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6년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근대 올림픽에서 이 고대 이야기를 기념해 마라톤 경기가 공식 종목으로 채택된다. 초창기 거리는 약 40km이었다. 현재의 공식 거리 42.195km는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확정됐다. 이때부터 마라톤은 스포츠 종목 이름으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에선 일제강점기 때부터 마라톤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7년 9월8일자 ‘중등교육상대회(中等校陸上大會)’ 기사는 ‘경기종목(竸技種目)(매교출장(每校出塲)□수수(手數))(일(一))백미경주삼인이내(百米竸走三人以內)(이(二))이백미경주동(二百米竸走同)(삼(三))사백미경주동(四百米竸走同)(사(四))팔면미경주동(八面米竸走同)(오(五))천오백미경주동(千五百米竸走同)(육(六))팔백미(八百米)리레—경주일조(竸走一組)(사인(四人))(칠(七))천륙백미(千六百米)리레경주동(竸走同)(팔(八))마라톤경주(竸走)(팔리(八哩))삼인이내(三人以內)(구(九))주고도동(走高跳同)(십(十))주청도동(走廳跳同)(십일(十一))투탄(投彈)(12파운드)동(同)(십이(十二))투창동(投槍同)(십삼(十三))투도(投圖)□(4파운드)’라고 전했다. 이 기사는 학교 대항 육상대회 종목 공고로, 당시 쓰이던 한자식·일본식 체육 용어가 그대로 드러나는 매우 중요한 사료인데, ‘마라톤竸走 (八哩)’는 오늘날의 42.195km 마라톤이 아니라 8마일(약 12.87km) 장거리 경주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8마일 마라톤은 일본·영국식 육상 규정의 흔적이었다.
북한에선 마라톤을 ‘마라손’이라고 부른다. 마라손이라는 표현에는 북한 체육 언어의 형성과 그 이면의 정치·역사적 선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해방 이후 북한은 체육·군사·과학 등 핵심 분야의 모델을 소련에 두었고, 스포츠 용어 역시 러시아어 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러시아어에서 마라톤은 ‘마라폰(марафон)’에 가깝게 발음된다. 이 소리를 한글로 옮긴 결과가 바로 마라손이다.
이 같은 표기는 북한만의 특이한 고집이 아니다.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오랫동안 영어보다 러시아어를 국제 공용의 기준으로 삼아왔다. 북한의 체육 교과서와 신문, 방송에서 마라손이 공식 용어로 굳어진 배경에는 이런 국제적 진영 논리가 작동했다. 영어식 마라톤을 쓰는 것은 단순한 언어 선택이 아니라, 문화적·정치적 방향성의 문제로 인식됐던 셈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북한 언어 정책의 일관성이다. 북한은 외래어를 들여올 때 의미 전달과 발음의 규칙성을 중시한다. ‘톤’처럼 파열감이 강한 음절보다는 ‘손’처럼 부드럽고 반복 사용에 적합한 소리를 선호했다. 그래서 마라톤은 마라손이 되었고, 릴레이는 ‘이어달리기’, 허들은 ‘장애물달리기’로 바뀌었다. 이는 외래어를 배격하기보다는, 자기식 언어 체계로 재구성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본 코너 1600회 ‘사회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스포츠 언어’ 참조)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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