으로 그만죽게되얏다 이와갓치운리의 젼조선군들은 의긔를 분발하야 빼ㅅ틔ㅇ을들고싸오고자 하얏스나 한점도엇지못하고 노홈을 당하게되얏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미국 프로야구단과 조선야구단 경기를 전한 내용이었는데, 베이스를 ‘뻬스’로 적는 등 영어를 일본식, 조선식 발음으로 표기했다. 야구를 전투·대결로 인식한 당시의 관점이 드러났다.
북한 야구에선 베이스를 한자어 ‘진(陳)’이라고 부른다. ‘늘어놓을 진(陣)’은 본래 군대가 자리 잡은 진지, 곧 점령과 방어의 거점을 뜻한다. 야구에서 주자가 밟고 머무는 베이스 역시 단순한 표식이 아니라 차례로 확보해야 할 위치라는 점에서 이 의미와 맞닿아 있다. 자연히 1루와 2루, 3루는 각각 1진, 2진, 2진이 되며, 공격은 진을 넓혀 가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남한에서 쓰는 ‘루(壘)’ 또한 본래 군사적 토루를 뜻하는 한자이다. 그러나 ‘루’가 일본 야구를 통해 정착된 용어였던 데 비해, 북한은 이를 일제 잔재로 보고 배제했다. 같은 어원을 공유하면서도 다른 길을 택한 셈이다. 북한은 스포츠 용어에서도 외래어를 그대로 쓰기보다 기능과 의미를 살린 말로 바꾸는 정책을 유지해 왔다. 영어 base를 소리로 옮기는 대신, 경기 속 역할을 해석해 ‘진’이라는 개념어를 택한 것이다.

결국 북한 야구의 ‘진’은 단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베이스를 거점으로, 경기를 전선으로 이해하는 시각인 것이다. 야구 용어 하나에도 언어 정책과 이념, 그리고 스포츠를 바라보는 독특한 사고가 겹겹이 배어 있다. (본 코너 1600회 ‘사회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스포츠 언어’ 참조)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리스트바로가기

많이 본 뉴스

골프

야구

축구

스포츠종합

엔터테인먼트

문화라이프

마니아TV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