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일반

[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40] 북한 야구에서 왜 '파울'을 '경외공'이라 말할까

2025-12-22 07:45:20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야구장에 나타난 북한 전력 분석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야구장에 나타난 북한 전력 분석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외래어 ‘파울’은 영어 ‘foul’을 음차한 말이다. 규칙 위반이나 반칙을 의미한다. 야구에선 ‘파울 볼’을 줄여서 파울이라고 부른다. 이 말은 일본의 영향으로 일본식 영어 표기를 그대로 따라 쓴 표현이다.

foul이라는 말은 원래 안 좋다는 의미이다. 인터넷 용어사전 위키너리에 따르면 고대 게르만어 ‘fulaz’가 어원이다. 고대 영어 ‘’ful’을 거쳐 중세 영어부터 현재와 같은 단어로 정착했다.
미국 야구에서 먼저 파울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1845년 야구 창시자 알렉산더 카트라이트(1820-1892)가 뉴욕에서 세계 최초의 야구팀인 닉커보커스를 창단하고 니커보커 규칙을 만들 때부터 등장했다. 파울이라는 말은 타자가 친 공이 경기장 내외야를 벗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본 코너 435회 ‘파울(Foul)과 바이얼레이션(Violation)은 어떻게 다른가’ 참조)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야구, 농두 등에서 파울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5년 12월21일자 ‘일부변경(一部變更)된 농구규칙(籠球規則)’ 기사는 ‘삼(三)·제팔장오조중(第八章五條中)과 기타조목중(其他條目中) 쩜프뽈을 할때에 수(手)를 배부세요(背部細腰) 중앙(中央)에 착(着)하라는규칙(規則)은 폐지(廢止)함. 전착경기자(前着竸技者)가 뽈을 치기전(前)에『써클』을 이(離)할 시(時)는『T』파울을 선고(宣告)함. 신조목(新條目)을 규칙제십오장(規則第十五章)B하(下)에 가입(加入)함(차(此)는 양경기자간(兩竸技者間)에 뿔을 투상(投上)할 때 엇더한방법(方法)으로든 지적편(敵便)을 방해(妨害)할 때는『퍼손낼 파울이다)’고 전했다. 당시 한자·가타카나·영어가 뒤섞인 이 기사에서 ‘테크니컬 파울’과 ‘퍼스널 파울’에 대한 규칙을 설명했다.
북한 야구에선 파울을 ‘경외공(境外球)’이라 부른다. 경외공은 문자 그대로 ‘경계 밖으로 나간 공’이다. 이 표현에는 영어 foul이 지닌 반칙·부정의 뉘앙스가 없다. 야구에서 파울은 규칙 위반이라기보다 경기의 한 결과다. 타구가 유효 구역을 벗어났다는 사실만을 말하면 충분하다. 북한은 바로 그 점에 주목했다. 행위의 도덕성을 따지기보다, 공의 상태와 위치를 설명하는 언어를 선택한 것이다.

이 같은 명명법은 북한 체육용어 전반에 깔린 원칙과 맞닿아 있다. 외야수는 ‘바깥마당지기’가 되고, 홈런은 ‘본루타’가 된다. 모두 공간과 기능, 결과를 중심으로 한 표현이다. 파울이 경외공으로 바뀐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외래어를 그대로 옮기기보다, 경기장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눈앞에 그리듯 말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본 코너 1635회 '북한 야구에선 왜 '외야수(外野手)'를 '바깥마당지기'라고 말할까' 참조)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경계’라는 단어의 선택이다. 야구는 선의 스포츠다. 공 하나가 선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경외공이라는 표현은 규정선의 의미를 분명히 드러낸다. 질서와 구획, 규칙의 명확성을 중시하는 북한식 언어 감각이 야구 용어에도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본 코너 1600회 ‘사회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스포츠 언어’ 참조)

경외공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번역어가 아니다. 그것은 북한이 스포츠를 어떻게 이해하고, 언어를 통해 무엇을 드러내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리스트바로가기

많이 본 뉴스

골프

야구

축구

스포츠종합

엔터테인먼트

문화라이프

마니아TV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