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의 일방적인 공격 속에 골이 안 나는 답답한 경기 내용이었다. 아르헨티나는 정규시간 90분 내내 단 한 번도 유효슈팅은커녕 슈팅 자체를 기록하지 못했다.
서른아홉 리오넬 메시는 스페인의 촘촘한 압박과 끝없는 점유율 축구에 갇혀 경기 내내 공을 잡을 기회조차 많지 않았다. 개인의 기량 문제가 아니라 팀 전체가 공을 만져볼 틈조차 내주지 못한 90분이었다.
알람을 맞춰두고 새벽잠을 설친 사람도, 아침 뉴스로 결과를 확인한 사람도 궁금했을 것이다. 그토록 공격적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아르헨티나가 왜 하필 이 결승에서만 이렇게 조용했을까.
답은 뇌의 습성, 손실회피에 있다. 사람은 만 원을 주웠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만 원을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상실감을 훨씬 크게 받아들인다. 갖고 있던 걸 빼앗기는 감각이 새로 얻는 감각보다 뇌에 몇 배는 진하게 새겨지기 때문이다.
이 손실회피는 위기에 몰렸을 때 무모한 공격성을 부르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미 지킬 것이 너무 크고 소중할 때는 사람을 정반대 방향으로 얼어붙게 만든다. 실수 하나가 곧 손실로 직결되는 순간, 뇌는 차라리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이번 결승의 아르헨티나가 바로 그 얼어붙은 뇌였다. 8강 스위스전 연장 역전, 4강 잉글랜드전 후반 막판 역전까지, 이 대회 내내 아르헨티나는 뒤진 상황에서 오히려 폭발적으로 몰아붙이는 팀이었다.
차라리 0대0을 유지하다 승부차기로 가는 편이 낫다는 계산이 은연중에 몸을 지배했을 수도 있다. 조심스러움이 극에 달하면 오히려 아무 시도도 하지 못하는 마비 상태가 된다. 그러다 연장을 앞두고 후반 추가시간, 엔소 페르난데스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반면 스페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이 없었다. 경기 내내 주도권을 쥐었고, 대회 내내 지켜온 최소 실점 기록다운 안정감으로 상대의 빈틈을 기다렸다. 후반 중반 이후 투입된 니코 윌리엄스와 페란 토레스, 미켈 메리노가 그 안정감에 힘을 보탰다.
정규시간 막판인 후반 87분, 메리노의 패스를 받은 토레스가 첫 슈팅을 시도했지만 골대를 살짝 벗어났다. 그 아쉬움을 씻어낸 건 연장 후반, 윌리엄스의 헤더 어시스트를 받은 토레스의 극적인 결승골이었다. 잃을 왕관이 없는 도전자는 90분이든 120분이든, 주전이든 교체든 시간과 자리에 쫓기지 않았다.
지킬 것이 있는 뇌와 얻을 것만 있는 뇌가 같은 잔디 위에서 완전히 다른 리듬으로 뛴 셈이다.
이건 그라운드 위 이야기만은 아니다. 큰 시험을 앞두고 이미 좋은 성적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오히려 손이 굳어 실수를 하고, 밑져야 본전인 도전자가 의외로 담대하게 실력을 다 쓰는 경우를 우리도 종종 본다. 뇌는 늘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 촉각이 지나치면 몸이 아예 움직이지 않는다.
무언가를 지켜야 하는 자리에 있다면, 완벽하게 하려는 마음보다 일단 시도해보는 마음이 먼저 필요할지 모른다.
이 대비를 가장 압축적으로 담은 말이 건곤일척이다. 초한전쟁 말기, 항우와 유방은 더 물러설 곳 없이 천하를 건 마지막 한판으로 승부를 냈다. 하늘과 땅을 걸고 주사위를 던진다는 뜻이 여기서 나왔다.
승자와 패자만 남고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이번 결승과 정확히 겹친다. 다만 이번 주사위 앞에서, 지키려던 쪽은 몸을 사리다 굳어버렸고 얻으려던 쪽은 끝까지 손을 뻗었다.
경기가 끝난 지금, 하이라이트를 다시 돌려본다면 골 장면보다 아르헨티나의 최종 기록표를 한 번 더 들여다보시길 권한다. 120분을 뛰고도 슈팅 2개, 그중 유효슈팅은 0개. 연장 후반 종료 직전 파상공세 속에 줄리아노 시메오네가 결정적인 기회를 날린 것이 그나마 가장 골문에 가까웠던 순간이었다. 이 숫자는 실력 부족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았던 뇌가 남긴 흔적이다.
이 대회 내내 역전을 만들던 팀이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했다는 역설이야말로 손실회피가 얼마나 강력하게 사람을 얼어붙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메시에게는 아플 결과지만, 다음에 또 무언가를 지켜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이 새벽의 기록이 좋은 반면교사가 되어줄 것이다.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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