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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597] 북한에선 왜 ‘탁구’를 ‘책상공치기’라고 말할까

2025-11-06 07:32:07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에서 남북한이 단일팀 '코리아'로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하는 모습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에서 남북한이 단일팀 '코리아'로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하는 모습
북한에서는 ‘탁구(卓球)’를 ‘책상공치기’라 부른다. 책상위에서 공치기를 한다는 뜻이다. 언뜻 들으면 웃음이 나올 만큼 단순한 표현이다. 하지만 그 말에는 체육을 바라보는 북한의 언어 철학이 담겨 있다.
‘탁구’는 일본어 ‘탁큐(卓球)’에서 유래한 한자어다. .‘높을 탁()’공 구()’가 합쳐진 탁구는 탁자 위에서 하는 공놀이라는 뜻이다. 탁구는 영어 ‘table tennis’을 일본에서 번역해 쓴 한자어이다. 탁구라는 말이 만들어 진 것은 1920년대 이전으로 추정된다. 탁구 세계 최강 중국에선 탁구를 乒乓球(pīngpāngqiú)’라고 불러 일본, 한국과는 다르게 말한다.

영어용어사전 등에 따르면 ‘ping pong’1898년 영국의 크로스컨트리 주자였던 제임스 깁이 미국에 있을 때, 어린이 장난감을 보고 고안하여 그 공을 판자에 송아지 가죽을 펴서 붙인 라켓으로 칠 때 핑퐁이라는 소리가 나서 생긴 말이다. 지금도 국제적으로 탁구의 애칭으로 불려지고 있다. 1970년대 초반 미국과 중국의 국교 수교를 핑퐁 외교라고도 말하기도 했다.
‘table tennis’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 용구업체들이 'ping pong'을 상표로 등록하면서 사용할 수 없게 된 뒤 만들어진 말이다. 1921년 영국에서 처음 탁구협회(table tennis federation)가 만들어진 뒤 1926년 창설된 국제탁구연맹(International Table Tennis Federation. 약칭 ITTF)에서 'table tennis’라는 말을 국제 공용어로 확정했다. 일본에서는 이 말을 탁구로 번역해서 썼다.
우리나라 언론에선 일제강점기 때부터 탁구라는 말을 사용했다. 조선일보 192353일자 경취구락부신설(京取俱樂部新設)’ 기사는 경취시장(京取市場)에셔사원(社員)의수양오락(修養娛樂)에자()하기위()하야차기관설립(此機關設立)을계획중(計劃中)이더니금회경취구락부(今囘京取俱樂部)를신설(新設)하고부내(部内)에좌기오부(左記五部)를설()하고기목적(其目的)의달성(達成)을계()한다더라 일(),야구부(野球部) (),정구부삼(庭球部三),탁구부(卓球部) (),수양부오(修養部五),오락부(娛樂部)’라고 전했다. (본 코너 1001탁구(卓球)’라고 말할까참조)

북한은 해방 이후 외래어와 일본식 표현을 ‘제국주의 잔재’로 규정하고, 자주적 언어정책을 추진했다. ‘탁구’ 대신 ‘책상공치기’라는 말을 쓴 이유는 단순한 순화가 아니라, 인민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생활어로 바꾸려는 시도였다. (본 코너 1581회 ‘북한은 문화어에서 스포츠 용어를 어떻게 바꾸었나’ 참조)

‘책상공치기’는 북한 체육용어의 전형적인 언어 구조를 보여준다. ‘명사 + 공 + 치기’라는 단순한 조합은 행위 중심, 생활 중심의 언어 창조 방식이다. 발공차기(축구), 바구니공던지기(농구), 막대공치기(하키)도 같은 계열이다. 외래어 대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토박이말로 스포츠를 표현함으로써, 언어를 통해 사회의 이념을 주입하고 생활 속에 사상을 심으려 한 것이다. (본 코너 1591회 ‘북한에선 ‘농구’를 왜 ‘바구니공던지기’라고 말할까‘, 1592회 ’북한에선 왜 ‘야구’를 ‘공던지기’라고 말할까‘ 참조)

북한 ‘로동신문’은 “학생들이 책상공치기를 통하여 집중력과 단결정신을 키우고 있다”고 보도한다. 경기의 승패보다 ‘정신력’과 ‘협동심’을 강조하는 언어는 곧 사회주의의 가치체계와 맞닿아 있다.

북한은 한때 탁구 세계강국이었다. 1960~1980년대 세계무대에서 중국·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시기가 있었다. 박영순은 1975년 인도 캘커타 세계선수권대회 단식 종목에서 중국의 장리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1977년 영국 버밍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또 다시 우승, 2연패를 차지했다. 1991년 남한과 단일팀을 이룬 지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현정화-리분희의 코리아팀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은 올림픽에서 아직 메달이 없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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