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언론에선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영향을 받아 본루타라는 말을 썼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3년 5월6일자 ‘결승(决勝)의악전고투(惡戰苦鬪)’ 기사는 ‘제이회인보군(第二囘仁普軍)의 이만성(李萬成)은 적삼루수(敵三壘手)의 실책(失策)으로 일루(一壘)을답(踏)한후 수(後遂)히 본루(本壘)에생환(生還)하다 우인보군(又仁普軍)은 김귀성(金貴成)의 안타(安打)로 우일점(又一點)을 가(加)하다 우조(友助)의 최재유(崔在裕)은 삼진안승길(三振安承吉)도 역삼진(亦三振)으로 이사(二死)을 당(當)한후 김기봉(後金岐鳳)은 우익(右翼)의 비구(飛球)을떼엿스나 적(敵)의실책(失策)으로 이루(二壘)까지 답(踏)한후 한홍이군(後韓虹伊軍)의 본루타(本壘打)로 이자(二者)가 생환(生還)하고 한응칠(韓應七)은 적(敵)의실수(失手)로 삼루(三壘)에지(至)하얏다가 투수(投手)의폭투(暴投)을이용(利用)하야 우생환(又生還)하고 차형식(車亨植)은 일포(一匍)로 사(死)하다’고 전했다. 당시 기사는 본루타 한 방으로 2점이 들어오는 장면이 명확히 기록하고 있었다. 이미 1923년에 홈런 대신 본루타라는 명칭을 정식 기록 용어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북한 야구에선 홈런을 본루타라고 말한다. 이는 북한식 조어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이미 쓰던 말이었다. 북한은 스포츠 용어에서 외래어 사용을 최소화한다. 홈(home)이나 런(run) 같은 영어 요소는 배제되고, 대신 ‘본루(本壘)’와 ‘타(打)’라는 한자말을 결합했다. 본루타는 말 그대로 본루를 밟게 만드는 타구다. 달려서 점수를 낸다는 과정의 역동성보다는, 타격의 결과와 기록에 초점을 맞춘 명명이다. 이는 북한 스포츠 용어 전반에 흐르는 특징이기도 하다.
북한 신문과 경기 기록을 보면 본루타는 철저히 기록 언어로 기능한다. 여기에 해설이나 기사 문장에서는 ‘울타리밖타’, ‘담장넘김타’ 같은 설명형 표현이 덧붙는다. 하나의 플레이를 두고 공식 용어와 서술 용어가 병행되는 방식이다. 이는 언어를 통제하면서도 이해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관련기사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