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에서는 ‘육상’을 ‘달리기운동’이라는 말한다. 얼핏 단순한 용어 차이로 보이지만, 그 속에는 북한식 언어관과 체육관이 응축돼 있다. 해방 이후 남한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북한은 일제 잔재로 봤다. 1950년대 ‘조선말 다듬기운동’의 일환으로 일본식 체육용어를 고유어로 순화하는 과정에서 ‘육상’은 ‘달리기운동’으로 바뀌었다.
북한의 체육 교과서나 조선중앙TV 보도에서는 “우리 선수들은 달리기운동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달리기운동은 근육과 심장을 튼튼히 하는 인민적 체육이다”, “달리기운동과 멀리뛰기, 던지기운동을 잘 결합해야 한다”는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또한 북한은 언어를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라 사상전달의 도구로 본다. 외래어를 제거하고 고유어로 표현함으로써 ‘우리 식’의 체육문화를 강조한다. 그래서 ‘스포츠’ 대신 ‘체육’, ‘코치’ 대신 ‘지도원’, ‘심판’ 대신 ‘재판원’이란 말이 자리 잡았다. (본 코너 1551회 ‘북한에선 왜 ‘스포츠’ 대신 ‘체육’이라는 말을 많이 쓸까‘, 1583회 ’북한에선 ‘감독’을 왜 ‘지도원’이라 말할까‘, 1584회 ’북한에선 왜 ‘심판’을 ‘재판원’이라 말할까‘ 참조)
결국 ‘달리기운동’은 외래어 배제의 결과이자, 주체적 언어관의 산물이다. 한 단어 속에서도 북한은 체육을 ‘경쟁의 장’이 아닌 ‘인민의 단련장’으로 정의한다. 언어는 시대의 거울이다. 남쪽의 ‘육상’과 북쪽의 ‘달리기운동’ 사이에는 단순한 말맛의 차이를 넘어, 두 사회가 달려온 사상의 궤적이 담겨 있다.
북한에서 정성옥은 북한 육상 역사상 첫 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이다. 1999년 세빌야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의 금메달은 국제육상연맹(IAAF)이 공식 인정한 북한 최초의 세계 타이틀이었다. (본 코너 1554회 '마라톤 정성옥이 스포츠 선수로는 북한에서 유일하게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은 이유는' 참조)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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