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선 일본의 영향으로 일제강점기 때부터 볼이라는 말을 썼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7년 1월30일자 ‘강타자(强打者)에게주는 고의(故意)의사구(四球)’ 기사는 ‘야구경기중투수(野球競技中投手)가 강타자(强打者)에게 대(對)하야고 의(故意)로 사구(四球)를 주어서 일루(一壘)를 송(送)하는 전약(戰畧)에대(對)하야 미국(米國)에서는 여러 가지 비난(非難)을기(起)하는바『늬우지니아』주(洲)『늬우아크』매잇는『뿔덴탈·이시슈·와란스애들레틱협회(協會)라는 이천명(二千名)의회원(會員)이잇는 운동협회(運動協會)에서 금회야구위원장(今回野球委員長)『랜틔스』판사(判事)에 대(對)하야 규칙(規則)의개정(改正)을제의(提議)한 비위원장(委員長)은 차(此)의 제의(提議)를수리(受理)하야 일월중 개최(一月中開催)되는 야구규칙위원회(野球規則委員會)에 수정안(修正案)을제출(提出)하기로 약조(約條)하얏는데 차(此)에 제의(提議)는 야구규칙제오십삼조제이항(野球規則第五十三條第二項)을좌(左)와여(如)히수정(修正)한것이라한다 타자(打者)는 사구(四球)를득(得)할 제주자(際走者)가되야 일루(一壘)에 지득(至得)할 권리(權利)를방기(放棄)하고 심판관(審判官)에 대(對)하야 삼진(三振)또는『페여힛트』를 칠때까지경(更)히 투수(投手)에게투구(投球)를 구(求)힐의지(意志)를 통지(通知)함을득(得)함 그때에 투수(投手)가 투자(投者)에게『페여힛트』를 주지안코 삼진(三振)도식히지못하면서『뽈』삼개(三個)를 연발(連發)하는시(時)는 타자(打者)는 삼루(三壘)을취(取)하고 삼개루(三個壘)에잇든 주자(走者)는 득점(得點)함을득(得)함【늬우욕전(電)】’고 전했다.
당시 기사는 강타자를 상대할 때 투수가 고의로 사구(四球·볼넷)를 줘 1루로 보내는 전술을 제한하자는 미국 내 규칙 개정 논의를 전한 것인데, 볼 등 오늘날의 야구 규칙과 용어가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했다 .볼(ball)은 단순한 판정이 아니라 투수가 타자와 승부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이 표현은 단순한 설명을 넘어선다. ‘부정확하다’는 말에는 이미 평가가 담겨 있다. 투수의 공은 정확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그것은 하나의 실패로 규정된다. 이는 북한 사회 전반에 깔린 ‘정확성’과 ‘규율’ 중심의 사고방식과 맞닿아 있다. 스포츠 역시 자유로운 놀이보다는 과업 수행의 장으로 인식되고, 결과는 우연이 아니라 정확성의 결여나 수행 태도의 문제로 해석된다.
여기에는 역사적 맥락도 작용한다. 야구는 북한에서 오래도록 ‘미제 스포츠’로 인식돼 왔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남한을 거치며 굳어진 일본식·미국식 야구 용어와의 단절은 언어 차원에서도 중요한 과제가 됐다. ‘볼’이라는 음차어 대신 ‘부정확한 공’을 쓰는 것은 단순한 번역을 넘어, 외래 문화와 거리를 두려는 상징적 선택이기도 하다. (본 코너 1600회 '사회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스포츠 언어' 참조)
흥미로운 점은 이 용어가 경기 판정을 넘어 교훈적 언어로 기능한다는 사실이다. 북한 매체에서 “부정확한 공을 련속으로 던졌다”는 표현은 단순한 볼넷 설명이 아니라, 선수의 집중력과 책임성을 지적하는 문장으로 읽힌다. 판정어가 곧 비평이 되고, 비평은 교양과 훈육의 언어로 확장된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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