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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의 골프이야기] 뇌는 '마지막'만 기억한다 - 유종의 미(有終之美)의 뇌과학

2025-12-15 10:07:25

[김기철의 골프이야기] 뇌는 '마지막'만 기억한다 - 유종의 미(有終之美)의 뇌과학
△ 당신의 2025년 골프는 몇 점입니까?

달력의 마지막 장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송년회 자리마다 "올해는 정말 다사다난했다"는 말이 오간다. 골퍼들에게도 12월은 한 해의 라운드를 복기(復棋)하는 시간이다. 눈을 감고 지난 1년을 돌아보자.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라베(Life Best)를 놓쳤던 결정적인 퍼팅 실수, 혹은 잘 나가다가 무너졌던 끔찍한 트리플 보기의 기억이 뇌리에 박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골퍼가 "올해 농사는 망쳤어"라며 씁쓸해한다. 하지만 당신의 기억은 틀렸다. 정확히 말하면 당신의 뇌가 당신을 속이고 있다. 뇌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기억은 '팩트의 기록'이 아니라 '감정의 편집'이기 때문이다. 오늘 칼럼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골퍼들에게 전하는 '기억 세탁'의 기술, 그리고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유종의 미(有終之美)에 숨겨진 뇌과학적 비밀에 대한 이야기다.

△ 뇌는 평균을 내지 않는다 - '피크 엔드 법칙'의 마법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의 기억 메커니즘을 설명하며 '피크 엔드 법칙(Peak-End Rule)'을 제시했다. 내용은 간단하다. 인간의 뇌는 어떤 경험을 평가할 때, 그 경험의 전체 시간이나 평균값이 아니라 '가장 강렬했던 순간(Peak)'과 '마지막 순간(End)'의 감정만으로 전체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A 골퍼: 17홀 내내 파(Par)를 치며 완벽한 경기를 하다가, 마지막 18번 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범해 기분을 망치고 라운드를 끝냈다. B 골퍼: 17홀 내내 더블 보기로 고전하며 괴로워하다가, 마지막 18번 홀에서 기적 같은 롱 퍼팅 버디를 성공시키며 환호 속에 경기를 마쳤다. 객관적인 스코어(평균)는 A 골퍼가 훨씬 훌륭하다. 하지만 1년 뒤, 이 날을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뇌과학적으로 볼 때, 승자는 B 골퍼다. A 골퍼의 뇌는 마지막의 불쾌함(End)을 전체 기억의 대표값으로 저장하지만, B 골퍼의 뇌는 마지막의 짜릿함(Peak & End)을 저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골프는 장갑 벗을 때까지 모른다"는 속설의 과학적 근거다. 우리의 뇌는 지루한 4시간의 평균 점수보다, 마지막 한 순간의 강렬함을 선택한다.

△ 해마(Hippocampus)는 유능한 편집자다

우리 뇌 속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는 사실상 방송국 PD와 같다. 해마는 우리가 겪은 모든 샷을 녹화하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뇌 용량이 터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해마는 '편집'을 한다. 지루하고 평범한 샷들은 가차 없이 '통편집'하고, 감정적으로 강렬하게 각인된 장면(Peak)과 문을 나서는 순간(End)만 잘라내어 '에피소드 기억'이라는 폴더에 저장한다. 문제는 골퍼들이 스스로 '악마의 편집'을 자처한다는 점이다. 수많은 굿샷은 "당연한 것"이라며 흘려보내고, 어쩌다 나온 뒤땅이나 OB 같은 실수는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며 감정을 싣는다. 감정이 실린 기억은 해마에 더 깊이 박힌다. 결국, 나쁜 기억만 선명하게 남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내년 시즌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해마에게 '좋은 편집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이다. 실수는 건조하게 사실만 기록하고, 버디나 굿샷에는 "와우!"라는 감탄사를 붙여 감정의 태그를 달아줘야 한다.

△ 유종의 미(有終之美) - 뇌가 내리는 최고의 처방전

우리는 흔히 유종의 미(有終之美)를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 마무리하자"는 도덕적 교훈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뇌과학적 관점에서 유종의 미는 뇌를 위한 최고의 생존 전략이자 '기억 관리술'이다.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행백리자반구십(行百里者半九十 - 백 리를 가려는 사람은 구십 리를 가고서야 반쯤 왔다고 여긴다)"이라는 말처럼, 마지막 마무리는 전체 과정의 절반에 해당할 만큼 중요하다. 왜 그럴까? 뇌는 '마지막 감정'을 그 경험의 결론으로 코딩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홀에서 웃으며 악수하고, "오늘 즐거웠습니다"라고 진심으로 말하는 순간, 뇌는 앞선 17홀의 고통을 "그래도 즐거웠던 도전"으로 덮어쓰기(Overwrite) 한다. 이것이 우리가 마지막 홀 퍼팅에 그토록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그것은 단지 1타를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오늘 하루 전체, 나아가 올 한 해 골프의 '기억 색깔'을 결정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 2025년을 보내는 골퍼의 자세: 기억 세탁

이제 2025년을 보내며, 우리의 뇌 속에 저장된 골프 기억을 재편집할 시간이다. 피크 엔드 법칙을 이용해 보자. 평균을 버려라. "올해 평균 타수가 90타였어"라는 데이터는 잊어라. 대신 올해 가장 잘 맞았던 드라이버 샷, 가장 짜릿했던 칩인 버디의 순간(Peak)만을 떠올려라. 그것이 당신의 진짜 실력이라고 뇌를 세뇌하라. 마지막을 좋게 포장하라. 혹시 올해 마지막 라운드가 엉망이었나? 그렇다면 기억의 '엔드(End)' 시점을 바꿔라. 샷이 아니라, 라운드 후 동반자들과 먹었던 맛있는 식사, 돌아오는 차 안에서 들었던 좋은 음악을 '마지막 기억'으로 설정하라. 뇌는 그것을 라운드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좋은 하루였다"고 저장할 것이다. 나쁜 기억은 흑백으로, 좋은 기억은 컬러로. 눈을 감고 지난 실수는 흐릿한 흑백 사진처럼 멀리 보내고, 좋았던 손맛은 4K 동영상처럼 생생하게 재생하라. 해마는 우리가 상상하는 대로 기억을 재구성한다.

△ 내년의 굿샷은 올해의 좋은 기억에서 나온다

골프는 자신감의 게임이고, 자신감은 좋은 기억에서 나온다. "나는 실수를 자주 하는 사람"이라고 기억하는 골퍼는 내년에도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해내는 사람"이라고 기억하는 골퍼는 내년 봄, 반드시 그 기억을 현실로 만들 것이다. 유종의 미(有終之美).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이것은 위로가 아니라 과학이다. 2025년, 당신의 골프는 훌륭했다. 스코어카드는 찢어버리고, 그날의 웃음과 전율만 남겨라. 당신의 뇌가 기억하는 '마지막'이 행복하다면, 다가올 2026년의 '시작'도 분명 찬란할 것이다. 여러분의 골프 인생에 늘 '피크(Peak)' 같은 기쁨과 아름다운 '엔드(End)'가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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